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25 [칼럼니스트] 2009년 11월 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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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향기는 어떤 색깔인가
-파주출판도시와 이기웅씨

이규섭 (서울칼럼니스트모임회원,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시(詩)·서(書)·화(畵)를 갈고 닦은 추사 김정희는 "좋은 책을 읽으면 기운이 솟고 문자에 향기가 난다(서권기 문자향 :書卷氣 文字香)"고 했다. 책의 향기는 어떤 색깔일까. 문학소년시절에 펼쳐든 시집엔 가슬 설레는 보랏빛 향기가 묻어났다. 사랑과 고뇌가 담긴 진솔한 에세이는 홍보석으로 빛나는 석류 향기가 난다. 감동의 파장이 긴 문학작품은 수정채로 빛나는 소금꽃 향기다. 철학적 사유와 담론이 담긴 책갈피를 넘기면 농익은 술 향기가 노을 빛으로 마음을 취하게 만든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자유로 언저리. 심학산(尋鶴山) 자락에 자리잡은 책 마을은 책 향기로 넘실거린다. 공식명칭은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 한국을 대표하는 출판도시답게 늪과 생태를 살려 지은 건축물의 재질과 다양한 색깔은 마치 건축전시장을 둘러보는 기분이다. 행정주소는 파주시 교화읍(交河邑) 문발리(文發里). 문자가 일어나 꿈틀거리며 문화의 꽃을 피운다는 지명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현재 이곳에는 출판·인쇄·제책·유통회사 등 300여 개 출판관련 업체가 입주하여 원스톱체제로 지식을 생산하고 공급한다. 1989년 열화당, 지식산업사, 한길사, 민음사, 범우사, 문예출판사, 평화출판사 등 출판사 대표 7인이 북한산에서 '도원결의'를 한 뒤 추진한 결과물이다.


<- 이기웅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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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에는 열화당 대표이자 이기웅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의 열정이 녹아 있다. 2단계 사업인 영상산업단지 건립을 앞두고 다시 한번 용트림할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가운데서도 살갑게 맞이한다. "출판과 영상미디어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문화 르네상스시대를 여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강릉 선교장(船橋莊)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조상의 슬기와 전통문화를 피부로 느끼며 성장했다. 선교장 사랑채 '열화당'의 이름을 딴 출판사(1971년)를 열고 남들이 돈 안 된다고 외면하는 미술과 사진, 한국 전통문화와 예술분야 서적들을 한 땀 한 땀 엮어냈다.

책 마을 구석구석에는 책 향기와 예술의 향기가 솔솔 풍긴다. 하천에 핀 은빛 억새와 조화를 이룬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 들어서니 북 카페와 헌책방, 갤러리와 레스토랑이 눈과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준다. '종이 예술의 고향'이라는 뜻을 가진 호텔 '지지향(紙之鄕)' 로비에 울려 퍼지는 클래식 선율은 생음악처럼 생생하게 귀를 즐겁게 한다. 세계 최초 하이엔드 스피커 시스템의 음향과 안락한 의자는 음악감상실처럼 아늑하여 여백의 운치가 묻어난다.


<- 열화당 서가. 누구나 들어가서 책을 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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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당에 들렀다. 건물의 외향도 독특하지만 내부구조도 열린 공간으로 북 샵과 갤러리가 어우러진 문화사랑방이다. 신간과 고서, 예술서와 희귀본들은 평소 "도서관 같은 아름다운 책방을 꾸미겠다"던 이기웅 사장의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나라는 서적 발행 규모로 볼 때 세계 10위권의 출판대국이다. 정작 국민들의 독서량이 적다는 것은 지식경쟁시대의 부끄러운 통계다. 삶의 지혜는 책에서 나오고, 책의 향기는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꿈의 색깔이다.
-교차로 2009.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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