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34 [칼럼니스트] 2010년 1월 20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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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흐르듯 산다는 것

이규섭 (서울칼럼니스트모임회원,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새해 첫날, 텔레비전 생중계를 통해 해맞이를 한 뒤 신춘문예 당선 작품을 읽으며 보냈다. 제주 성산 일출봉에서 강원도 강릉 경포대까지 일출 명소의 해맞이 풍경을 거실에 앉아 골고루 보는 호사를 누렸다. 호랑이 해를 맞아 경북 포항 호미곶(虎尾串) 해맞이광장에는 10여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강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출을 기다리다 엷은 구름사이로 붉은 해가 솟아오르자 손 벽을 치며 환호하는 해맑은 얼굴에서 한해의 시작을 실감한다. 찬란한 금빛을 뿌리며 수평선에서 불끈 솟는 해돋이를 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구름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본들 어떠랴.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향해 건강과 소망을 기원하며 새 출발을 다짐하는 가족과 연인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동해안 해안선이 남으로 내달리다 호랑이 꼬리처럼 툭 튀어나온 호미곶은 울산 간절곶과 간발의 차이로 한반도에서 해가 두 번째로 빨리 뜬다. 조선의 풍수지리학자 남사고(南師古)는 '동해산수비록(東海山水秘錄)'에서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으로 백두산은 코, 호미곶은 꼬리에 해당되는 천하명당'이라고 묘사했다. 일제강점기 때는 이곳에 쇠말뚝을 박고 한반도를 연약한 토끼에 비유해 '토끼꼬리'라고 폄하했다. '장기갑'으로 지명이 바뀌는 수모를 당했으나 80년만인 2001년 12월 '호미곶' 제 이름을 되찾았다. 행정주소도 올해부터 포항시 대보면에서 호미곶면으로 바뀌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새해 첫 신문의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한 신춘문예작품들은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신선하다. 타락한 지구를 쓸어버리고 싶어하는 남자가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기까지의 변화를 그린 '청소기로 지구를 구하는 법'(박지영)은 판타지 성향의 소설로 주재가 독특하고 상상의 폭이 넓어 긴 여운을 남긴다.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아들이 잃어버린 애완견을 찾아 헤매는 기다림이 변주되는 '개가 돌아오는 저녁'(연규상)은 평이한 문장으로 잔잔한 감동을 준다. 하지만 샛별처럼 등단한 신춘문예 작품이 대표작이 되거나 별똥별처럼 사라지는 경우도 있어 신춘문예 무용론이 심심찮게 고개를 든다.

새해가 되면 작심삼일이 될망정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마련인 데 '물 흐르듯 살자'고 긴장의 끈을 내려놓는다. 지키지 못할 다짐을 하는 것도 허망하고,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것도 부질없다. 허욕을 부리면 자칫 노추(老醜)로 비칠 수 있고, 아등바등 치열하게 사는 것도 두렵고 쉬 지치는 나이다. 물 흐르듯 담담하게 평상심(平常心)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평상심을 도(道)의 경지라고도 하지 않는가. 물줄기가 수많은 포말을 일으키며 에둘러 바다에 이르듯 세파(世波)에 휩쓸리거나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는 일 또한 어렵다.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사는 것이 안분지족의 삶이다. 새해에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듯 나눔과 봉사로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났으면 좋겠다.

-'교차로' 2010. 1. 8일자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