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73 [칼럼니스트] 2012년 4월 2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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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라의 사과가 씁쓸한 이유

이재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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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 케이블 TV Y-STAR의 '뚜껑뉴스'에서 방송인이자 팝칼럼니스트인 김태훈씨가 ‘김구라의 사과가 씁쓸한 이유’라는 제목으로 논평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예사롭게 들렸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새겨보면 아주 경청할 만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김구라의 경우를 보면) 과거에 잘못을 했더라도, 현재의 위치가 그럴싸하면, 과거에 일어난 일 따위는 그냥 덮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이 말에 이어 “그래서 우리나라는 과거사 청산이 그렇게도 안 되는 가 보다”라고 덧붙였다. 정말 기막힌 멘트였다. 피해자들은 그냥 덮고 넘어 갈 것이 아니라 김구라의 과거 잘못에 대해 준엄하게 꾸짖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단단히 받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인터넷에서 ‘김구라 막말’ 동영상을 검색해보면 그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가를 알 수 있다. 그의 말을 듣다보면 화가 치밀고 구역질이 날 정도이다. 김구라 같이 막된 인간이 과거에 인터넷 방송에서 그렇게도 많은 막말과 욕설을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공중파 방송에 진출해 성공을 거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하겠다. 그러고 보니 보통 재주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런 사실을 두고 김태훈씨는 ‘과거에 일어난 일 따위는 그냥 덮어지고, 그래서 과거사 청산이 그렇게도 안 되는 것’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가한 것이다. TV의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곡을 찌르는 말솜씨가 돋보이는 김태훈씨지만, 그가 이처럼 예리한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는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까지 들 정도이다.

김태훈씨가 논평에서 한 표현대로 김구라의 현재 위치가 ‘그럴싸’하기 때문에, 즉 김구라가 제법 인기를 끄는 연예인이 됐기 때문에 많은 피해자들은 마음에 없는 용서(?)를 해주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가 가만히 있는 자신에 대해 험담을 하고 욕설을 하는 사람에 앙금을 안 가질 수 있으며, 나중에 사과를 한다고 해서 ‘진심’으로 용서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김구라의 막가파식 언동은 연예인들 사이에서 잠시 덮여져 있었을 뿐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인터넷상에서 ‘디지털 흔적’으로 뚜렷이 남아 있었고 결국에는 김용민 막말문제가 불거지면서 함께 세상에 노출되어 ‘잠정은퇴’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김씨의 논평대로 깨끗이 ‘과거청산’을 하지 않고 그냥 덮어두었기 때문에 불행의 씨앗은 그대로 남아 스스로 싹을 틔우고 있었던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도 영화감독 장진, 탤런트 정진, 가수 윤종신, 개그우먼 김미화 같은 사람들은 ‘마녀사냥’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토하고 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연예인들에게는 공소시효도 없고 사생활도 무시한다. 김구라가 과거에 막말했던 사실을 몰랐느냐”(정진), “(막말을) 다 알면서 지금까지 기사 쓰고 방송 출연시키고 광고 섭외해 놓고, 그분들 모두 사기당한 거냐”(장진)는 것이다.

연예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과 담당기자들은 잘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일반국민은 잘 모르고 있었음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다. 연예계에 좀 관심이 있는 사람은 김구라가 독설을 잘 하는 개그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겠지만 이 정도로 험한 말을 했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틈만 있으면 자신들이 ‘공인’이라고 말하는 그들이 이런 일을 두고 ‘사생활’ 운운하는 것은 핀트가 한참 빗나간 것이라고 하겠다.

김구라는 지난 16일 오후 소속사를 통해 "많은 분들께 실망을 안겨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철없던 과거를 자숙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보내겠다"고 공식 사과했다. 사과문의 문맥으로 봐서 잠정적으로 방송계를 당분간 떠나 있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정도의 잘못을 범했다면 ‘잠정은퇴’가 아니라 ‘영구은퇴’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김구라의 사과가 심각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 아니길 바라지만, 과연 진심으로 사과한 것인지는 선뜻 믿기가 힘들다. ‘국민욕쟁이 김용민’이 “근신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해놓고 하루 이틀 만에 다시 본업을 재개하는 보면, 김구라도 언제 갑자기 나타나서 “‘본래의 나로 돌아가겠다”고 할는지 알 수가 없다. 김용민과 김구라는 둘 다 거침없이 막말을 해대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위치가 그럴싸하면, 과거에 일어난 일 따위 그냥 덮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과거사 청산이 그렇게도 안 되는 가 봅니다.” 2008년 6월, 가히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 할 만한 말을 했던 방송인 김태훈씨에게 ‘김구라의 사과’가 씁쓸하게 느껴졌던 것처럼 필자 또한 2012년의 4월의 ‘김구라의 사과’가 그저 씁쓸하게 느껴질 뿐이다.  

-2012.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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