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26 [칼럼니스트] 제1587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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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시지수(不時之需) 대비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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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임원이었던 어느 친구가 퇴직하자 집안에서 그에게 종중살림을 맡겼다. 문중재산에 따른 갖가지 소송과 분규로 애를 먹던 터라 현직에서 회계, 경영 분야를 전담했던 그를 적임자로 꼽은 것이다.

몇 년 뒤 문제들이 대부분 풀려 한숨 돌리려던 차, 엉뚱한 곳에서 복병을 만났다. 다름 아닌 조상문집 번역이었다.

문중에서는 이제 분위기가 안정됐으니 각종 기록을 정리하자고 했다. 종중과 그 친구는 돈 좀 들이면 되는 가벼운 일로 생각하고 착수했다.

일차적으로 한 분의 문집 2책을 선정, 담당자 물색에 들어갔다. 먼저 문중 출신 한문교사 및 관련분야 교수들을 동원하자는 안이 나오자 모두 좋은 생각이라며 찬성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문집 해독능력을 제대로 갖춘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를 만나자더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개탄했다.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들을 탓하지 말라고 했다. 건국이후 한문교육 명맥이 사실상 끊겨 현재 한문교육수준으로는 옛 문집을 능숙하게 읽어내기 어렵다. 그럴 해독력이 있다 하더라도 초서 등 휘갈긴 글씨를 만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인력도 많지 않는데 초서까지 읽을 사람은 그나마 몇 십분의 일도 안 되니 말이다.

그래서 전문가에게 의뢰하기로 했는데 7천만원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쌀 몇 섬만 주면 할 사람 많았고, 그냥 해주겠다는 이도 있었는데 웬 돈이 그렇게 많이 드느냐며 어른들이 예산배정을 꺼렸다. 세상이 달라졌는데 그 변화를 실감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오히려 액수가 적은 셈이다.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이면 돈을 더 들여 아예 종중 전속으로 계약하라’고 권했다. 인력이 턱없이 모자란 데다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같은 국가 고문서 번역에 대부분 투입돼 민간 문서에 돌아갈 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전과 달리 조상 기록을 공인 자격을 갖춘 전문 인력에 맡겨 번역하겠다는 가문이 늘고 있다. 그럴 경우 보통 5책에 3억원 정도 든다고 한다. 한문인력 수요가 그만큼 늘었다.

현재 국가문서 번역료는 2백자 원고지 한 장에 7천원, 일반 민간문집은 2만원 선이다. 그래도 적다며 국가문서 1만3천원, 문집 3만원은 되어야 한다는 게 관계자들 주장이다. 워낙 인력이 부족해 곧 그렇게 될 걸로 보고 있다. 반면 영어나 일어 번역가들은 한문에 비해 턱없이 적은 원고료를 받는다며 불만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어느 한학자는 우리교육이 한문의 불시지수(不時之需)에 대비하지 못한 결과라고 평했다.

불시지수는 소동파의 ‘후적벽부(後赤壁賦)’에 나오는데 ‘갑자기 하게 되는 음식바라지’를 말했다. 가을달밤 주인이 “손님 있으면 술이 없고, 술 있으면 안주 없다더니 달 밝고 바람 시원한 이 밤을 어찌하나” (有客無酒 有酒無肴 月白風清 如此良夜何)하니, 손님이 석양에 잡은 물고기가 있으니 술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주인이 부인에게 말하니 “그동안 술 한말 보관해두었다. 당신이 느닷없이 찾을 때를 대비해서(我有斗酒 藏之久矣 以待子不時之需)”라며 술동이를 내놓았다.

이후 불시지수 의미가 차츰 전환되고, 확대돼 ‘무엇인가가 뜻밖에 필요한 것’을 일컫게 되었다. 특히 평소에는 관심도 없다가 구하면 당연히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그렇지 않을 때 불시지수 대비가 미흡했다고 한다.

한문이 그렇다. 그 한학자 지적에 따르면 어쩌다가 옛 문헌 국역문제가 나오고 그게 북한과 비교라도 되면 우리는 그동안 뭐했느냐고 개탄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눈길도 주지 않았으면서, 어디서 누군가가 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만 높인다. 그 종중어른들이 흔한 것으로 알고 있다가 막상 쓸려니, 없거나 드물어 당황한 것처럼...

그게 어디 한문뿐이겠는가. 냄비근성과 쏠림병폐가 심한 우리 사회 곳곳에 무관심과 소홀로 방치된 부문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조선시대 상소문이나 각종 건의문에서 불시지수 대비를 역설하며 유비무환을 강조한 일이 많았다. 서양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에 대처하라’(expect the unexpected)는 말을 자주 쓰는데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조정이나 지도층은 대부분 마이동풍으로 일관했다. 귀담아 듣고 제대로 대비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그렇지 않아 가래로도 막지 못하고 호되게 당한 일이 적지 않았다. 조선조가 망국의 길로 들어서면서도 충분히 감지하지 못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도 그런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국민일보 2013년 6월29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