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28 [칼럼니스트] 제1595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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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豊까지는 아니더라도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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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귀성객, 이산가족상봉, 해외동포 고향방문 관련 기사가 나오면 그때마다 중국 한나라 고조 유방이 생각난다. 기원전 202년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한 유방은 장안(현 섬서성 서안)을 수도로 정했다. 패현 풍읍(현 강소성 서주) 출신인 황제는 당시 최고 가치인 효(孝)를 솔선이행하기 위해 고향 부모를 자주 찾아뵈어야 했다.

그러나 황제의 행차는 엄청난 인원이 동원되므로 백성의 피해가 컸다. 그래서 부모를 장안으로 모셨다.

유흠의 ‘서경잡기’에 따르면 그 뒤로 아버지는 늘 활기가 없고 축 처져 있었다. 황제의 아버지로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데 그랬다. 이유는 고향의  푸줏간, 술집, 떡집과 친구들, 그들과 함께 하던 닭싸움, 공차기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향수병에 걸린 것이다.

황제는 장안 부근에서 고향 비슷한 사시리(寺市里)에 풍읍과 똑 같이 성을 쌓고 풍의 사직인 분유사(枌榆社)까지 이전했다. 거리, 집들을 그대로 복원하고 고향사람은 물론 가축까지 이주시켰다. 동네 이름은 새 풍읍이란 뜻의 新豊으로 정했다.

신도시 건설의 책임을 맡은 오관(吳寬, 또는 호관‘胡寬’이라고도 함)의 솜씨가 얼마나 정교한지 개와 닭들마저 신풍의 우리를 제 집으로 알고 제대로 찾아갔다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 반고의 ‘한서’에도 신도시 신풍의 기사가 나온다.

이곳 사람들의 술 빚는 솜씨가 뛰어나 신풍술 하면 대대로 이름을 날려 이태백, 왕유 등의 시에 등장하고, 조선에서도 이현보, 김삿갓 등이 신풍과 신풍술을 읊었다. 정조는 화성을 제2의 고향으로 삼으면서 수원에 신풍루를 세우고, 과거시험에 신풍건설 관련 문제를 내기도 했다. 신풍은 ‘또 다른 고향’의 대명사가 되었다.  

중국 서안에서 현종과 양귀비가 놀아나던 화청지와 진시황릉으로 가다 임동현에 들어서면 지금도 여기저기 이정표에서 신풍을 볼 수 있다. 무소불위한 황제가 권력과 금력을 동원한 대규모 고향이전복원 공사지만 이런 향수병 치유방법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자기 아버지를 위한 것이지만 향수병은 이처럼 황제도 움직이게 한다.

향수란 이런 것이다. 당시 하늘의 명을 받았다는 천자 즉 황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절실한 본능이다.

그런데 북한은 최근 이상가족상봉을 잔인하게 무산시켰다. 무슨 이유를 들이 댄다하더라도 반인륜적 만행이 아닐 수 없다.

유방처럼 막강한 권력과 금력을 동원할 필요도 없다. 거리가 지척이라 비용도 크게 들지 않고, 잠깐 얼굴만 보는 아쉽기 짝이 없는 상봉인데도 별 해괴한 핑계를 내걸고 막으니 입만 열면 동포니 민족이니 떠드는 그 속이 가증스러울 뿐이다. 인간이라면 그럴 수는 없다.

이산가족에게 최대의 적은 시간이다. 북한이 최선을 다 한다고 해도 세월은 무정하기 이를 데 없어 소원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이산가족통합정보센터에 따르면 지금까지 상봉을 신청한 12만9035명(8월 기준) 중 사망자는 5만6544명이고, 생존자 중에서도 70대 이상 고령층은 전체의 80.1%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상자 가운데 매년 4000명 가까이 사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시간에 쫓기고 있다.

이산가족상봉은 원칙적으로 직계가족만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향수라는 게 어디 가족만 보고 싶은 병인가. 신청하지 않은 실향민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아픔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우리 서당의 한 선배는 이북에서 인민학교 3학년까지 다니다 6.25가 터져 남으로 왔다. 다행히 가족이 함께 와서 이산가족상봉 신청은 안 했지만 그래도 보고 싶은 이들이 많다. 친척과 친구들이다. 하지만 직계가족도 만나지 못하는 판국에 그걸 입 밖에 꺼내는 것만도 미안해  그리움만 안고 산다.

그래도 고향산천만은 그렇게 안 된다고 늘 아쉬움을 토해 낸다. 산과 들, 건너다니던 냇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한다. 서울에서 2시간도 안 걸릴 텐데 죽기 전에 한번만 가보면 원이 없겠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들어가 구글 지도로 고향땅을 들여다보지만 갈증에 바닷물 마신 것처럼 목만 더 탄다. 국내외 여행을 많이 해 세계 어디든 마음만 먹으면 다 가보았지만, 코앞에 있는 고향을 못 간다고 생각하면 미칠 것 같다고 한다.

따라서 극히 제한된 이상가족상봉 뿐만이 아니라 실향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고향방문 프로그램까지 확대되어도 모자랄 판에 이런 식으로 판을 깨니 어찌 인간으로서 그럴 수 있는가. 그 선배는 며칠 전 서당 술자리에서 유방과 신풍 얘기가 나오자 내내 말 한 마디 않고 술잔만 기울였다.

-국민일보 2013년 9월2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