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70 [칼럼니스트] 2012년 2월 2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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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서당은 왜 다니는가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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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서당을 왜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다니느냐고 묻는 사람이 꽤 있다. 그 이유를 나는 잘 안다. 사람이 뭘 배우기 시작해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어떤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야 하는데 당신은 아무리 봐도 ‘아니올시다’니 한심하고 딱하지 않느냐는 뜻이다. 아직 한문 문장 해독도 제대로 못하니(이를 문리가 나지 않았다 하는데 그렇게 표현하는 것조차도 나는 송구스럽게 생각한다)千妥當萬妥當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오이를 거꾸로 들고 먹어도 제 멋이요,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은 있더라고 난들 변명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리차드 판스워드가 출연한 ‘스트레이트 스토리’로 데이빗 린치가 감독한 작품이다. 미국에서 실화를 영화화 한 것인데 우애 깊던 형과 사소한 일로 다퉈 10여년 외면하고 살던 73세 노인 앨빈 스트레이트가 3살 위인 형을 찾아가는 황혼 로드무비다.
헛된 자존심과 허영, '그 망할 놈의 술'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 뒤, 왕래를 끊고 살다가 형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삶이 더 저물기 전에 화해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자신도 건강이 좋지 못해 지팡이를 두 개 짚어야 한다. 게다가 600km 떨어진 형 집을 가는데 교통수단이 마땅치 않아 잔디 깎는 기계를 개조, 시속 8km 속도로 6주 걸려 찾아 가는 것이다.

앨빈 역을 맡은 리차드 판스워드가 평생 스턴트맨과 조연만 하다가 70대 후반에 처음으로 주연을 맡아 암 투병 중에 촬영하고, 영화 개봉 전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도 영화 내용 못지않게 많은 팬들을 울렸다. 그밖에 기이한 소재의 영화만을 만들던 데이빗 린치가 이 영화를 만든 점, 아이오와에서 위스콘신까지의 아름다운 풍광이 압도하는 화면, 영화 속의 느린 속도 등 숱한 화제를 남겼다.
 
하지만 내가 따로 주목한 대목이 있는데, 도중에 만난 젊은이들과 앨빈의 대화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언지 알게 돼 부질없는 일에 얽매이지 않게 됐다’는 대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젊은 시절이 자주 떠오르는 것’이 가장 괴롭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과거의 영광과 추억이 아름다운 이들이 많지만, 나처럼 실패와 실수, 어리석음으로 지난날이 망가져버린 사람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절대 돌아보고 싶지 않은 그런 시절이 날구지하는 신경통처럼 툭하면 여기저기서 쿡쿡 쑤시고, 욱신거릴 때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앨빈도 그게 괴로웠을 것이다.

그 아픔을 달래고, 후회를 조금이나마 줄이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기웃거린 곳이 한문서당이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많은 나날을 書自書 我自我(책 따로, 나 따로)로 일관하고, 얼음판에 넘어진 소처럼 눈만 껌벅이기 일쑤이니 ‘논어’ ‘맹자’를 아무리 읽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 나에게 어느 날 論語 爲政편의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와 ‘多聞闕疑 愼言其餘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則寡悔(많이 듣고 의심나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하면 허물이 적고, 많이 보고서 미심쩍은 것을 제외한 나머지를 삼가 행동하면 후회하는 일이 적을 것이다)’가 옆구리 쿡 찌르며 눈짓을 했다. ‘네 잘못을 네가 알렸다’라는 식으로... 이 대목을 처음 본 것도 아닌데 내 마음은 거기서 한참 머물렀다.

왜 그런 것 있잖은가. 항상 지나던 길이나, 늘 보던 산천이 어느 날 새로운 모습과 색다른 의미로 자신에게 다가옴을 느꼈던 경험 같은 것 말이다.

거기에 나를 비추고, 대입해 보았다. 그리고 이 구절들과는 너무도 다르게 살았던 사실을  아무리 불편하고 괴로워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한 배움이란 무엇을 모르는가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데, 나는 뭘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면서 천둥벌거숭이로 나댔으니 식은땀 흘릴 수밖에...

영화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그런 점에서 시사한 바가 컸다. 앨빈이 형과 화해를 위해 떠난 것처럼 나 역시 삶에서 부질없는 것들은 과감히 떨쳐내고, 지난날을 용서하고 과거의 나와 화해하는 멀고 힘든 길을 우선해야 한다고 부추겼다.

지난날에 대해 남의 용서를 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나로부터의 용서다. 그에 따른 나의 분노와 고통은 어쩌면 살아생전 쉽게 누그러지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멍하니 앉아만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爲政편의 그 말을 안내자 및 키워드로 삼아 여러 한문과목들을 접하면서 不知爲不知를 확인하고, 미심쩍고 의심나는 것들을 제외하는 훈련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그것이 조금이나마 자신을 위로하고, 구제하는 길이라고 믿은 때문이다.

영화는 형제가 감동적으로 만나지만, 내 여정은 실패로 끝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그래도 앨빈처럼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들은 시속 100km 이상으로 질주할 때, 걷는 것과 마찬가지인 시속 8km로 가던 그의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본다. 앨빈의 교통수단이 개조한 잔디깎이라면 내 것은 한문읽기가 될 것이다.  

남 보기에 답답하고 기이한 여정이지만 그 과정 자체가 지난날 과오에 갇힌 내 운신의 폭을 조금이나마 넓혀줄지 모른다. 또 인생의 中盤戰까지 잃은 점수의 만회는 불가능해도, 終盤戰에서의 더 큰 실점은 막아 주리라 믿는다.

 그러다 운 좋으면 임계점에 도달, 핵반응 버금가는 변화가 내게도 올지 누가 알겠는가. 그것이 뭘 모르는 망상이라도 좋다. 그 핑계로  한문서당을 계속 얼씬댈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문화’ (2012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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