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44 [칼럼니스트] 2010년 7월 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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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도 맘 먹기 나름

이규섭 (서울칼럼니스트모임회원,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이육사의 시 '청포도'가 떠오르는 칠월이다. '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청포도 맛처럼 상큼한 시어들은 한 폭의 수채화다. '푸른 바다'와 '흰 돛단배'의 배색은 갈매기의 날개 짓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풍경화다. 청포를 입고 찾아올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은 담백한 수묵담채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깔고 알알이 익은 청포도를 송이채 올려놓으면 군침 돌게 만드는 정물화가 된다. 교과서적 시 해석을 벗어나면 전체적인 색조는 맑고 밝고 투명한 여름 서정이 화폭에 넘실거린다.

장마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을 건강하게 나는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이 좋을까?  더위를 피해 강과 바다와 산을 찾는 풍경화 같은 여름나기 보다, 마음을 담백하게 비우는 수묵담채화나 정물화처럼 차분하게 휴가철을 보내고 싶다. 나이 들어 바다를 찾는 것은 노추를 알몸으로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이 균형 잡힌 초콜릿근육을 과시하고 비키니차림으로 S라인을 뽐내는 틈바구니에서 흰 머리칼의 배불뚝이가 수영복을 입고 해변에 어슬렁거리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쑥스럽고 부끄럽다.

중년시절까지는 이열치열의 심정으로 비지땀을 흘리며 산을 찾기도 했으나 이제는 힘에 부친다. 퇴직 후에는 친인척 합동 피서로 계곡을 주로 찾았다. 대가족의 식사를 챙기느라 젊은층은 피서가 아니라 야외취사에 더위먹게 생겼다며 은근히 불만이다. '집 나가면 개 고생'이라고, 교통체증과 바가지상혼에 시달리고 잠자리 불편으로 피서를 위해 집을 나서기가 녹록치 않다.

휴가는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쉼을 통해 활력을 저축하고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먹고 마시고 즐기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휴가형태에서 점차 문화체험이나 생태탐방 등 다변화되어 휴가문화가 선직국형으로 가고 있다. 유명관광지나 피서지를 찾는 것만 휴가는 아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것도 방법이다.

최근 미 주간지 뉴스위크지는 하버드 의대 교수들의 '건강비결'을 소개해 관심을 끌었다. 세계 최고 의학전문가들의 건강한 삶도 '마음가짐'에 달렸다고 한다. 주말에는 이메일을 열어보지 않고 가족과 함께 낮잠을 즐기거나, 소파에서 목적 없이 뒹굴면서 느긋한 시간을 통해 정신적 긴장감을 푼다는 것.

세상만사 맘먹기 나름이지만 알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올 휴가철엔 끈적거리는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정물화처럼 쇼파에 앉아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거나, 따분하고 지루하면 동네 근린공원이나 한바퀴 돈 뒤 그동안 가까이 하지 못했던 시집을 펼치거나 독서로 무료함을 달래며 무념무상의 무채색으로 집에서 뒹굴어 보련다.
-교차로(2010.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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