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29 [칼럼니스트] 2009년 12월 1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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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늙는 법

이규섭 (서울칼럼니스트모임회원,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시절, 경기고등군법재판정. 중년의 여죄수가 고개를 떨군 채 초췌한 모습으로 판사의 선고를 기다린다. 그 때 방청석에서 서너 살쯤 돼 보이는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나와 여죄수의 품에 안긴다. 이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본 판사는 그녀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죄가 없는 여인을 끌고 온 것인지, 엄마 품에 안기는 아이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판결에 영향을 끼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재판과정을 취재하던 정범태(鄭範泰) 기자는 아이가 엄마 품에 안기는 순간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결정적 순간'이다. 그 사진은 아사히신문 국제살롱에서 10걸상을 수상하고 세계 사진연감에 수록됐을 정도로 유명하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1세대인 그는 수많은 특종사진을 남긴 언론계 대 선배다. 올해 여든 두 살로 이제는 좀 쉴 만도 한데 요즘도 카메라와 더불어 산다. 그의 렌즈가 응시하는 피사체가 뉴스의 현장에서 예인(藝人)으로 바뀌었을 뿐. 우리시대를 이끈 전통예인들을 촬영하고 집필 준비를 하며 당당하고 열정적으로 산다.

비껴갈 수 없는 게 시간이고, 피할 수 없는 것이 늙음이다. 나이 들면 기억력은 가물가물해지고, 눈이 침침해지며 귀가 어두워지게 마련이다. 오랜 세월 사용했으니 내구연한이 다 되어 간다는 신호다. 좋은 것만 기억하고, 즐거운 것만 보고, 필요한 말만 듣고 살라는 조물주의 배려다. 그런데도 기를 쓰고 노화를 거부하고 젊게 보이려고 안달이다. 짙은 화장과 의술로 얼굴의 잔주름은 가릴 수 있어도 나이의 주름살은 가릴 수 없다.

노인 인구가 530만 명을 넘어선 고령화사회다. 열 명 가운데 한 명은 노인이다. 경로우대는 받으면서 노인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아귀가 맞지 않다. 노인이라고 자식들 눈치보며 기죽을 필요는 없다. 늙는다는 것이 사회적 부담은 되지만 죄는 아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늙는 것일까. 이에 대한 화두가 '웰에이징(Well-aging·참늙기)'이다. 박상철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의대 생화학과 교수)은 저서 '웰에이징(생각의 나무| 2009)'을 통해 돈이 있든 없든 당당하고 사람답게 늙자는 것이 웰에이징이라고 정의한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능동적으로 환경에 적응하고, 자연의 원칙에 따라 정확하게 살고, 풍부한 감정을 느끼며 살고, 두뇌를 끊임없이 사용하는 생각하는 삶을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의 5원칙'이라고 제시한다. '웰에이징'의 핵심은 죽을 때까지 일하는 '활동'과 더불어 사는 '관계'다. 저자가 연구를 위해 만나본 100세 장수인들의 공통점은 늙음을 거부하지 않고 스스로를 신뢰하며 부부, 가족, 친구와 더불어 사는 삶을 유지했다고 한다.

식생활 또한 노화에 따라 입맛이 변하고 영양분의 비중도 달라지는 만큼 소식이 아니라 균형과 절제 있는 식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해산물과 채소, 발효식품 등을 많이 먹고 고기는 삶아서 먹는 게 좋다고 권장한다. 노화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리면서 열정을 품고 꾸준하게 활동하는 것이 당당하게 늙는 길이다.
-'교차로' 2009.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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