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16 [칼럼니스트] 제1584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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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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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 파고가 거센 가운데 글방에서 공교롭게도 ‘한비자’의 ‘현학(顯學)’강독차례를 맞았다. 현학은 세상에 드러난 유가(유교)와 묵가의 학문을 지칭하고, 비난하는 것으로 거기에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쓰면 안 된다는 경고가 들어있다.

공자에게는 담대자우(澹臺子羽)와 재여(宰予)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이들이 가르침을 받으러  왔을 때 담대자우는 외모가 너무 형편없어 재주와 덕이 박할 것이라 짐작했고, 재여는 언변이 고상하고 세련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겉보기와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이에 한비자는 ‘용모만 보고 자우한테 실수했고, 말씨만 보았다가 재여한테 실망했다(以容取人乎 失之子羽 以言取人乎 失之宰予)’라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사람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열거했다. 공자 같이 지혜로운 사람도 이런 실수를 하는데 그보다 훨씬 떨어진 당시(전국시대) 군주들 안목으로는 결과가 뻔하다며 경고했다. ‘겉만 보고 사람을 임용하면 어찌 실패하지 않겠는가(因任其身 則焉得無失乎)’

담대자우는 공자 가르침을 받은 후 공직생활을 하면서 공무가 아니면 절대 윗사람 관저에 가는 일이 없었고, 아무리 급해도 지름길로 가지 않았다. 지름길은 지금으로 치면 행정편의주의와 사리를 위한 편법쯤에 해당된다. 그만큼 덕행이 뛰어났다.

반면 공자 제자 3천2백 명 가운데 공문10철(孔門十哲)이라 하여 우수한 제자 10여명에 뽑힌 재여는 낮잠을 자다가 스승한테 혼났다. 공자는 그를 꾸짖으며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은 흙손질 할 수 없듯이 쓸모없는 너를 어찌하면 좋으냐”고 개탄했다.  그밖에도 언변이 뛰어난 대신 경망스러운 행동을 자주 해 스승으로부터 면박을 많이 당했다.

낮잠 좀 잤다고 그렇게 가혹한 비난을 할 수 있느냐고 할 수 있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심각한 일이었다. 즉 배우는 이가 자기 의지를 통솔하지 못해 안일과 나태에 빠지는 것을 가장 경계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겉모습에 넘어간 자신을 공자는 반성했다. “예전에는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실을 믿었는데, 이제는 말뿐만 아니라 그 행실까지 살피게 됐다. 이건 재여 때문인데 덕분에 내 자신 잘못도 고치게 되었다”(논어. 공야장 제9장) 공자는 이처럼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한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자신도 이를 통해 깨우치게 된 점을 고맙게 여겼다.

공자는 또 “많은 사람이 (임용하려는 이를)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제대로 살피고, 여러 사람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논어. 위령공 제27장)고 했다. 즉 공익을 외면하고 사리에 유혹당할 여지가 없는지 철저히 검증하라는 뜻이다. 담대자우와 재여의 일을 겪고 난 뒤인지, 그 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 쓰는데 그렇게 고심했다.

이에 글방사람들은 공자도 사람 보는 눈이 완벽하지 않아 실수를 저지르는데 그보다 못한 군주들은 오죽하겠느냐고 경고한 한비자의 말을 지지하며 최근 윤창중 사태에 대한 박근혜대통령의 후속조처에 대해 상당한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대통령이 윤 전 대변인의 말과 글에 보낸 신뢰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편 맹자의 사람 쓰는 방법이 공자보다 한발 앞서 나간 것으로 현 시대 감각과도 걸맞다는 의견이 많다. 맹자는 공직자 임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좌우 신하 모두 해당자를 어질다고 해도 허락하지 말고, 여러 대부가 어질다고 해도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며 온 국민이 어질다고 말한 뒤에야 직접 살펴서 사실이면 등용해야 한다. 반면 등용한 뒤에 좌우 신하,모든 대부가 모두 그를 불가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온 국민까지 불가하다 한 뒤에야 직접 살펴 불가한 점을 발견하면 바로 버려야 한다.”(맹자. 양혜왕 하편 제7장)

이어 더 극단적인 처방도 그는 주저 없이 밀어붙였다. “좌우 신하가 모두 그를 죽여야 한다고 해도 듣지 말고, 대부들이 죽여야 한다고 해도 듣지 말며, 온 국민이 죽여야 한다고 한 다음에 살펴서 죽일만한 일이 있으면 죽여야 한다. 그러면 국민이 죽였다고 할 것이다”

즉 인사를 혼자 하지 말고 시쳇말로 시스템을 제대로 갖춰 안전망을 단단히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문제가 생겼을 때 대통령뿐만 아니라, 그에 동의한 국민도 책임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윤 전 대변인 임명은 야당과 국민은 물론 여당까지 반대했다. 그럼에도 밀어 붙인 결과 이런 참사를 맞았다. 1차적 해결책으로 공자의 방법을 고려하고, 다음에 맹자 방안을 채택하면 같은 잘못의 반복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국민일보 2013년 5월1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