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10 [칼럼니스트] 제1593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딴 글 보기 | 거시기 머시기 | 배달신청/해지 | columnist.org(홈)
禮는 철저한 품앗이다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nhp


최근 언론계 선배 한 분이 쓰신 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여섯째, 경조에 무관심하라. ...(중략)...3만원, 5만원 들고 가 혼주와 악수 한번 하고는 식당으로 쫓아가 5만 원, 10만 원짜리 밥 얻어먹는 맛에 인이 박이면 추해지지. 차라리 돈 만원이라도 우송해주면 혼주를 돕는 길이 되지.”

깨끗하게, 남에게 부담주지 않으면서 노년을 보내는 방법 여덟 가지를 열거하신 글인데 이 여섯째 항목에서 눈길이 한 동안 멈췄다. 전적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적지 않는 나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노소를 떠난 보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요즘 경조사 현장 특히 결혼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딱하고 민망한 장면인데 이처럼 대놓고 지적한 사람이 드물었다. 누구나 겪고 공감하면서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껄끄러운 탓이리라.

어떤 혼주가 결혼식 뒤에 “밥값도 안 되는 축의금 내고 간 사람보다 돈만 보낸 친구들이 훨씬 더 고맙더라”며 내뱉는 채신머리없는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또 축의금 조금 내고 부부 또는 일가족이 와서 먹고 가더라는 낯 뜨거운 불평도 가끔 듣는다. 듣기만 해도 딱하기 이를 데 없는 말들이다. 그러면서도 어느 점에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문제니 비난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받은 만큼 주고, 준만큼 받는 예상왕래(禮尙往來)정신이 무너지면서 생긴 경조사의 추태다. 예상왕래는 ‘예기(禮記)’에 나오는 예절에 관한 말이다. “예는 오고 감을 숭상하는 것이니, 갔는데 오지 않으면 예가 아니며, 왔는데도 가지 않는 것 또한 예가 아니다(禮尙往來 往而不來 非禮也 來而不往 亦非禮也)”라고 하여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정신’을 강조했다.

예전이라고 경조사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 의식 속에는 품앗이 개념이 지금보다 철저해 주고받는 것이 자연스럽고 훈훈했다.

만약 내 경조사 때 오지 못했던 사람이 일을 당하면 가지 않는 것도 정확했다. 무슨 사정이 있어서 못 왔던 사람 집에 부조금을 들고 가면, 참석하지 못해 미안해 할 그 사람 마음을 너무 불편하게 하여 오히려 괴롭힌다는 논리였다. 약간 지나치고 억지스런 듯한 이유지만 큰 거부감 없이 모두 이에 동의했다.  

물론 대대로 같은 지역에서 살던 시절이라 예상왕래를 지킬 수 있는 여건이 지금보다는 나았다. 이웃이니 경조사를 외면할 수 없고, 부모시절 받았던 것을 자식 대에도 받고, 갚을 수 있으니 별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급속히 달라져 품앗이를 제대로 이행할 수 없게 되었다. 거주지가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퍼져 있고,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빈번하니 특별한 사이가 아니면 다시 얼굴 대하기도 힘들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를 악용하는 일이 많아져 인심은 각박해지고 천박해져 경조사가 막보기 계산속으로 오염되었다.

일차적으로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의 장삿속 횡포가 이를 부추기니 그 피해는 혼주, 상주뿐 아니라 손님들한테도 막심하다. 진심으로 축하하거나 슬픔을 위로할 여지는 없고 잇속만 따지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초청장 받으면 결혼식장 밥값부터 헤아려본다는 이들이 많다. 웬만한 축의금 들고 갔다가는 혼주한테 해만 입히기 때문이다.

맛도 없고 진심도 담기지 않은 밥값은 왜 그리 비싼지. 그걸 굳이 먹겠다는 하객도 별로 없다. 그러나 절차상 싫든 좋든 먹어야 하니 그야말로 울며 겨자 먹기다. 그러니 차라리 사람은 가지 말고 돈만 보내면 혼주한테 도움이나 되지 않겠는가.

그 선배의 주장은 반어적인 뜻이 강하지만 현실적으로도 절절한 설득력이 있다. 혼주, 상주와 진정으로 만나고 얼굴을 보아야 할 사이를 제외하면 그게 차라리 실질적 도움이 된다.

다른 지방 경조사 참석에는 더욱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오가는 교통비를 얹어 부조금을 더 보내면 훨씬 낫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게 양측이 다 좋다면 너무 야박한 것인가. 그러나 어쩌랴. 어차피 그런 세상인 것을...

‘예기’에 또 ‘가난한 사람은 재물로 예를 차리지 않고, 늙은 사람은 근력으로 예를 차라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오늘날에 맞춰 확대해석하면 자기 경제적 여건에 따라 부조금을 보내고, 몸을 움직여야 하는 참석여부는 늙고 젊음을 떠나 자기 스케줄, 컨디션에 따라 결정하라는 말이다. 내 여건에 맞추되 무리하지 말라는 뜻이다.

가을은 결혼식 초청장이 낙엽처럼 쌓이는 계절이다. 이에 따른 크고 작은 고민도 많게 마련인데 그럴수록 이런 품앗이 정신을 되새기고 그 원칙을 준수하면 마음의 부담을 상당히 덜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손님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인들만의 문제는 더더구나 아니다. 혼주와 상주도 고려해야 할 문제다.

-국민일보 2013년 9월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