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47 [칼럼니스트] 2010년 10월 9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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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에 담긴 노인 신세

이규섭 (서울칼럼니스트모임회원,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블랙 유머 '3번아 잘 있거라, 6번은 간다'는 10년 가까이 됐어도 꾸준히 진화하며 생명력을 유지한다. 유머에 담긴 세태 풍자의 공감 폭이 큰 탓이다. 등골빠지게 애지중지 키워 출세시킨 아버지가 아들집에 들러 머물면서 가족 구성원의 우선순위를 눈치챘다. 1번은 손자, 2번은 며느리, 3번은 아들, 4번은 강아지, 5번은 가사도우미, 6번은 자신으로 강아지보다 못한 개밥의 도토리신세라는 것을 알았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텅 빈 아파트의 키 번호를 깜빡 잊어 들어가지 못하고 겉돌았다. 결국 귀향버스에 올라 "3번아 잘 있거라, 6번은 간다"고 아들에게 전화를 건다.

가족 우선순위는 며느리의 가치판단기준으로 홀대받는 노인들의 위상과 기죽은 남편들의 비애가 녹아있다. 가정의 대소사를 쥐락펴락하는 주부의 파워는 개그코너 '여성이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는 '여당당' 대표보다 세다. 시아버지와 남편을 업신여기면서도 자식은 1순위로 정하고 올인하는 것도 세태의 반영이다. '자식이 노부모를 부양했다'는 말은 이제 '전설이 된 이야기'라는 우스개는 진화 된 버전이다.

나이 들수록 마누라의 위세에 꺾여 기 못 펴고 힘 못쓰는 노인들을 풍자하는 블랙 유머는 많다. 60대, 70대, 80대 노인 세 명이 노인정에서 만났다. 세 사람 모두 얼굴에 멍이 시퍼렇게 들었다. 80대 노인이 60대 노인에게 물었다. "자네 눈두덩이가 왜 그렇게 퍼래졌는가?""아침에 밥 달라고 했다가 맞았다"고 한다. 70대 노인은 "마눌님이 외출하기에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가 맞았다"고 대답했다. 80대 노인은 "난 아무 소리도 안 했네. 그냥 아침에 눈뜨니까 눈떴다고 때리더라"고 털어놓았다. 나이 들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노인들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초고령사회를 풍자하는 유머도 등장했다. 한 노인이 타임머신을 타고 2050년으로 갔다. 지하철과 버스에 경로석이 사라졌다. "이제 우리나라의 인륜과 경로사상이 땅에 떨어졌다"고 탄식했다. 옆에 있던 노인이 "여보게, 이제는 죄다 늙은이 뿐인 세상에 생뚱맞게 경로석을 찾는가"라고. 실제로 2050년이면 한국의 노인인구는 38.2%로 초고령사회로 접어든다는 게 통계청의 예측이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519만 명으로 10명 가운데 1명이 노인이다.  

또한 혼자 사는 노인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100만 가구 넘는다. 그 가운데 70대가 58만 가구로 절반을 차지한다. 유독 70대에 독거노인이 많은 이유는 광복과 6.25전쟁을 거친 세대로 자녀를 많이 낳았으나 자식들이 직장을 찾아 도시로 진출하여 함께 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요즘 시어머니 모시고 살겠다는 며느리들이 어디 있느냐"며 정든 고향에서 친구들과 말벗하며 사는 자발적인 홀몸 노인도 늘어나는 추세다.

10월 2일은 노인들에 대한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새기자고 정한 '노인의 날'이지만 갈수록 노인들의 위상은 블랙 유머에 담긴 풍자처럼 홀대받아 서글프다. 인간은 늙어서도 인간답게 사는 것이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일회성 경로잔치가 아니라 경로효친의 미덕을 되새기는 온고지신의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교차로(10년 10월1일자)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