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15 [칼럼니스트] 1562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딴글보기 | 거시기머시기 | 손님칼럼 | 배달신청 | columnist.org(홈)

등산복 패션시대

이규섭 (서울칼럼니스트모임회원,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청계산에 갔더니 부자동네 부근이라 그런지 아웃도어도 끝내주더군"
옛 직장 동료의 부러움 섞인 푸념이다. 퇴직한 뒤 얼마동안은 전직 사우회 OB산악회 월례산행에 동참하다가 슬그머니 빠졌다. 산행 뒤의 뒤풀이가 지나치기 때문이다. 땀흘리고 난 뒤 마시는 막걸리는 갈증과 피로를 풀어주는 청량제다. 문제는 1, 2차에 끝나지 않고 노래방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 부담스럽다. 친목과 우의를 다지는 것도 좋지만 운동량 보다 많은 열량을 섭취하기 일쑤다. 자연과 호흡하며 체력단련을 하러 온 건지, 술을 마시려 온 건지 헷갈린다. 막걸리 냄새 풀풀 풍기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신경 쓰인다.

또 다른 이유는 철따라 등산복을 구색 맞춰 구입하기도 만만찮다. 이름난 산이 아니라도 형형색색 고가의 '컬러풀 등산복'은 패션쇼를 방불케 한다. 요즘 스포츠웨어의 기능은 기본이고, 패션이 강조되어 디자인도 화려하다. 동네 뒷산을 오르면서도 등산복은 히말라야 등반복장이다. 등산모와 재킷, 바지와 스틱, 배낭과 등산화 등 아웃도어 고급품을 걸치는 데 400∼500만원 든다는 보도를 보고 놀랐다. 스포츠웨어를 보면 그 사람의 계층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판이니 산에까지 가서 빈부의 격차를 느끼는 것 같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산에 갈 때나 입는 등산복차림을 요즘은 거리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골프장은 물론 해외여행 때도 부티를 과시하듯 부쩍 늘었다. 등교하는 초등학생들과 시장 가는 아줌마도 해외 유명 메이커 아웃도어 브랜드를 걸쳤다. 아이들 입학이나 졸업선물은 물론 회갑과 칠순잔치 선물도 다운재킷이라니 등산복 인기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최근 한 공식석상에 칠순의 선배가 청바지에 재킷을 걸치고 손에는 태블릿PC를 들고 와 눈길을 끌었다.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우리시대의 명제다. 늙어갈수록 추하게 보이지 않으려면 옷차림도 젊게 입어야 한다"고 강조해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연말 한국패션업계가 선정한 10대 뉴스도 '아웃도어 매출 폭발'이다. 등산복이 국민의 일상복으로 진화 되다보니 광고전도 뜨겁다. 예전에는 아웃도어 브랜드 광고 모델은 전문산악인이 주류였으나 요즘은 인기 남녀연예인이 모델로 등장하여 소비자의 구매욕구를 충동시킨다. 아웃도어시장이 커지다 보니 해외명품 브랜드는 현지 가격의 두 배까지 '뻥튀기'해서 가격을 올리는 실정이라고 한다. 국내 브랜드도 덩달아 고가 위주의 판매에 열을 올려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가 떠 안게 됐다.

주5일 근무제와 함께 웰빙 바람이 불면서 지방자치단체마다 경쟁적으로 등산로를 정비하고 걷기 코스를 만들면서 레저인구가 크게 늘었다. 지하철 타고 당일치기 산행을 갈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여성 산행인구 증가와 자전거 은륜 물결도 아웃도어시장의 전성기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대표적인 서민 레포츠마저도 고가의 등산복을 걸쳐야하는 과소비 풍조가 못마땅하다. 가벼운 산행을 하면서도 아웃도어 패션에 신경 써야 하니 이래저래 서민들만 불편하다.
-교차로(2011. 6. 10)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