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28호 [칼럼니스트] 2009년 12월 10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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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화폐 교환


홍순훈 (칼럼니스트)
http://columnist.org/hsh


1. 삽질밖에 몰라?
지난 10월18일부터 요미우리, 산케이신문 등 외신은, 북한이 해외 주재 외교관들에게 대기 명령을 내리고 ‘중대 발표’를 할 것이란 보도가 나왔다. 그 ‘중대 발표’가 2009년11월30일부터 실시된 북한 당국의 화폐에 대한 조치임이 분명한데, 사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으로부터 나온 가장 중대한 발표다.
그렇게 단정하는 근거는, 1998년 러시아가 모라토리움(지불유예)을 선언하고 루블화를 평가 절하할 때, 사회주의 국가에서 화폐를 교환(또는 개혁)하는 것이 자국 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얼마나 엄청난 파괴력을 갖는가가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먼저 확인할 것은, 한국 정부는 북한의 화폐 교환에 관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있었는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위의 외신 보도가 나오자 일반인들도 그 중대 발표가 ‘김정일 사망’ 아닌가 설왕설래했었는데, 정부의 반응은 ‘별 거 아니다’ 또는 ‘이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아리송한 태도였다. 물론 정부가 대북 정책상 알면서도 모른 척 시침을 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상황을 정부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이 있다. 즉 12월2일 ‘비무장지대(DMZ)에 생태관광, 평화공원을 조성’한다는 행정안전부 발표다. 이 발표는, 패닉 또는 광란 상태에 빠진 북한 사회 및 인민들을 자극해 한반도 전면전이란 참극을 일으킬 위험성이 있다. 그럼에도 이런 민감한 시기에 그런 생뚱맞은 발표를 했다는 것은 북한 조치에 대해 정부가 아무것도 몰랐다는 얘기다.

2. 화폐 교환의 이유(목적)
언론에서는 이번 북한이 화폐 개혁(교환)을 한 목적이, 중산층 또는 신흥 부유층을 압박하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그리고 노동자를 우대한다는 체재 선전 효과를 얻기 위해서 등이라 쓰고 있다.
물론 그런 해석이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 즉 필연성이, 북한 당국이 인민들에게 지급할 봉급과 연금이 바닥났다는 사실임을 빠뜨리고 있다.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북한 당국은 이 봉급과 연금을 인쇄기에만 의존, 돈을 찍어 충당했다. 인민에게 풀린 그 돈이 생산 구조의 모순과 붕괴로 말미암아 국가로 환수되지 못하고, 시중에만 7년 동안 쌓이고 쌓여 화폐가 휴지쪽 정도의 가치로 전락했다. 그런 휴지쪽조차 인민에게 지급치 못할 재정 파탄 상태가 되자 북한 지도부는 아예 화폐 교환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첫째 처음부터 반드시 지켜져야 할 교환 한도, 비율 등 화폐 교환 조건이 확정적이지 못하고 갈팡질팡했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가장 큰 재정 지출인 봉급과 연금을, 한달 후 두달 후 계산하다 보니 그것이 들어맞지 않아 혼란이 왔다.
둘째 이번의 신권 50원, 10원, 5원권은 2002년에 인쇄됐던 것이고, 신권 5000원, 2000원, 1000원, 500원, 200원, 100원 6종은 작년(2008년)에 인쇄됐던 것이다. 2002년 인쇄의 소액권 3종은 ‘7.1경제관리개선조치’을 대비하여 인쇄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작년 인쇄 6종은 앞의 소액권과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신권들을 인쇄 당시에 사용치 못했으면 폐기시키는 것이 원칙일 텐데, 그러지 않고 다시 끄집어내어 인민들에게 분배한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 재정이 고갈, 파탄났다는 의미다.

3. 북한 화폐의 의미와 그 소유
언론들은 이번 북한 조치를 ‘17년만에 단행된 화폐 개혁’이라 표현하고 있으나, 이는 적합치 않은 표현이다. 왜냐 하면 ‘17년 전’은 자본주의가 북한 사회에 도입되기 이전인 1992년 7월 김일성 생존시로, 당시 신구 화폐 교환 비율이 1 : 1이었으며, 그들이 표방한대로 ‘화폐 제도를 공고히 할 목적’으로 화폐 개혁을 단행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이번 북한의 조치를 ‘17년만’에로 연계시킨 것은 내용상 불일치다.

이번 조치는 위에도 썼듯, 2002년 김정일이 경제난을 타개키 위해 자본주의 경제 요소를 일부 도입했던 ‘7.1경제관리개선조치’의 모순(또는 후유증)을 극복키 위해 ‘7년만’에 단행한 것이라 표기함이 옳다.

그리고 이번 조치를 언론들은 ‘화폐 개혁’이라 부르고 있으나, 이는 자본주의 경제에서나 어울리는 표현이지 사회주의 경제 체재인 북한에서의 조치와는 맞지 않는다.
그렇게 보는 결정적 근거를 그들 헌법에서 찾을 수 있다. 즉, 21조에 “국가소유는 전체인민의 소유이다. 국가소유권의 대상에는 제한이 없다”라고 돼 있는 것으로,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재산 축적의 주요 수단이며 부의 상징으로 타인이 절대 침탈할 수 없다 여기는 화폐가, 북한에서는 그렇지 않고 모두 국가소유라는 것이다. 이 의미를 바꿔 표현하면 화폐는 일종의 공문서 또는 국가 발행 전표이지 개인이 자의로 모아 쌓아놓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 개념에 따라 기존에 국가가 사용하던 화폐(구권)를 일정 비율 - 100: 1 또는 1000: 1- 로 줄인 화폐(신권)로 바꿔 운용한다는 일종의 행정 조치가 이번 신화폐 ‘발행’ 또는 신구화폐 ‘교환’이다. 뿌리째 뒤엎는 ‘개혁’이란 그런 조치가 아니다.

이 조치에 화폐의 소유주가 아닌 주민(인민)의 동의는 당연히 필요 없지만, 그 불필요한 근거를 좀더 명확히 밝힌 것이 북한헌법 24조다. 즉 “개인소유는 공민들의 개인적이며 소비적인 목적을 위한 소유이다. 개인소유는 로동에 의한 사회주의분배와 국가와 사회의 추가적 혜택으로 이루어진다. 터밭경리를 비롯한 개인부업경리에서 나오는 생산물과 그밖의 합법적인 경리활동을 통하여 얻은 수입도 개인소유에 속한다” 는 것이다.

여기서 개인소유는 ‘개인적이며 소비적인 목적을 위한’ 것 즉 식량, 비누 따위의 생필품, 그리고 그런 정도를 구입할 소액의 화폐다.
그 개인소유는 ‘로동에 의한 사회주의분배와 국가와 사회의 추가적 혜택’에 의한 것이라 하여, 국가에서 지급하는 월급(사회주의분배)과 특별 포상금 또는 하사금(추가적 혜택)으로 이루어진다고 못박았다.
그리고 좀더 명확히 정해서, 농민이 집 주위 터밭에서 가꾸는 일용할 소량의 작물과, 노동자가 직장 생활과 관계된 아르바이트로 번 용돈 정도를 개인소유로 인정했다.

4. 화폐 교환의 영향
[A] 이번 북한의 화폐교환에서 관심의 대상은, 언론 표현인 ‘중산층’ 또는 ‘신흥 부유층’이란 부류다. 자본주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은 열심히 삶을 산 긍정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관점에서는 국가소유 재산을 도둑질한 악당으로, 사람들로부터 지탄받아 마땅한 러시아의 ‘마피아’와 동일 족속이다. 따라서 이들이 불법으로 소유한 화폐는 ‘화폐 교환’이란 형태로 압수하는 것이 정당하다.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녹록치 않은 것이, 이 부류는 자국 화폐를 사용치 않고 달러, 유러화, 중국 위안화 등 외화를 사용하는 것이 체질화돼 있다. 뭐니뭐니 해도 외화는 자국 화폐보다 부피가 적어 은밀히 거액을 보관하고 통용하기 쉽다는 이점이 있어 어느 마피아나 돈만 생기면 외화로 바꿔 놓는다는 것이 철칙이다.
그리고 이들은 권력층과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연계되어 있는데, 그렇게 상부상조하지 않으면 원천적으로 부를 축적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화폐 교환으로 일부 중산층, 신흥 부유층 - 외화 소유 원칙에 충실한 마피아급 - 은 절대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국가 재정 악화를 빌미로 관료층과 결탁하여 국가 및 사회협동단체가 소유한 공장, 광산, 기업소, 은행, 토지, 배 따위를 헐 값으로 매수하여 재벌로 성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결국 이번 북한의 화폐 교환은, 권력층과 그에 붙은 부유층 등 가진 자들에게는 아무 악영향 없이 오히려 부익부란 혜택만 안겨준다.

[B] 그 반대로 죽을맛이 된 것은 우선(1차적으로) 생산 능력을 상실한 병약자, 노인 등 연금 생활자다. 죽을맛이 아니라 이들은 정말 죽는다. 금년은 북한이 ‘대흉작’이라 한다. 이들이 받는 연금으로는 한달에 옥수수 몇 kg 사기도 힘들어졌다.

즉, 지금 구권과 신권을 100 : 1로 교환하면, 물가가 1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고 과거의 명목 단위 100으로 회귀하는 것이 물가와 화폐의 상관 관계다. 이 회귀가 물가의 100배 폭등인데,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하룻밤만 자고 나도 물가는 옛날 얘기가 된다.
그렇게 되는 까닭은, 북한 자체가 생필품을 생산할 능력이 없으니 수입할 수밖에 없고, 수입 물가는 북한에서는 귀하고 귀한 외화 자체의 몸에다 강도와 다름 없는 국내외 상인들의 마진이 붙고 각종 수수료와 뇌물까지 덕지덕지 붙어 그 전체 금액이 최종 소비자인 인민 부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금생활자는 쥐꼬리만큼 나오는 그것도 나오다 안 나오다 하는 연금받아 보드카 한병 사서 입에 쏟아붓고, 국영상점이나 장마당 또는 매대(賣臺: 끼오스끄) 계단에 앉아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에게 동냥하는 것이 러시아의 일상 모습이다.

5. 필수 조건이 빠진 화폐 교환
북한은 1945년 이후부터 해방군이었던 구소련으로부터 모든 사회 제도, 체재를 도입하여 구성한 국가다. 따라서 북한의 사회 변화를 보면, 마치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을 그대로 따라가듯, 그들도 러시아의 변화를 그대로 답습한다.

1998년 러시아가, 이번 북한보다 훨씬 과감하게, 루블화를 1000 : 1로 평가 절하했었다. 그 후부터 꼭 10년이 지난 작년(2008) 여름부터 루블화 가치가 연일 폭락하여 재정 파탄이니 어쩌니 하는 뉴스가 계속 들려왔다. 러시아는 원유, 가스 등 세계 최대의 자원 보유국으로 그동안 어떤 큰 사변 없이 경제 행위를 이뤄왔었다. 그럼에도 지금 화폐 개혁의 효과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주민들은 10년 전과 다름 없이 오늘도 배고픔에 시달리고 추위에 떨고 있다.

여기서 당연한 결론이 나온다.
생산 체재의 합리적 변화를 수반하지 않은
화폐 개혁(교환)은 권력자들의 한낱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2009.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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