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02 [칼럼니스트] 제1591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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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난인데 감세를 하라고?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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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시대 노나라가 거듭되는 흉년으로 나라 살림이 어려워졌다. 임금인 애공이 공자의 제자 유약에게 이를 타개하기 위해 조언을 구했다.

유약은 세율이 10분의 1인 철법(徹法)을 당장 시행하라고 했다. 당시 노나라는 정전제를 실시하면서 공전의 수확은 물론 사전의 수확에까지 세금을 물려 사실상 소득의 10분의 2를 거두고 있었다. 유약이 이를 폐지하고, 10분의 1만 받으라고 한 것이다.

한마디로 50%나 감세하라는 말이니 애공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 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유약은 제2의 공자로 일컬을 만큼 외모도 비슷하고 덕도 뛰어났다. 그런 유약이 그렇게 엉뚱한 소리를 한 걸 보니 틀림없이 자기 의사가 잘못 전달됐다고 본 것이다. 애공의 속셈은 증세에 있었다.

그래서 다시 말했다. “지금 부과하는 10분의 2로도 부족한데 어떻게 감세를 하란 말씀입니까?” 그러자 유약이 거침없이 반문했다. “백성이 부유하면 임금이 어찌 가난할 수 있으며, 백성이 가난하면 임금 혼자 어찌 풍족할 수 있겠습니까?”

나라 살림 이전에 백성의 살림을 우선 걱정하라는 말이었다. 군주와 백성 즉 국가와 국민의 일체성을 강조하며 세금 더 거둘 생각은 말고, 그나마 지금보다 더 적게 받으라니 현실을 너무 모르는 지나친 이상론이 아닐 수 없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정치의 원칙과 이상을 내세우며 임금의 생각과 거꾸로 가니 애공은 얼마나 속이 탔겠는가.

송나라 주자는 이에 대해 증세를 막기 위해 일부러 감세를 주장한 것이라고 넌지시 변명했고, 주자의 선배 양시(楊時)도 조세정책의 원칙을 강조한 것이지 유약이 세상물정을 그렇게 모른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이 기사는 논어 ‘안연’편 9장에 나온다. 지금 서당에서도 이 대목 강독에 이르면 애공과 마찬가지로 “먹물들이란 역시...”하며 딱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조선 성종 때 이창신(李昌臣)은 유약의 말이 비현실적이지만은 않다고 주장했다. 성종 10년(1479년) 6월 어느 날 경연에서 임금과 신하들은 바로 이 부분을 놓고 의견을 나눴다. 그러나 성종과 신하들도 뾰족한 결론이 나올 리 없었다.

그때 홍문관교리로 경연시독관을 겸하고 있어서 여기에 참석했던 이창신이 말했다. “옛날에 이재(理財)한 자를 논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유안(劉晏)을 일컫는데 그것은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한 연후에 나라를 부유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이를 살피소서.” 백성이 부유해야 임금도 부유하다는 말이 실제 실현된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일깨운 것이다.

당나라 유안(715∼780년)은 중국 역사상 몇 안 되는 뛰어난 재정전문가로 지금도 이재의 고수, 부국(富國)의 명신으로 손꼽힌다. 당나라는 현종이 양귀비와 놀아나느라 나라곳간은 부실해지고, 안록산의 난으로 전국토가 피폐해져 망하기 직전이었다. ‘자치통감’에 따르면 수도 장안의 호구수가 전란을 겪으면서 5분의 1로 줄었고, 백성들은 물론 궁중에서도 두 끼니 지을만한 양식이 없을 정도였다.

이때 숙종이 유안을 경제부흥의 구원투수로 등판시켰다. 위기에 마운드에 오른 유안은 경제 활성화와 세수증대를 위해 물가와 경제정보를 치밀하게 장악, 백성의 살림 안정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고 이어 재정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그런 유안의 노력과 진심이 백성에게 제대로 전달돼 세금이 늘어나도 불평불만을 말하는 이가 없었다.

그의 세금징수 원칙은 “과세는 과세 대상의 원망을 사서는 안 된다” “백성의 상황에 따라 과세해야 한다”는 두 가지였다. 이창신은 이것이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한 연후에 나라를 부유하게 했다”고 평하며 성종도 참조하라고 권한 것이다.

이를 철저히 시행하기 위해 유안은 공평한 인사를 가장 중시했다. 모든 일의 성패는 사람 쓰는데 달려있다며, 관리의 엄격한 도덕적 자질을 최우선으로 삼아 유능하고 깨끗한 이들을 임용했다. 친척이나 친구는 기용하지 않았다. 또 관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백성을 괴롭힐 뿐이라며 최소 인력으로 최대 능률을 올리도록 했다. 이창신이 이런 점을 꿰뚫었다.

지금 우리는 세금도 안 내는 일부 국회의원들, 잇따라 터지는 공직자 비리, 특정연금 부족분을 막대한 세금으로 메꾸는 불공평, 부패지수 아시아 상위 국가 등 국민을 편치 못하게 하는 요소들이 널린 가운데 살고 있다. 그런 판국에 세제개편안이 거론됐으니 반발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가 재빨리 원점으로 돌려서 다행이지만 근본 문제들은 여전하다. 당나라 유안의 시책과 비교해보면 뭘 개선해야 할지 저절로 분명해질 것이다.

-국민일보 2013년 8월24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