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17 [칼럼니스트] 2009년 9월 1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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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가 왜 이리 짠해?"

이규섭 (서울칼럼니스트모임회원,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일곱 번이나 사표를 쓴 뒤 배낭을 메고 해외로 훌쩍 떠나는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변종모| 달)의 저자는 '여행 중독자'임이 분명하다. 독특한 문체로 내재된 감정을 진솔하게 풀어낸 여행에세이는 신종 플루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전이되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또 다른 세상과의 소통과 생생한 체험이 공감의 폭을 넓혀주고, 순박한 사람들의 일상과 만나 공명을 이루는 울림이 짠하다.

#느림의 여정       
"얼마나 머물 건데요?"
"저 나무에 살구가 다 떨어질 때까지요"
파키스탄 훈자의 시골마을. 도미토리에서 숙박비를 깎아 달라고 하자 기약 없는 약속을 한 뒤 두 달을 머물었다는 여유가 부럽다. 여덟 살 꼬마 친구와 구구단을 외우거나 동네를 헤집으며 놀거나, 낮잠을 자는 여정의 여유. 담벼락에 기대어 자신의 젖은 마음을 빛나는 햇살 아래 말리는 넉넉한 자유가 그립다. 늘 배낭여행을 꿈꾸면서 시늉에 그치고, 편이성에 함몰된 나의 여행을 부끄럽게 만든다.
        
#이별의 아픔
"사랑은 사랑할 때만 유효하고 이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도미토리 룸 넘버 8호에서 손때 묻은 열쇠고리를 만지며 8년 인연의 고리가 8분 통화로 끊어졌을 때의 절망과 막막함을 떠올린다. 동그라미 두 개가 이어진 8이란 숫자를 0으로 되돌리기 위해 그는 집도 차도 가구도 다 처분하고 낯선 길 위를 슬로비디오처럼 느리게 떠돈다. 그의 여행기는 수식어로 덧칠하지 않고 강렬한 빛깔로 선명하게 스케치하여 감성을 자극한다. "외로움에 치여 과거를 그리워 말자" 다짐하며 '사랑 병'을 치유하려는 '마음의 행로'를 따라가다 보면 생살이 돋는 아픔이 되어 욱신거린다. 어차피 사랑이란 열꽃이 피었다 사그라지는 홍역 같은 것을.
캘커타에 폭우가 쏟아지는 날, 그는 어머니와 영원히 이별하는 부음을 듣는다. 2년 여행 계획의 절반, 한국으로 가는 빠른 비행기 표를 알아봐 달라며 창구에서 뜨겁게 흘리는 눈물이 활자를 뿌옇게 만든다. 무슨 여행에세이가 이렇게 슬퍼.

#삶이 곧 여행
지난 주 교육방송 '세계테마기행'을 통해 저자를 영상으로 만났다.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의 섬과 숲, 바다를 누비며 자연을 닮은 순박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인터넷 검색 끝에 그를 만나 '여행 뒷이야기'를 들었다. 광고대행사 아트디렉터를 접고 동업으로 문을 연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다. "이제 사표를 쓰지 않고도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며 소탈하게 웃는 모습이 순한 사슴을 닮았다. 돈이 모이면 3년 계획으로 떠나겠다며 여행을 준비하는 그의 삶 자체가 여행이다.
-교차로 2009.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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