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40 [칼럼니스트] 2010년 4월 2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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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그 적들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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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술집 등이 밀집한 골목길의 A라는 밥집에서였다. 우리 점심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른 일행이 우리 자리로 다가왔다. 얼른 밥값을 지불하고 일어서며 동료 한 명이 너스레를 떨었다..
“밥을 다 먹지도 못 했는데 막 쫓아내네. 그래 밥값 다 받았으니 이제 가라는 거지? 우리는 착해서 이렇게 먹고 난 자리를 깨끗이 치우기까지 하는데...”  앉았던 자리의 휴지 등을 모아서 휴지통에 버리며 그가 주인아줌마를 쳐다봤다.

“아, 자기들도 다른 손님 밀어내다시피 하며 들어왔잖아. 그리고 거기는 밥 다 먹고, 나는 밥값 받았으니 볼 장 다 본건데 왜 뭉개고 있으려고 그래?  또 밥 먹은 상 깨끗이 하는 건 집안에서나 밖에서나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데 웬 생색이야”

A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밥집 B. 다른 날 역시 우리 식사가 끝날 무렵 다른 손님들이 다가왔다. 주인아줌마의 딸이 우리 식탁의 그릇들을 나꿔채듯 가져가며 혼잣말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한 동료가 농담조로 말했다.  

“미안해요. 별로 값도 안 나가는 된장찌개, 김치찌개나 먹으면서 뭉개고 있었으니...앞으로 조심할게요”라며 너스레를 떨자 저쪽에서 일하던 아줌마가 듣고 “아이구, 무슨 말씀을... 잘 알면서도 저래. 그러면 우리가 섭허잖아. 바쁘지 않은 시간에 오면 잘 해드릴게”하며 환히 웃었다. 그러자 딸이 눈을 허옇게 뜨고 자기 엄마를 째려보았다.

얼마 뒤 B밥집은 문을 닫았다. A집은 더욱 번창해갔다. 차이는 간단했다. A아줌마나 B아줌마가 미소와 친절로 손님들을 무람없이 대하는 건 같았는데 B집은 딸이 문제였다. 엄마를 돕겠다고 나온 딸이 미소와 친절은커녕 손님들 때문에 자기 엄마가 고생한다는 투로 늘 불만이었다. 고생하는 엄마를 위한다는 효심은 높이 살만하지만 그 방법에 문제가 있어 도리어 불효를 저지른 꼴이 되었다.

이를 보고 한 친구가 말했다. “그 딸은 무뚝뚝함과 불친절로 웃음의 적이 됐을 뿐만 아니라 자기 엄마의 적까지 됐네” 그러나 옆의 다른 동료가 덧붙였다. “그 정도가 아니야. 결국 우리에게도 밥집 선택의 폭을 줄여놓았으니 공공의 적이지”

이는 일은 별로 특이한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어디서나 흔히 있는 일로 많이들 겪어 보았을 것이다. 밥집 술집 뿐인가. 관청, 공공기관 등에서 어렵지 않게 보아왔다. 어느 지하철역 창구에서 웃음기 없이 불친절하던 역원에게 “이 자식아. 너 아니어도 그 자리에서 일할 사람 얼마든지 있어. 그 따위로 승객 대하려면 그만 둬. 빨갱이만도 못한 놈 같으니...”하고 소리치던 어느 노인의 호통이 좀 지나치긴 했지만 전혀 틀린 말도 아니다.

대면업무를 하는 창구에서 웃을 줄 모르는 이들이야말로 시민들의 기분을 잡치게 하고, 사회 분위기를 흐려놓는 공공의 적이 아닐 수 없다. 공익을 해치는 건 마찬가지이므로 서비스업무에서 웃지 않는 건 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을 누군가가 했는데 오죽하면 그러겠는가.

웃음의 적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어느 모임에서 한 친구가 우스개를 꺼냈다. 동창회에 다녀 온 여자가 핸드백을 방바닥에 내동댕이치고 퍼져 앉아 짜증을 내니 남편이 내가 또 뭘 잘못했나하고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러자 여자 왈 “동창회에 갔더니 다른 년들은 다 서방이 죽고 없는데 나만 서방이 살아 있잖아. 나이 50 다 되도록 이리 복 없는 년이 나 말고 어디 또 있을까”. 그러니 좌중이 뒤집어질 수밖에.

그런데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 남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 그 여자는 다른 남자가 생긴 거야. 틀림없어...” 그랬더니 다른 여자가 이를 즉각 반박했다. “아이구, 여자만 탓하지 말아요. 남자가 오죽하면 그러겠어요. 남자들도 마누라 죽기를 원하는 이들이 많아요”

순간 그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무슨 잘못을 저지르다 들킨 것처럼 머쓱해지고 분위기는 찬물 뒤집어 쓴 꼴이 되었다. 문자 그대로 우스개의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완전히 판을 엉망으로 만들었지만 본인들은 이를 전혀 알지 못했다. 심성은 착하지만 본의 아니게 남들의 웃음을 앗아간 이들도 정도는 다르지만 ‘공공의 적’을 면했다고는 볼 수 없다.

또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어느 자리에서 어떤 이가 이야기 중에 ‘남자는 평생 여자를 두 번 모른다. 그건 결혼하기 전과 결혼한 뒤’라는 말을 인용했다. 이에 대해 모두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한 친구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왜 그것이 우습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가 정말로 그 뜻을 모르고 있음을 파악한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되풀이하며 시험문제 풀듯 설명한 뒤 “그러니까 남자는 죽어도 여자를 알 수 없다”는 말이 아니냐고 하자 그때서야 그는 혼자 웃었다. 그러나 전체 분위기는 이미 되돌릴 수 없이 식어버린 뒤였다. 이처럼 유머를 꺼낸 뒤 다시 설명해줘야 되는 이들이 더러 있는데 이 역시 ‘웃음의 적’이 되기에 모자라지 않다.

웃음은 마음의 치료제이며 몸의 미용제란 말이 있다. 달리 말하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비타민이다. 그런데 아예 웃음과는 담을 쌓아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 괴롭히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본의는 아니지만 주제 파악을 못해 분위기 썰렁하게 만드는 대책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공공의 적은 딱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누구든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의 적이 되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항시 조심하면서 가능하면 웃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웃지 않으려면 차라리 울어라. 그러면 웃지 않는 사람보다 오래는 살 것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 웃음을 강조하는 적절한 반어법이 아닐 수 없다. 너나없이 명심해야 할 말이라 하겠다.

 -‘바른조달.119호’(2010.04)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