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49 [칼럼니스트] 2009년 11월 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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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
우혜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hazelwoo


요즘 즐겁다는 사람보다는 괴롭다고 말하는 사람이 주위에 많다. 특히 괴로운 사람들로는 중고생 아이를 둔 학부모들이 있다. 아이가 학교에서 성적이 떨어져 학원에 보냈는데 그 학원에서 낸 영어 에세이 쓰기 숙제를 안 해 가서인지 학원에서 잘리자 어떤 엄마는 “아, 이래서 보따리를 싸나 봐요”하고 괴로워했다. 엄마가 무슨 수로 자기도 모르는 영어 에세이 숙제를 아이에게 가르칠 수 있느냐 말이다. 학교에서는 학원에서 해오라 하고, 학원에서는 집에서 해오라 하고, 그런데 엄마는 학원비 부담하려면 일하러 나가야한다.

직접 일하는 사람보다 줄 세우고 평가하려는 시스템 안에 자리 잡은 사람이 행세하는 세상이다. 부모는 어떻게든 석차를 앞당겨 이 등수를 올려야 한다. 학교에서 요청하면 시험감독도 하고, 학교에서 시키는 일은 자기 직장 일 제쳐두고 가야한다. 자식에게 혹시라도 영향을 끼칠까봐서 말도 못한다. 자식 교육 때문에 전세로 들어갔다 2년 만에 오른 전세금을 울며 겨자 먹기로 부담하거나 아님 옮겨야하는 가정들. 그러니 괴롭다. 이들의 가정은 이런 사회적 환경만 아니면 즐거울 수도 있는 인생이다. 자식 낳아 기르는 재미도 쏠쏠한데 말이다. 따뜻한 밥해서 먹이는 부모와 집밥 먹는 자식. 부모와 자식이 밥 같이 먹는 순간은 얼마나 즐거운가 말이다.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도 괴롭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변화하는 기업 환경에서 직원들 먹여 살려야 하니까. 높은 자리 있는 사람도 괴롭다. 밑에 있는 사람들 눈치 봐야 하고, 자기 위에 있는 사람 눈치도 봐야 한다. 아파트 두 채인 사람도 괴롭다. 사 둔 아파트 한 채가 값이 떨어져서 말이다. 그저 돈이 많아 은행에 넣어둔 사람은 괜찮을 것 같다. 그런데 은행에 돈 많이 넣어둔 사람도 괴롭다고 한다. 자식들이 카페 한다고 몇 억씩 가져가 홀라당 날리고 돌아온단다. 그 집 마누라도 힘들다. 남편이 돈 아끼느라고 그런지 집에서 세끼 다 먹는 삼식이라 밥 차려 주느라 어디 여행도 못가고 하루하루 시중들다가 시들어간다.

남편도 우울하다. 요즘 시중에 돌아다니는 유머 중 이런 내용이 있다.
50, 60, 70, 80대가 모였다. 그런데 모두 얼굴에 멍이 퍼렇게 들었다.
50대는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물었다가 멍이 들었다고 한다. 60대는 아침에 “밥 달라”고 했다가 맞았다고 한다. 70대는 외출 준비하기에 “어디 가냐”고 물었다가 그렇게 됐다고 한다. 80대 노인은 단지 아침에 눈 떴을 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면 즐거운 인생은 없는가? 어떤 삶이 즐거운 인생인가? 나의 답은 “내가 즐거운 일을 하면 즐거운 인생이 되지 않겠는가”이다. 가족원 전체가 즐겁기는 어렵겠지만 내 몸뚱이 하나는 나하기 나름이다. 자기 가족을 꾸리느라 못했던 일들은 지금이라도 하면 된다. 밴드하고 싶었던 사람은 지금이라도 악기를 구해 연주하고 배우러 다니면 즐겁다. 직장 다닐 때는 바빠서 못해본 바느질을 배워 가방을 만드는 친구도 있다. 요즘 재봉틀은 바늘귀를 자동으로 끼워주기 때문에 나이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또 식당밥 싫은 사람은 요리교실에 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스스로 해서 먹는 즐거움을 누린다. 이런 저런 것을 배우면서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들을 사귀고 오래된 친구도 이런 기회를 통해 자주 만나 더 진한 우정을 쌓아간다.

저녁 먹고 나와 공터에서 하는 댄스강습에 참여하는 아줌마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본다. 더운 여름날 가족들 언제 들어오나 기다리지 않고 다들 나와 춤을 배운다. 노래도 하고, 수영도 하고, 등산, 낚시 등등 친구와 함께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면 不亦悅乎아!).”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말이다.

그러나 아직 한국은 가족이 중요하고 부모가 누구인지를 묻는 사회다. ‘소장수의 아들’ ‘장관 딸’을 말한다. 그냥 나 자신으로 땅에 두 발 딛고 살아도 그리 나쁜 인생은 아니다. 갓 구운 빵, 맛있는 과일잼, 지금 막 내린 커피의 향, 기름이 자르르 도는 굴비를 구워 따듯한 밥과 먹는 한 끼 식사, 멀리 사는 친구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 요즘 이런 책 읽고 있다며 나누는 담소, 외국에 사는 친구가 보내온 내 여행 중의 사진, 그런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새로운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언젠가 강원도 산에 갔다 사온 구황식물이었다는 곤드레 나물이 생각나 밥할 때 함께 해서 먹으니 별미다.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도다.”
옛 선비들은 이렇게 읊었다. 31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던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했지만 그에게 나물은 즐거움이었다.

喫蔬飮水藥在其中
나물 먹고 물마시니 그 속에 낙이 있네

문득 대학입시를 치러 서울로 함께와 산동네 방에서 함께 자고 시험장에 갔던 뻐드렁니 친구가 생각난다. 여름방학 후 누군가가 강의실로 찾아왔다. 그 친구가 방학 중 집에서 음식을 잘못 먹어 사망했다는 소식을 알리러. 꽃다운 열아홉의 나이였다. 허망하기는…….  살아남은 우리는 다 즐거운 인생이다. 사는데 낙이 없다고? 취미, 친구, 책, 나물, 루이 암스트롱의 진한 목소리로 듣는 노래 ‘What a Wonderful World’를 추천한다.

         I see trees of green, red roses too
         I see them bloom for me and you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I see skies of blue and clouds of white
         The bright blessed day, the dark sacred night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The colors of the rainbow so pretty in the sky
         Are also on the faces of people going by
         I see friends shaking hands saying how do you do
         They're really saying I love you.

         I hear babies crying, I watch them grow
         They'll learn much more than I'll never know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Yes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 조달청 '희망샘터' 2010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