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35 [칼럼니스트] 2010년 1월 2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딴 글 보기 | 거시기 머시기 | 배달신청/해지 | columnist.org(홈)
소원은 마법사 아닌 내가 완성하는 것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nhp


조조, 유비, 손권의 60여년 삼국시대가 거의 막을 내리던 서기 276년.   유비의 촉나라는 이미 망했고, 조조의 위나라도 사마염에게 빼앗겨 진(晉)나라로 바뀐 뒤 삼국통일은 막바지 로 치닫고 있었다. 이때 진나라는 양자강을 사이에 두고 끝내기 상대인 오나라와 대치중이었다.

당시 오나라 임금 손호는 포악하고 방자하여 민심이 그를 등진 데다, 수전(水戰)을 제외한 다른 면에서 전력이 많이 떨어졌다. 이를 정확하게 간파한 진의 명장 양호(羊祜 221년 ~ 278년)가 이때야말로 천하를 평정할 기회라며, 오를 정벌하자고 조정에 건의했다. 그렇지 않고 손호가 자연사하여, 오나라 사람들이 훌륭한 인물을 임금으로 내세우면 통일은 물 건너간다고 보았다.

그러나 정세판단에서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과 혹시 양호가 공을 세울까 시기한 일부 세력의 반대로 이 계획은 채택되지 않았다. 그때 양호가 이렇게 한탄했다. “천하에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항상 열 가운데 여덟, 아홉이나 되는구나.(天下不如意事 十常居八九.천하불여의사 십상거팔구. 常대신 恒(항)으로 쓰기도 하나 뜻은 같음).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니 어찌 뒤에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한탄하지 않겠는가? ”<통감절요 제25권 한기(漢紀)>

이때부터 양호의 ‘천하불여의사 십상거팔구’라는 말은 전쟁뿐만 아니라 모든 세상일에까지 확대돼 마음먹은 일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살아가기 어려울 때 후세인들의 입에 자주 오르는 명언이 되었다. 달리 말하면 세상에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란 2할이 될까말까라는 뜻인데 이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다는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세상이다. 그러나 양호의 말을 상기하면 그리 불평만 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세상이 그렇게 되어 먹은 것인데 사람들이 자기 잣대로만 가늠하고 기대하며, 잘 안 되면 투덜대는 것이다.

불교 ‘보왕삼매론’의 다섯째 항목은 ‘일을 계획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이다. 일이 쉽게 풀리면 사람의 뜻이 경솔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교만하고 안이해지며,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면역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긴 시간과 많은 어려움 및 실패를 거쳐서 성취해야만 진정한 자기 것이 된다고 가르친다.  

새해가 되면 대부분 나름대로 소원을 이루기 위한 계획과 다짐을 새로이 하는데 양호의  말과 보왕삼매론의 가르침을 감안하면 한결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실천방안도 상당히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즉 성공률 2할, 뒤집으면 실패율 8할을 늘 염두에 두고 치밀하고 차분하게 그리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추진해 나간다면 소원 성취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다. 또한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오더라도 크게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힘을 곧 갖추고 전력과 투지를 재정비할 수 있다.

야구에서 3할 타율은 예술의 경지라고 한다. 열 번 타석에 들어서서 일곱 번 실패했는데도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 것을 여기에 대입하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투수가 던진 공이 홈플레이트까지 도달하는 데 대략 0.4초.   이 짧은 순간에 타자는 타격 여부를 결정한 뒤 때리고, 달려야 한다. 상대편 야수 9명이 총력을 기울여 타자를 잡으려고 하는 가운데 무사히 진루해야 하니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여기에 비해 우리의 세상일은 어떤가. 결론부터 말하면 야구보다 훨씬 더 어렵다. 야구는 타자의 안타를 저지하려는 상대 숫자가 정해져 있고, 위치도 확실하다. 즉 적군의 상황을 파악한 가운데에서 겨루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방해하는 적의 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심하게 말하면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잠재적인 적이다. 아니 어떤 때는 내 자신이 나를 해치는 적이 되기도 한다. 그뿐인가. 야구의 적군과 달리 세상의 모든 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회의 무수한 변수 뒤에 매복해서 나를 위협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나 공격할지 모른다. 이런 상황이니 성공률 1,2할은 오히려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따라서 소원은 남이 성취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이루는 것이다. 강인한 노력과 끈질긴 인내가 뒷받침을 전제로 한 것이 진정한 소원이고 현실적인 것이다. 그래야만 자기 인생을 장악하고 꿈과 진로를 조정해 나갈 수 있다.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가 그의 시 '인빅터스'에서 말한 것처럼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내가 내 운명의 주인, 내 영혼의 선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로토복권 당첨 꿈이나, 마법사 또는 유리구슬한테 바라는 것은 엄밀한 의미의 소원이 아니다. 단순한 요행일 뿐이다. 설령 그것이 이루어진다 해도 평소 자신의 노력과 인내가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만다.

새해에는 요행 아닌 소원을 잘 설계하고, 강력하고도 치밀한 추진방안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자기에게 맞는 꿈이어야 하고, 적성에 맞아야 한다. 즉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한 토대 위에서 꿈을 설계해야 실현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바른 조달’ (2010 봄호) 2010.01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