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06 [칼럼니스트] 제1589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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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짓기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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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서당에 다닌다고 하면 대뜸 이름 잘 짓겠네 하면서 작명을 부탁하는 이들이 있다. 작명, 사주, 관상 등에 관한 자료나 책들이 모두 한문으로 된 탓이리라. 그러나 한문공부 한다고 해서 누구나 이름 짓고, 사주보는 게 아니라 하면 그게 그거지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다그친다.

하긴 작명 사주 등의 공부를 위해 서당에 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런 과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한문해독력을 길러 관계 서적을 제대로 읽으려는 것이다.

가끔 이들과 얘길 나눠 보면 사주, 작명에 관한 소신이나 주장은 거의 절대적이고 종교적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장난기 섞인 말이 나오면 ‘존엄’을 건드렸다며 폭발하는 북한처럼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다.

그러나 서당 선생님들은 다르다. 어느 선생님은 작명에서 획수를 중요시하던데 ‘이룰 성(成)’ 같은 경우는 어떻게 할 거냐고 따진다. 가운데 획이 丁이면 成자가 7획이 되고,ㄱ이면 6획이 된다. 자전에서는 둘 다 인정한다. 이처럼 같은 글자이면서 획수가 다른 예가 더러 있다. 이런 경우 어느 것을 택할 것이며, 그에 따라 운명이 달라져야 하느냐고 묻는다.

한자 하나하나가 오늘날 모습으로 정착한 역사적 과정과 유래가 있다. 문자학은 이를 추적해  한자의 구조를 파악한다. 그런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획수만 따지면 되겠느냐는 것이다.

또 주역 선생님들은 대개 강의 초기에 선을 긋는다. 주역에 점치는 기능도 있지만, 자기 강의는 철학적, 역사적으로 접근할 테니 점술을 기대하는 이들은 감안해서 들으라고 한다.

이런 것들을 예로 들며 작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면, 그래도 예전 사람들은 한문책 뒤적이며 잘 지어 주더라며 쉽게 물러서질 않는다. 그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경명사상(敬名思想)이 뿌리 깊어 이름을 매우 중시했다. 이름 뜻을 돌아보고 의를 생각하며 살라는 고명사의(顧名思義)가 이 사상의 핵심이다.

송나라 소동파의 아버지 소순은 큰 아들 동파 이름을 軾(식.수레 앞 가로대), 둘째 아들은 轍(철. 수레바퀴자국)로 짓고 둘 다 수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나, 없으면 수레운행을 안전하게 할 수 없기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겉모양보다는 실질을 중시하는 가로대(식) 속성에 따라 동파는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할 우려가 있으니 늘 조심하라고 했다. 그리고 ‘철’은 앞 수레 바퀴자국만 따라가면 되므로 무리 없이 살아 갈 수 있을 거라 했다.

결과적으로 소식은 왕안석 신법을 둘러싸고 여러 사람과 대립, 온갖 어려움을  겪었고 소철은 순탄한 일생을 살았다. 이름을 통해 두 아들의 운명을 너무 정확히 예언해서 ‘천기를 누설했다’는 후세의 평가가 따를 정도였다. 고려 때 김부식의 아버지 김근은 이를 본 따 셋째 아들은 부식, 넷째는 부철이라 짓기도 했다.

이방원을 도와 조선건국의 기틀을 마련한 하륜도 아들 이름을 구(久)로 짓고 ‘나무가 오래 자라면 우뚝 솟고, 물이 오래 흐르면 반드시 바다에 도달한다’며 늘 이름을 돌아보고 의롭게 행동하라고 당부했다. 이순신(李舜臣.순임금을 잘 받드는 신하처럼)과 그의 큰형 희신(羲臣.복희씨 신하) 작은형 요신(李堯臣.요임금 신하), 동생 우신(禹臣.우임금 신하)에도 부모의 간절한 바람과 소원이 들어있다.

이외에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처럼 이름 짓고 그 의도를 설명한 명설(名說), 자를 짓고 지은 자설(字說), 호에 대한 설명인 호설(號說)이 과거 문집에 수 백편 나온다. 우리 글방에서는 이를 한 학기 강좌로 개설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름을 소중히 여겼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사람들 이름은 그 자체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름 석자 가운데 성과 항렬자를 빼면 단 한자가 남는데 여기에 부모의 희망과 염원을 압축해 넣으려면 얼마나 고심해야 할 것인가. 작품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각자 자신의 이름을 잠깐 돌아보라. 자기에 대한 부모 및 주변의 기대와 소원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값에 맞는 삶을 살아오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이 과정 자체가 훌륭한 처세술이요, 고명사의의 본뜻을 실행하는 요체인 것이다.

그런데 남의 이름을 선뜻 지어서야 되겠는가. 더구나 지금은 예전과 달리 뜻도 좋지만, 한자 한글이름을 막론하고 부르기도 좋아야 한다. 또 국제화 시대에 맞춰 영어 등 로마자 표기에도 적합해야 한다. 그만큼 이름의 중요성은 날로 더해가고, 작명에 고려할 사항도 많아져 가고 있다. 물론 작명가들이 신경 쓸 일이지만...

-국민일보 2013년 7월2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