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20 [칼럼니스트] 제1590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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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臣의 의견일치 나라의 福 아니다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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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방에서 ‘서경’ 함유일덕(咸有一德)편 강독 중에 선생님은 국정운영에 필요한 가부상제(可否相濟)를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오늘날 쓰지 않는 죽은 용어인데다 ‘찬성과 반대가 서로 이루어 준다’는 한문직역이 우리말로 자연스럽지 않아 수강생들이 선뜻 이해를 못한 때문이다. 서경 본문도 아니고 부연 설명하는 주석에 나오는 말인데 선생님은 매우 중시하며 강조했다.  

논어 ‘팔일’편에 오미상제(五味相濟)가 나온다. 이 역시 본문 아닌 주석에 나오는데 쓴맛 단맛 신맛매운맛 짠맛 등 다섯 가지를 섞어 새로운 맛을 만든다는 말이다. 각기 다른 맛이 서로의 특징을 살려주어야만 맛있는 음식이 되고, 여러 악기가 서로 해치지 않으면서 각자 소리를 견지해야 화음을 이룬다. 바로 이것이 ‘상제’다. 따라서 가부상제는 서로 다른 견해를 존중하고 살려서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어 간다는 뜻이 되겠다.

그러나 말이 쉽지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아랫사람은 상관의 의견에 반대하기 어렵고, 같은 구성원끼리도 의견이 갈리면 뿌리 깊은 상처를 남기기 예사다. 그런데 어떻게 찬성과 반대가 서로 도와준다는 말인가. 툭하면 의견이 다르다고 상대편을 박해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 것이 인류역사 아닌가.

이에 비추어 보면 가부상제는 너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가부상제가 죽은 용어가 됐는지도 모른다.

이와 비슷한 뜻인 도유우불(都兪吁咈. 도는 찬성, 유는 소극적 찬성, 우는 소극적 반대. 불은 반대로 요순시대 국정 논의의 필수사항), 한(漢)나라의 헌가체부(獻可替否.신하가 임금에게 옳은 일을 권하고 악한 일을 못하게 한다는 뜻) 같은 개념이 없는 건 아니다. 모두 반대 없는 찬성은 위험하다는 뜻이지만 ‘서로 이루어 준다’는 의미가 담긴 가부상제는 특히 강렬하게 와 닿는다.

현실정치에서는 이를 어떻게 수용했을까.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했더니 가부상제가 180여 차례 나오고, ‘도유우불’ ’헌가체부‘도 합쳐서 가부상제 횟수에 가깝게 나왔다. 세종 때 사간원이 올린 상소문에서 “말해야 할 일을 말하지 않는 것은 신의 직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고, 받아들여야 할 말을 채용하지 않는 것은 정치 도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반드시 임금과 신하가 꾀를 같이 하여 가부상제 해야만 정치의 도가 높아질 것입니다”라고 했는데 그만큼 현실에서도 절실하게 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성종도 어느 날 경연에서 정괄과 채수가 가타부타 말 한마디 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가부상제 뜻을 어겼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대신들이라 한번 봐주지만 만약 임금의 눈치를 보느라 그러면 앞으로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조선왕조실록 성종 24년. 1493년)

가부상제는 인사에도 반영되었다. 세종 3년(1421년) 좌의정에 추천된 조연을 당시 태상왕 태종이 “의정(議政)은 옳다 그르다 하며 서로 돕는 것인데, 조연은 종일 한 마디 말도 없다.”며 탈락시켰다.

이처럼 가부상제는 정치의 요체로 조선조 500년을 관통했다. 중세 로마 카톨릭이 사제 선출과정에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을 두어, 후보자 약점을 지적하고 반대논리를 전문적으로 전개하여 실질적 검증을 한 것에 비하면 느슨하지만 반대 없는 일사불란을 예방하려던 의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못하면 집단이 경솔하고 불합리한 결정을 내려 크게는 미국의 피그스만 침공 실패 같은 참사를 초래하고, 작게는 애빌린의 역설(Abilene Paradox)에 빠지게 된다. 아버지가 외식하자고 하자 부인, 사위 등 식구 모두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암묵적 동의를 했다. 전체 분위기를 해칠까 봐 아무도 이견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는 한심했다. 왕복 3시간이나 걸리는 애빌린에 가서 누구도 만족하지 못한 음식을 먹고 와서 그제야 불만들을 털어 놓았다.

이처럼 윗사람의 권위나 집단의 분위기에 눌려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이 국정에 이르면 국가와 국민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숙종도 “임금과 신하가 부화뇌동하는 것은 국가의 복이 아니니, 공익을 위해 가부가 서로 도우라”(숙종 31년.1705년)고 했는데 바로 이 점을 강조한 것이다.

오늘날 가부상제는 비록 사어(死語)가 됐지만 그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대통령과 각료, 여당과 야당 사이는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직장과 조직, 가정에서까지 소통부재현상이 날로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를 살리고, 나도 사는 가부상제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일보 2013년 8월10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