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32호 [칼럼니스트] 2009년 12월 3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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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사’ 새 해석


홍순훈 (칼럼니스트)
http://columnist.org/hsh


현재까지 전해지는 유일한 백제 가요며, 한글로 기록된 최고(最古)의 노래라는 정읍사(井邑詞)를 아래에 쓴다. 왼쪽 부분은 조선 성종 때인 1493년에 편찬됐던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실려 있는 정읍사 원문이고, 오른쪽 ( )친 부분은 그 원문을 현대어로 바꾼 것이다.

前腔 하 노피곰 도샤 (달아 높이좀 돋아서)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기야 멀리좀 비취시라)
       어긔야 어됴리 (어기야 어강도리)
小葉 아으 다디리 (아으 다롱디리)
後腔全져재 녀러신고요 (全?저자에 가신다고요)
       어긔야 즌  드욜셰라 (어기야 진 데를 디디실라)
       어긔야 어됴리 (어기야 어강도리)
過編 어느다 노코시라 (어디에다 놓고서는)
金善調 어긔야 내 가논  졈그셰라 (어기야 나 가는 데 저물게 될라)
         어긔야 어됴리 (어기야 어강도리)
小葉 아으 다디리 (아으 다롱디리)

음기가 가장 성하다는 세모(歲暮)쯤 되면 이 정읍사가 필자 뇌리에 스멀스멀 살아난다. 그 이유는 이 노래가 섣달 그믐날 밤 조선 궁궐에서 마귀와 사신(邪神)을 쫓는 ‘처용가’와 함께 연주되었다는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지금껏 여러 학자들이 풀어놓은 정읍사에 관한 해설이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청년시절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1) 창작 연대 : 우선 첫째 의문은, 이 정읍사가 백제 시대에 쓰여진(또는 불려진) 것이 틀림 없는가 하는 점이다. >
지금까지의 정설은 ‘고려사 71권 악지(樂志) 2’에 정읍사가 ‘삼국속악(三國俗樂) 백제’로 분류돼 있고, 거기에 “정읍은 전주 속현으로/ 이 고을 사람이 행상을 떠나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그 처가 산 위 바위에 올라 남편이 있을 먼 곳을 바라보면서/ 남편이 밤길에 오다가 해나 입지 않을까/ 진창에 더럽혀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남편을 기다리던 언덕 위의 돌 ‘망부석’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井邑 全州屬縣, 縣人爲行商久不至, 其妻登山石以望之, 恐其夫夜行犯害 托泥水之汚以歌之, 世傳有登岾望夫石云]”가, 정읍사 설명으로 붙어 있음으로 정읍사는 백제 노래라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이 고려사 악지의 ‘망부석얘기’와 위에 쓴 현전하는 정읍사의 내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즉 정읍사는 어떤 한 사람이 달에게 가벼운 부탁- 누가 ‘저자’(시장)에 가니 ‘즌 ’(진 데 또는 진창)를 밟지 않게-을 하는 내용이고, ‘망부석’은 남편이 ‘행상(行商)’을 나가 생사 불명인 그래서 돌까지 등장시킨 엄중한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정읍사는 누가 진창을 밟지 않게 해달라는 것인지가 밝혀져 있지 않다. 그 누구는 남편일 수도 있고, 애인, 부모 또는 임금일 수도 있는데, ‘망부석’은 ‘처’와 ‘행상’이란 신분과 관계가 뚜렷이 밝혀져 있다.

이런 의미는 ‘고려사 악지(樂志)’ 편찬자가 정읍사를 ‘백제 속악(俗樂)’으로 분류한 것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다. 즉 ‘고려사 악지’가 집필되던 조선 초기 1400년 전반기에도 시중에서 불려지던 정읍사를, ‘선운산, 무등산, 방등산, 지리산’ 등 이름만 전해지던 전라도 지역 노래들과 함께 ‘백제 속악’으로 묶었는데, 묶으면서 전부 이름만 나열하면 멋쩍으니 당시 한반도 각지에 전해지던 신라 박제상 ‘망부석얘기’류를 정읍사에도 붙인 것이다.

그런 조작 흔적이 ‘망부석얘기’ 자체에도 나오는데, “남편이 밤길에 오다가 해나 입지 않을까/ 진창에 더럽혀지지나 않을까(托泥水之汚)”다. 상식적으로든 문학적으로든, 행상의 처 걱정은 앞 부분 밤길만 쓰면 그것으로 족하지 뒤의 진창은 쓰나 마나 한 사족이다.
이와 같은 여러 내용- 아래 ‘2) 음사’ 내용도 포함된다- 을 참조해 보면, 정읍사는 삼국이 멸망한 A.D.935년 이후 고려사 악지가 완성된 1451년 이전 즉 ‘고려시대’에 쓰여졌다는 당연한 결론이 나온다.

2) 음사는 어느 것인가 : 정읍사에 대한 또 하나의 의문은, 조선왕조실록 중종 14년(1519년) 4월1일조에 정읍사가 ‘음사’(淫詞; 음란한 가사)이기 때문에 궁중가악에서 제외하고 ‘오관산’으로 대용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그렇다면 정읍사 가사 중 어디가 음사인가 하는 점이다.

선뜻 짚이는 부분이 ‘즌 (진 데, 진창)’인데, 가사 내용상 저자(시장)와 진창은 잘 어울리는 표현이지, 이를 일부 학자 주장대로 여성의 음부니 사창가 따위로 연관지어 들었다는 것은 지나친 상상이다.

‘즌 ’를 빼면, 음사란 혐의를 둘만한 구절은 ‘어기야 어강도리’, ‘아으 다롱디리’뿐이다. 지금껏 학자들은 이 구절을, 후렴구(後斂句) 또는 조흥구(助興句)라 하여 악률에 맞추어 부르는 뜻 없는 소리로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이, 이 ‘어강도리’, ‘다롱디리’는 현재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반도 토착어가 아닌 외국어다. 그 직접 근거가 조선왕조실록 성종 즉위년(1469년) 12월18일자에 함경북도 절도사 김교가 왕에게 보고한 문서에 ‘다롱개’(多弄介), ‘이도롱고’(李度弄古)란 외국 인명이 나온다.
이들은 여진족(후에 만주족)으로, 발해 멸망(926년) 후부터 일부는 고려로 귀순했고 대다수는 만주에 거주하며 끊임 없이 한반도 국가의 북쪽 영토를 침범, 고려에게는 물론 조선에까지 큰 골칫거리가 됐다. 그래서 한반도인이 그들을 오랑캐(五囊狗 ; 獸姦을 하기 위해 발과 주둥이 5군데에 주머니를 씌운 개)라 불렀는데, ‘어강도리’, ‘다롱디리’도 그 범주에 속한 일종의 육두문자(肉頭文字)며 음양으로 쌍을 이룬 그런 형태다.
궁중에서 연말에 중요행사를 하는데, 노래라 하여 욕지거리를 해대니 듣기 거북하여 정읍사를 폐지하고 그 대신 부모 공양 잘하는 효자 기리는 노래 ‘오관산(五冠山)’으로 바꿔 부르게 했다.

3) ‘後腔全져재’ 풀이 : 지금껏 정읍사 풀이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이 가운뎃부분 ‘後腔全져재’의 全자다. 위에 보다시피 정읍사는 노래 가사가 모두 한글이다. 오른쪽 前腔, 小葉, 過編, 金善調 등은 한자로 쓰여져 있는데, 이것들은 노래 가사가 아니고 춤과 악기를 어떻게 연주, 진행한다는 악조(樂調) 또는 악보다.
‘後腔’도 분명히 악조인데 그 뒤에 한자인 全자가 붙었다. 음악 전문가들 지식을 빌리면 ‘後腔全’이란 악조는 어디에도 없다 한다. 그렇다고 ‘全져재’로 붙여 읽어도 이상한 것이 한글로 씌어 진 가사에 한자 하나 달랑 붙는 것이 그렇고, ‘모든 또는 온전한 저자(시장)’라는 뜻도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全져재’가 ‘全州시장’을 의미한다는 둥 요령부득의 해석만 해왔다.

필자 역시 암중모색인데, ‘악학궤범’ 원본에 ‘後腔’까지가 페이지 가장 아래 부분까지 각자(刻字)되어 꽉 찼고, ‘全’자가 다음 줄(페이지의 마지막 줄)로 넘어가 가장 위에 새겨져 있다는데 이해의 실마리가 있지 않나 한다. 즉 각자공(刻字工)이 이제 다 끝냈다 방심하여 ‘저자’와 유사어인 한자 ‘가계 전’(廛)을 음만 생각하며 全자로 잘못 새겼다.
그래도 별 탈 없었던 것이 2줄씩 이뤄진 가사의 첫째줄인 ‘①하 노피곰 도샤 ②全져재 녀러신고요 ③어느다 노코시라’가 8자씩으로 모두 동일하고, ②의 노랫말 ‘전’과 ‘저’가 발음상 부드럽게 이어지기 때문에, 누구든 악보가 그러려니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다.

4) 가장 잘못 풀이하는 부분 : 최근 학자들이, 정읍사를 ‘고려사 악지(樂志)’해설에 따르다 보니, 엉뚱한 ‘행상’이 등장하고 그 행상이 짊어진 짐을 “어느다 노코시라”(어느 곳에나 놓으시라)고 해석한다.>
이는 크게 잘못된 해석인 것이, 정읍사는 달과 화자(話者) 2명이 등장하는 2인 노래다. 따라서 ‘어느다 노코시라’는 행상의 짐이 아니라 달님의 짐 ‘달빛’이다. 그 달빛을 시장으로 가는 누구의 발 밑에 놓아 주십사 기원한다, 그러지 않고 어디 딴 데 비추면 그의 절대적인 영향하에 살아가는 ‘내’(나) ‘가논 ’(가는 데, 삶, 인생길)가 ‘졈그셰라’(저물게, 어둡게 될라)는 걱정이다. 그래서 달에게 높이좀 그리고 멀리좀 비춰달라는 노래가 정읍사다.

5) ‘곰’의 해석 : ‘하’는 ‘달(月)아’ 또는 ‘달님이시어’, 그리고 ‘도샤’는 ‘돋아서’, ‘돋으시어’ 등 어떻게 풀이해도 이의 없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노피곰’은 그렇지 않다. 학자들은, ‘좀더 높이높이’[金東必], ‘좀더 높이’[朴晟義], ‘높이높이’[鄭炳昱, 全光鏞, 梁柱東]라는 첩어(疊語) 형태의 강조로만 풀이했었다. ‘노피곰’의 아랫줄에 있는 ‘머리곰’도 마찬가지 형태 ‘멀리멀리’다.

물론 뜻이야 그렇게 풀이해도 다르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어(詩語)인데 이 ‘곰’은 요즘도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좀’이란 은근한 ‘사정 형태’의 부사형 어미로 바꿔 풀이하는 것이 옳다. 즉 ‘높이좀’, ‘멀리좀’으로 써야지만 달님에게 어리광섞어 기원하는 노래 전체의 흐름에 부합된다. 그리고 이 ‘곰’과 ‘좀’은 그 의미가 상통(相通)하는 글자다. 현재 사용되는 ‘곰상스럽다’, ‘곰작, 곰지락’ 등의 ‘곰’이 잘고 좀스럽고 가볍고 느린 표현이며, ‘좀’. ‘좀도둑’ 등도 조금이나 소형(小形)의 표현이다.

옛말 ‘곰’이 현재 ‘좀’으로 바뀌지 않았나 추측되기도 한다. 따라서 뜻과 음이 거의 일치하는 ‘노피곰’은 ‘높이 좀’으로, ‘머리곰’은 ‘멀리 좀’으로 풀이하는 것이 옳다.

정읍사가 최고(最古)라는 데 대한 의견인데, 어느 부분, 분야에서나 최초, 최고, 최대니가 중요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진실이다. 최(最)자는 항상 바뀔 수 있는 뜬구름이지만 진실(眞實)만은 인류가 생존하는 한 그 가치가 영원 불변이다. 특히 현재와 같이 거짓과 사기가 판치는 오랑캐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2009. 除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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