No. 1596 [칼럼니스트] 2013년 10월 9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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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로버트 카파 사진전
박강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parkk


로버트 카파(1913-1954)는 보도사진 부문에서 전설적인 이름이다. 그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카메라에 망원렌즈도 줌 렌즈도 없었다. 그런 카메라로 현장을 생생히 전달하자면 총탄과 포탄이 나는 전장에서도 피사체에 바짝 다가가야 한다. 그는 1930년대 스페인 내전,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1950년대 인도차이나 전쟁 등의 현장을 누비며 남이 찍기 어려운 사진들을 찍었다.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던 그는 1954년 인도차이나 전장에서 프랑스 전투부대에 끼어 행동하다가 지뢰를 밟아 삶을 마쳤다. 로버트 카파 사진전(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 2013년 8월 2일 - 10월 28일)은 이 인걸의 탄생 1백주년을 기념하는 것인데 그의 생애와 작품을 잘 볼 수 있는, 놓치면 아쉬울 전시회다.

시대의 기록자인 그가 마지막 지니고 있던 사진기 사진을 보면, Contax 롤필름 카메라. 렌즈는 Carl Zeiss Sonnar 1:2 f=50mm. 당시로는 최고급 휴대용 카메라였을 것이다.

로버트 카파 사진전의 의미와 감동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옥의 티’가 있다. 잘못된 번역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이것이 이 전시회의 가치를 훼손하지는 않겠지만 관람객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어 아쉬움이 크다. 영어를 읽을 수 있다면 한국어 설명문만 읽지 말고 영어로 된 것도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가장 잘 알려진 사진 작품은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 병사가 총을 맞고 쓰러지는 찰나를 포착한 것이다.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이라는 설명이 붙여져 있으나, 영어로는 Death of Royalist militiaman이라고 분명히 왕당파 병사로 되어 있다. 공화파는 영어로 Republican이라고 한다.

1945년 건물들이 파괴된 독일 베를린 거리 사진의 설명은 적절하지 않다.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부근의 도로 위에 늘어선 사람들’이라고 써 놓았으나 도로 위에 늘어선 사람은 없다. 한적한 거리에 오가는 사람 대여섯 보일 뿐이다. 길가 건물들은 흉측하게 파괴되고 교회 건물만 비교적 덜 부서졌다. 영어 원문을 보자면 ‘파괴된 건물이 즐비한 길을 오가는 사람들과 빌헬름 황제 기념 교회’ 쯤으로 해야 옳다. People on street lined with ruined buildings and the Kaiser Wilhelm Memorial Church.

카파는 1954년 일본에도 있었는데 이 때 활동에 대해 ‘일본에 있는 동안 카파는 ... 주로 아이들 사진을 찍었다. 또한 게이샤와 좌익오월의 행진 등 다른 주제에 대한 사진도 담아냈다.’는 부분이 있다. ‘게이샤와 좌익오월의 행진’이 이상해서 영어 원문을 보았다. He also photographed other subjects ranging from geishas to a leftist May Day parade in Tokyo. ‘게이샤에서부터 좌익의 노동절 행진에 이르기까지 다른 주제들 사진도 찍었다.’는 뜻이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 관한 설명을 하면서 번역사는 Viet Minh(베트남독립동맹회ㆍ베트민ㆍ越盟)을 모조리 베트콩으로 잘못 옮겼다. ‘카파가 하노이에 도착하기 하루 전인 5월 7일에 디엔비엔푸는 결국 베트콩의 순에 넘어가게 된다.’ 등. 그 때는 베트콩이 없었다.

‘구 소련은 전쟁 후에 거의 모든 서양 출신 사진작가의 입국을 막았기 때문에...’에서는 ‘서양 출신 사진작가’보다는 ‘서방 사진작가’라야 한다. 영어로는 western photographers로 되어 있다. 소련도 서양이고(아시아지역이 있긴 해도) 동유럽도 서양이다. 소련이 그 때 같은 공산권인 동유럽 사진작가의 입국을 막지는 않았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서방’에는 ‘비공산권’ ‘자본주의 진영’이라는 뜻이 들어 있으나 ‘서양’에는 그렇지 않다.

나는 9월 30일 오후 6시쯤부터 관람하기 시작했다.아마 한 시간 반쯤 돌아본 듯. 이 날 열심히 설명하는 한 젊은 여성 안내원의 성의에 감동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라이프 사진전’도 열리고 있어 이것도 함께 볼 만하다. 한 동안 카파는 잡지 ‘라이프’를 위해 일했고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 여기 실린 사진을 통해 명성을 떨쳤다.
-2013.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