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16 [칼럼니스트] 제1585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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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점, 카바레 그리고 서당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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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많은 악기점들을 보면 늘 궁금하고 걱정돼요. 누가 저걸 다 사가나. 아무리 노래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도 먹고 살만큼 벌이가 되는지... ” 우리 글방에서 한문강독을 하시는 선생님 한 분이 가끔 던지는 농담이다.

70년대 출범한 서울의 낙원악기상가는 각종 악기와 노래방기기, 음향장비까지 두루 갖춘 악기종합시장이다. 1층부터 4층까지 350여 점포들로 이루어져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이며, 악기라는 단일 품목으로도 유일무이한 곳이라 한다. 그만큼 번성하는 곳이다.

우리 서당도 30년 가까이 이곳 한 귀퉁이에 터를 잡고 있는데 요즘 쓰는 말로 존재감은 거의 없다. 우리 선생님이 이런 물정을 모르고 말씀하신 게 아니다.

시장 활력과 서당 비역동성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데 대한 안타까움을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한물 간 한문이나 읽자고 찾아오는 글방 수강생 격려차원에서 하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래도 서당에서 자기들 걱정하더라는 말을 들으면 악기상들은 뭐라고 할까.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겉옷도 제대로 못 갖춘 ‘머슴살이가 주인마누라 속곳 걱정’하는 꼴이라며 도리어 우리를 걱정할지 모른다.

그러면서 서당에서는 ‘마음을 다스리는 글’이라는 뜻의 ‘심경(心經)’을 비롯한 여러 과목을 펼쳐놓고 성리학의 올바른 이해와 심성(心性) 수양, 내면세계 성찰과 사유에 관해 왈가왈부하고 있으니 문외한이 보면 수면발작증을 일으키고도 남을 노릇이다. 그 극적인 대조는 ‘아가씨와 건달들’ 무대 저리가라다.

그래도 뉴욕 환락가에서 복음을 전파하던 구세군 아가씨들과 건달들 사이에는 로맨스라도 있지.... 사라와 건달 도박꾼 스카이, 아들레이드와 거짓말쟁이 네이슨 사이처럼 말이다. 이에 비해 악기점과 서당은 소 닭 보듯이 서로 무덤덤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악기상가 사람들은 내심 서당을 괴상하게 보고 있다.

서당과 같은 층에 극장이 있으며, 몇 년 전까지는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카바레도 있었다. 극장, 카바레, 악기상이 모인 곳에 서당이 끼어 든 것이다. 카바레가 있을 때 해질 무렵 춤추러 가는 사람들과 서당 가는 이들(야간 과목 수강생)이 함께 승강기를 타면 물과 기름을  섞어 놓은 것 같았다.

카바레 주 고객은 근처 시장 남녀 상인들이었는데 하루 일을 마치고 즐기러 가는 이들은 기쁨과 활기가 넘쳐났다. 반면 서당 사람들은 대체로 무표정한데다 조용하니 매우 대조적이었다.

여성들이 특히 그랬다. 두드러진 차이는 가방에 있는 것 같았다. 춤추러 가는 이들은 다채로운 백을 메고 다니는데 한문 배우러 가는 여성들은 대부분 책가방을 가지고 다닌다. 책가방은 여성의 매력을 해치면 해쳤지 아름다움을 북돋아 주는 물건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미모가 출중한 여자라도 책가방을 들면 꼭 전도사 같으니 말이다.

캬바레와 서당이 약 30m 정도를 사이에 두고 본업이 시작되면 가관이었다. 한쪽에서 밴드 소리 요란하게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하고 쿵쾅대면 이쪽에서는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 열호아...’하니 지나가는 개도 어리둥절할 노릇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더욱 대조적인 장면이 눈에 띄었다. 복도에 나와서 스텝 밟는 연습을 혼자 열심히 하는 남자를 보면 우리가 괜히 민망했고, 2500년 전 공자 말을 놓고 이러니저러니 하면서 수업시간에 들은 것을 되풀이 말하고 있으면 그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로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복도에서 일하는 청소 아줌마한테 극장이 어느 쪽에 있느냐고 물었다. 아줌마가 ‘요 앞은 카바레구요 저리 가야 극장이에요’ 하니 그 사람이 다시 물었다. ‘그럼 오른 쪽은 뭐예요? 내 친구가 그쪽으로 오는 모양인데...’

‘아이구 거긴 아니에요. 거기는 이상한 사람들 모이는 곳이에요’ 청소아줌마가 명쾌하게 판정해 주었다. 이상한 것은 카바레나 악기상이 아니고 한문서당임을 확실히 구분해 준 것이다. 얼마나 시원하고 명확한 결론인가.

그 아줌마들은 지금도 우리가 서당을 오가는 모양을 대하면 외계인 보듯 할 때가 많다. 카바레를 처분하고 근처에서 대형술집을 운영하는 전 주인도 가끔 우리를 보면 반가워하면서 은근히 천연기념물 희귀종 대하듯 한다.   

그러니 우리 선생님이 악기상 걱정할 때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불을 보듯 뻔하지 않는가 말이다. 겉은 멀쩡한 사람들이 왜 저기를 드나들까하고... 그러나 외계인이든  천연기념물이든 모두 감수하며 우리는 오늘도 악기상가를 기꺼이 오르내린다. 제멋에 사는 게 인생이니까.

-국민일보 2013년 6월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