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61 [칼럼니스트] 2011년 6월 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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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은 평생교육 과목이다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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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언론보도에 따르면 초등학교의 봄. 가을 소풍이 거의 사라지고, 버스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한 체험학습이나 현장학습 형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즉 버스로 박물관, 미술관을 찾아가거나 도자기 등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현장을 방문하고, 점심도 식당에서 사 먹거나 단체 주문한 도시락을 이용하는 것이다.

산길, 들길을 친구와 함께 걸어가고, 집에서 장만한 도시락을 까먹으며 하루를 즐겼던 추억이 남아있는 어른 세대에게는 아쉬움이 없지 않겠지만, 급속한 시대의 변화가 불러온 부득이한 현상이니 탓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전국토가 도시화하면서 우선 걸어서 갈만한 곳이 드물어졌다. 생활수준 향상에 따라 가족단위 국내외 여행이 늘어나면서 소풍, 수학여행 등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그저 그런 정도인 것도 중요한 이유다.

그럼에도 예전의 소풍과 추억만 떠올리며 정서상 문제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그렇다고 소풍을 없애자는 말은 아니다. 소풍의 본뜻을 제대로 살린다면 형식은 좀 바뀌어도 괜찮다는 뜻이다.

소풍은 문자 그대로 학교를 잠시 벗어나 자연을 접하고, 교실에서 학습한 것을 확인하며, 몸과 마음을 새로이 하는 행사이다. 따라서 행사의 외형을 꼭 일정한 것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소풍, 수학여행, 야유회, 국내외 여행, 관광 등은 표현만 다르지 본질은 같다. 즉 산수가 정도에 따라 수학, 해석, 기하, 미분 적분 등으로 분화, 심화되지만 수량과 공간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듯이, 소풍과 여행은 나와 자연, 남 그리고 사회와의 관계 및 그 이치를 파악하여 소통하며 그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는 학년의 높고 낮음, 나이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언제나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현재의 소풍 내용은 시대와 환경변화에 따른 개선의 여지가 많다.      

최근 어느 과학강좌에서 한 천문학자가 요즘 어린이들은 달밤이나 달그림자도 제대로  모른다고 해서 참석자들을 웃겼다. 달이 뜨는 밤이면 그게 달밤이지 어찌 그걸 모르겠는가. 만화나 TV로도 얼마든지 보았을 텐데... 그러나 강사나 청중이 씁쓸하게 웃은 것은 달밤을 직접 체험해 본 어린이가 별로 없다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린이만이겠는가. 도시에 사는 어른 가운데서도 달밤이 기억으로만 남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한 가지 예로 달밤을 들었을 뿐이지 먼동이 트는 이른 새벽, 붉게 타오르는 낙조, 마당구석에 자란 흔한 화초, 비올 때 마루 끝에서 올라오는 흙냄새도 그렇게 가물가물할 것이다. 꼭 거창한 소풍, 여행이 아니어도 가능한 것들인데 이렇게 멀어졌다. 자연과 소통하는 길이 그만큼 좁아진 것이다.

그게 문학이나 예술을 들먹이는 이들이나 할 감상적인 소리지, 무슨 대수냐고 빈정거릴 사람이 있을 것이다. 또 부모세대와 달리 요즘 어린이들은 망원경을 쉽게 접해, 마음만 먹으면 달과 별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 텐데 웬 한가한 소리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어린이들이 점수 올리기에 내몰려 ‘마음만 먹을’ 기회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가 학교시험에 초승달과 그믐달, 상현달과 하현달을 묻는 문제가 나왔는데 애가 풀지 못해 점수가 떨어졌다면 그런 반응을 보이던 학부모들이 먼저 야단법석일 것이다. 달밤 과외 같은 것 없느냐며 물불 안 가리고 덤빌 것이다. 성적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그걸 나무랄 수는 없다. 다만 자연과의 소통에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너무 말단지엽적인 데서만 찾는 그 편협함과 무지가 안타까운 것이다. 달을 잘 모르는 세대가 자라서 군복무 중 야간작전을 할 때 초승달, 그믐달은 말할 것도 없고 상현, 하현을 구별하지 못해서 생긴 결과는 어떻겠는가. 극단적인 예를 가상한 것이지만 이를 수긍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이처럼 성적보다 더 중요한 많은 것이 자연으로부터 오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것과 대면하는 산책, 소풍, 여행 등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할 것이다. 끝없이 푸른 하늘, 광할한 바다, 솔바람 소리, 파도 소리, 산천의 생물들과 마주하면서 감성을 풍부하게 하고, 호연지기를 기르게 된다고 하면 흔히 감상적인 글짓기나, 야생마처럼 강건한 체력연마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데 틀린 건 아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학과점수만 신경 쓰는 이들은 이 점을 간과한다.

인간이 제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자연을 벗어날 수 없다.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과 모든 생물은 자연의 한 부분이다. 그래서 거의 100%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만은 생각, 언어, 불, 도구 등을 이용하여 거칠고 냉혹한 일부 자연과 어느 정도 맞서거나 타협한다. 그래도 대부분 다른 생물들처럼 순응하거나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의 힘이 워낙 강력하고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평소에 이 점을 잊고 살아간다. 공기, 지구의 중력 같은 것을 우리가 단 한 순간도 떠나서 살 수 없는데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것도 모자라 웬만한 자연의 힘은 인간이 극복할 수 있다는 오만방자한 생각까지 한다.

자연은 인간의 그런 태도를 용납하지 않는다. 대신 자연의 이치를 정확하게 터득하여 겸손히 이용하면 조용히 그 뜻을 받아 준다. 이런 관계는 자연과의 부단한 접촉과 교류, 이해에서만 가능하다. 자연에 대한 흥미와 더욱 이해하고 싶은 동기도 바로 거기서 유발된다.

젊은이는 자연의 여러 가지 살결을 이해하며 미래와 꿈을 설계하고, 장년층 이상은  자연의 의미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모든 것에 감사하고 한층 더 겸허해 질 것이다. 점수와 성적을 올리겠다는 궁극적 목표도 바로 이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소풍과 여행은 이를 실행하게 해주는 실질 과목이다.

그러니 어찌 학교시절만으로 충분하겠는가. 평생교육 과목으로 삼아 늘 실천하고, 복습해야 할 것이다. 예로부터 사람은 모름지기 견문을 넓혀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귀가 닳도록 들어왔다. 자연과 남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소풍과 여행은 그걸 위한 필수과정이 아닐 수 없다.

-조달청 '나라살림 희망샘터' 5,6월호(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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