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16 [칼럼니스트] 2009년 9월 1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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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신화가 된 도시 - 트로이 유적지

이규섭 (서울칼럼니스트모임회원,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터키 북서부 에게해 부근에 위치한 트로이(Troy) 유적지는 명성에 비해 볼거리가 없는 '허무관광지'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트로이전쟁, 전쟁의 도화선이 된 절세 미녀 '헬레나'와 용맹을 떨친 전사들, 영화 '트로이'의 치열한 전투를 상상하고 찾았다면 실망하기 일쑤다.
유적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12m 높이의 트로이목마(사진).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려는 조형물에 불과하지만 '목마의 계책'으로 함락 당한 트로이에 목마를 세워 놓은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트로이목마 조형물 앞은 '증명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이다. 계단을 타고 목마 안으로 들어가 손을 흔들며 이곳에 왔다갔음을 남기려 애쓴다.

트로이 유적 탐방은 무너진 성벽을 시작으로 화살표를 따라 한바퀴 도는 것으로 1시간 정도 걸린다. 땅을 몇 자 파서 시대구분을 해놓은 발굴지가 있으나 어디가 트로이로 추정되는 층인지, 어디가 로마시대에 형성된 곳인지 전문 가이드의 안내가 아니면 도무지 알 수 없다. '왕궁으로 오르는 길'이라고 명명된 곳을 지나도 왕궁은 없고 무너진 성터의 폐허뿐이다.
약 5㎞ 정도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히사를리크 언덕에 오르면 광활한 들판이 펼쳐진다. 평원은 다르다넬스 해협과 맞닿아 있어 요새임을 알 수 있다. 바다가 가까워 교역을 통해 문명이 발달했을 것이다. 그리스군의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토로이군의 헥토르와 아이네아스 등 숱한 영웅들이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해변은 올리브와 목화, 밀과 해바라기 밭으로 변했다.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로마시대의 원형극장을 비롯하여 시대가 다른 장방형 비석과 제물을 바쳤던 제단이 남아 있는 신전과 우물 터, 지하저장고, 항아리와 토관 등이 남아있을 뿐이다. 유물전시관에 유물은 없고, 컴퓨터로 복원한 트로이 유적지 모형, 아킬레스가 헥토르를 죽인 뒤 시신을 끌고 트로이 성곽을 돌고 있는 상상도 등이 걸려 있어 '소문난 잔치에 먹을게 없다'는 속담이 꼭 어울린다. 그래도 많은 여행자들이 트로이 유적지를 찾는 것은 호메로스의 힘과 영화의 영향이 클 것이다. 트로이가 신화와 전설의 도시에서 역사의 무대로 화려하게 등장한 과정을 확인하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묘미다.

19세기까지만 해도 트로이전쟁은 설화였고, 트로이라는 고대도시는 존재하지 않았다. 고고학계의 신화적인 거목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이 1870년부터 3년에 걸쳐 트로이 유적지 발굴에 성공함으로써 트로이는 실존하는 도시로 확인됐고, 전쟁이야기도 역사적인 근거를 얻게 됐다. 트로이에 도시가 형성된 것은 기원전 3000년경. 시대에 따라 최하층의 1기(초기 청동기 시대)에서 최상층의 9기(로마시대)까지 시대를 달리하는 9개 층의 도시유적을 형성하고 있음이 세상에 드러났다.

슐리만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다. 고고학자도 발굴자도 아닌, 보물에 눈먼 도굴꾼일 뿐이라는 혹평까지 따라다니지만 만약 그가 없었다면 트로이는 신화 속의 도시로만 존재했을 것이다. 역사의 어원인 히스토리(history)가 이야기의 뜻을 담고 있는 스토리(story)와 어원을 같다는 이유를 트로이에서 새삼 실감한다.

-교차로 2009. 8. 28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