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45 [칼럼니스트] 2010년 8월 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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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생명력

이규섭 (서울칼럼니스트모임회원,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미국 남부지방 목화밭은 남북전쟁 포화 속에 쑥대밭으로 변했다. 노예가 없어진 지주들은 농장을 포기했고, 북부의 뜨내기들은 남부로 몰려와 헐값에 그 토지를 가로챘다. 남부 사람들은 몰락한 가문과 갑자기 찾아든 가난 속에서 자신들이 지켜온 부와 명예, 고유문화와 자긍심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을 무력감 속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남부의 정신'을 스크린에 녹아냈다. 조지아주 타라 농장의 딸 스칼렛 오하라의 사랑과 미움, 질곡의 삶과 불굴의 투혼을 그려 아카데미상 10개 부문을 휩쓸었다.

서울 실버영화관 개관 이후 두 번째 매진사례(첫 매진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메일을 받고 들렀다. 영화관은 추억을 되새기려 온 노인들로 붐벼 명화의 명성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1939년 제작되어 우리나라에 처음 개봉된 것은 1955년이지만 영화관에서 본 것은 중고등학생 시절인지 그 이후인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1930년대는 미국의 대공황기로 불황에 신음하던 시절인 데 러닝타임 222분 짜리 대작을 만들었다는 게 새삼 놀랍다. 숱한 화제를 몰고 캐스팅 된 비비안 리의 미모는 역시 아름답고, 클라크 케이블의 콧수염은 야성미가 넘친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무성영화에서 토키영화 실험을 하던 시절이 아닌가.

1993년 애틀랜타를 방문하여 원작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마거릿 미첼의 생가와 영화의 배경이 된 타라 지방을 둘러보았기에 남다른 감회로 차분하게 감상하는 기회를 가졌다. 애틀랜타 도심 미드타운에 위치한 마거릿 미첼(1900∼1949년) 생가는 1926년부터 7년 동안 '바람과 함께…'를 집필한 곳이다. 불후의 명작이 탄생된 집필실은 비좁고 단촐하다. 지역신문기자로 재직하면서 쓴 신문 칼럼과 편지, 그가 쓰던 타자기와 생활용품, 세계 각 국 언어로 발간된 책과 영화포스터 등을 전시한 박물관이다. 그 뒤 두 차례 화제로 소실되었으나 다시 복원했다고 한다. 첫 남편과 이혼한 그녀는 직장동료와 재혼했고, 피치 트리 14번가 건널목에서 교통사고로 49세를 일기로 숨졌다. 사고가 난 자리엔 은행건물이 들어섰고, 그 앞에 작은 추모 동판을 세워 놓았다.

애틀랜타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20여㎞ 가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무대인 클레이튼 카운티. 마지막 명 대사 "타라, 오 내 고향, 타라에 가자. 거기에 가면 그이를 되찾을 방법이 생각날거야. 결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의 '타라'농장이 있는 곳이다. 타라로(路)에 접어들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탤미지 농장'의 저택이 울창한 나무숲에 가려있다. 이 집을 모델로 영화 세트를 제작했다. 농장 부근 존스버러는 남북전쟁 최후의 격전지로 미첼기념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공원에는 남부의 전통적인 저택과 학교, 노예가족, 정원 등을 재현해 놓아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지난 4월엔 개봉 70주년 기념행사를 애틀랜타영화제와 함께 열어 명화의 가치를 되새겼다고 한다. 젊은 날의 꿈과 희망은 바람과 함께 사라져도 추억의 감성을 자극하는 명화의 힘은 세다.
-교차로(2101.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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