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24 [칼럼니스트] 제1582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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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읽는 소리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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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글방 어느 여성회원이 민족문화추진회(현 고전번역원)에서 공부하던 때 일이다. 수업이 오후 5시 시작이라 3시쯤 집을 나서는데 이웃 할머니가 평소와 달리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애 엄마, 오늘도 나가시네. 벌이가 괜찮은 모양이야.”
“네? 무슨 말씀이신지...”
“ 아이구, 말 안 해도 다 알아요. 요샌 그런 게 흉이 아녀. 돈만 벌면 되는 거지. 부끄러워 할 것 없어요.”
“...?”

어리둥절해진 그녀에게 할머니가 전혀 걱정하지 말라면서 덧붙였다. “아, 요새는 무당굿도 무슨 문화잰가 하면서 아끼는 세상 아니유. 게다가 돈 벌지. 그것도 어쩌다 한 번이 아니고 날마다 일이 있는 모양이니 얼마나 좋아.” 그때서야 그녀는 한방 얻어맞은 듯한 충격 속에서 할머니 말뜻을 짐작했다.

한문은 소리 내서 읽는 성독(聲讀)을 학습방법의 최선으로 친다. 그래서 날마다 논어, 맹자 등 한문책을 큰 소리로 읽었는데, 그 할머니는 무당이 푸닥거리하러 가기 전에 하는 리허설쯤으로 알았던 것이다.

예전에 듣기 좋은 소리로 선비 글 읽는 소리, 다듬이 소리,아기 울음소리를 쳐주었다. 이른바 친환경 소리 베스트들이었다. 그런 대접을 받았던 소리가 무당푸닥거리 정도로 들리게 됐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선비 아닌 여자가 읽기 때문에 그런 걸까? 천만의 말씀. 남자가 읽어도 마찬가지다. 한 남성회원이 집에서 복습차 한문을 낭송했다. 그러나 곧 포기해야 했다. 부인과 애들이 ‘누구 죽었느냐, 경은 왜 읽느냐’며 기겁했기 때문이다.  

성독이 혹 서투르지 않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도 아니다. 다른 회원은 자기가 읽는 대신 유명한 한학자 테이프를 틀어놓고 공부했으나 결과는 같았다. 역시 가족들이 ‘사위스럽게 웬 귀신 부르는 소리냐’며 항의했다. 가족에겐 영안실 독경소리와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정인지, 조광조의 글 읽는 소리에 연정이 불타올라, 한밤중 담장을 뛰어넘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던 비련의 처녀들이 이를 보면 뭐라고 할까. 또 아들의 글 읽는 소리에 헛기침으로 기쁨을 감추며 흐뭇해하던 조상들은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시대가 변하면 사라지는 것들은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20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성독이 시대변화에 휩쓸려 소음공해 정도로 치부되는 것을 쉽게 동의할 수 없다는 게 글방사람들 생각이다. 아무렇게나 용도폐기해도 될 유산은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이를 뒷받침할 사례들이 많다. 저변이 아직 만족할 만큼 넓지는 않지만 전국성독대회 등 곳곳의 한문서당행사들에 대한 호응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실감나고 감동적인 사건(?)이 있었다. 몇 해 전 어느 서당의 한 과목을 여성한학자가 맡게 되었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이 아니면 수강이 쉽지 않은 시경(詩經)을 한다니, 고령자를 중심으로 한 대부분 수강생이 뜨악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여자가 한문을 가르치다니...’

여성한학자를 접해보지 못한 그들로서는 그럴 만도 했다. 더구나 자식으로 쳐도 막내뻘이 될까 말까 한 어린 선생이니 심사가 편치 못했다. 그러니 첫 대면이 상당히 껄끄러울 수밖에...

하지만 선생은 그건 다 예상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진행했다. 학습내용, 방법 등을 소개한 뒤 교재에 들어가자 성독이 왜 중요한가를 설명했다. 그래도 반응은 그저 그랬다.

이어 선생의 성독 시범이 뒤따랐다. 그냥 설명해도 어려운 3000년 이전의 시를 읽어서 어쩌겠다는 건지 선생에게 우호적인 사람들도 은근히 걱정했다. 그러나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퍼져나가자 수강생들의 숨소리와 표정이 차츰 놀라움과 감탄으로 바뀌어 갔다. 성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문자 그대로 열광이었다.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폭우에 흙탕물 떠내려가듯 ‘한문과 여자’등 갖가지 고정관념들이 말끔하게 씻겨나가는 순간이었다. 단순한 수강을 넘어 열성 팬들까지 생겨났다. 그 어려운 시경 강의는 그래서 학기 내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왜 다른 곳에서는 이상한 소리로 들리던 성독이 이날 갈채를 받았을까. 차이라면 앞의 경우는 듣는 이들이 내용을 전혀 몰랐고, 뒤는 배울 교재라는 걸 안다는 것뿐인데 반응은 엄청나게 달랐다.

결국 그 차이만 극복하면 우리 고유의 전통소리로서 부활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판소리, 민요 등 국악이 한동안 외면당했다가 예전의 인기를 되찾은 것처럼 글 읽는 소리도 우리 일상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이 바로 거기에 들어있었다. 물론 거기까지 가는 길에 현실적 장애는 생각보다 훨씬 많겠지만...

-국민일보 2013년 4월20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