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54 [칼럼니스트] 2011년 2월 9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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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들에게 인생매뉴얼을 묻는다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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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기간 입산수도하고 나면 스승은 이제 하산해도 좋다는 허락과 함께 비밀 주머니를 졸업선물로 준다. 잘 간직했다가 절박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만 펴보라는 신신당부와 아울러... 그러면 그 선물은 신통하게 결정적 시기에 위험으로부터 구해줄 뿐만 아니라, 성공으로 가는 발판까지 제공한다. 이런 비법을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도 한 두개쯤 지니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실 속에 그런 것은 없다. 아쉬운 대로 각종 제품의 사용설명서 같은 것이라도 있으면 삶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하다.

여러 가지 제품에는 소비자 편의를 위한 사용 설명서가 있으며 내용도 가능하면 쉽고 빠르게 익히도록 되어 있다. 또 사용 도중에 문제가 생기면 Q&A에 의뢰하라고 안내하는가 하면, 어느 부분은 직접 친절하게 애프터서비스를 실시해 소비자의 신뢰를 잃지 않도록 노력한다.

인생에도 그런 매뉴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에게 삶을 준 조물주는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매우 아쉽고 섭섭한 일이다. 책임감도 희박하다. 생명을 주었으면 사용기간을 보장해 주어야 하는데 그게 분명치 않다. 유통기간 보증서도 없고, 일정한 매뉴얼도 없다. 매뉴얼이 없으니 Q&A나, 애프터서비스 같은 것이 있을 턱이 없다. 그러니 삶이란 것이 야광탄도 없이 무턱대고 쏘아 대는 한밤중 사격 꼴이다.

조물주의 계획된 의도인지, 실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과 환경은 변화가 무쌍해 표준을 잡을 수 없다. 입자의 위치를 정하려고 하면 운동량이 확정되지 않고, 운동량을 정확히 측정하려 하면 위치가 불확정해지는 양자물리학의 불확정성 원리와 비슷하다. 인간 대 인간, 인간 대 환경 등 무엇 하나 고정된 것이 없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표준화가 매뉴얼의 일차적 요소인데 인생은 이 모양이니 사용설명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렇다고 조물주가 아주 외면만 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인간이 교육을 고안해서 나름대로 삶의 틀을 설계하도록 해주었다. 교육이야말로 그런대로 가장 나은 인생매뉴얼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남달리 보람 있는 삶을 엮어간 사람들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위인들이다. 그걸 보면 조물주를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문제는 교육내용이 간단명료하지 않고, 습득과정이 너무 길어 죽을 때까지도 제대로 알았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의 숫자만큼 많았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정답이 없는 걸 보면 답답하고 안타깝다.

그러나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불만스러워도 그것이 거의 유일한 인생매뉴얼임을 인정하고 따르는 길 밖에 없다. 위인은 이를 최대한 충실히 이행하고, 삶의 효과를 극대화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 하나하나가 바로 ‘스승이 제자에게 건네 준 비법’인 것이다. 조물주는 그들에게 Q&A 처리와 애프터서비스도 대행시키고 있다.

평소 위인이나 위인전에 관심이 있건 없건,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들의 삶과 남긴 행적의 영향을 받고 있다. 역할모델(Role Model)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영향을 받고, 그를 닮고 싶어 하거나, 모방하도록 학습되고 있다. 그 대상은 예수, 석가, 공자 등 성인과 많은 위인들에서부터, 현존하는 훌륭한 인물, 인기인까지 다양하다. 직장 상사, 학교 선생, 선후배, 친구들도 나무랄 데 없이 당당한 대상이다.

그럼에도 왜 대부분 이미 세상을 떠난 과거의 인물 즉 위인들을 더 많이 권하는가. 그들은 어느 정도 검증과 평가가 끝나 위상이 비교적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생존하여 행적이 현재진행형인 사람들은 좋건 나쁘건 계속 변화하므로 그를 닮고, 따라 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 역시 늘 변하고 있는데, 상대까지 고정되지 않으면 여러 가지 혼란이 불가피하기  마련이다.

존경하는 나폴레옹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그 역시 속물에 불과했다며 분노한 베토벤, 서로를 위해서라면 목이 잘린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사이라고 자랑하던 중국 한나라의 장이와 진여의 비극적 결말 등 수 없이 많은 사례가 생존인물들 사이에서 빚어졌다. 그렇다고 생존인물을 존경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생존인물들 간의 존경과 사랑이 성공한 예도 얼마든지 있다. 다만 과거 위인에 비해 어려움과 실망이 많이 따르므로 신중하게 고려하라는 말이다.

지난 연말 한 기관에서 직장인들을 상대로 새해 계획을 물었더니 절반 이상이 자기계발을 우선으로 꼽았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많은 이들이 삶을 엮어 나가는 효과적 방법을 갈망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기계발이란 인생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기존의 길을 보수하거나, 새로 개척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생매뉴얼을 더욱 익히는 지름길이요, ‘스승이 제자에게 준 비법’ 같은 것이다.

그러나 처음 결심과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해이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연말연시 같은 세월의 마디에서 점검해 보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와 후회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재정비하여, 새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인간이 지닌 귀중한 장점이다.

이럴 때 가장 적절한 안내자가 위인들이다. 위인을 가이드로 내세우는 데에 따르는 비용은 없다. 별도의 팁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들은 우리들에게 인생매뉴얼을 다시 숙지시키며, 휘청거리는 현실 속에서 중심을 잡도록 애정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이에 대한 보답은 그들이 가리키는 길을, 그들 방법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물론 인내와 노력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뒷받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나라살림 희망샘터’(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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