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14 [칼럼니스트] 2009년 7월 2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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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소낙비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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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막도 비를 맞네
   가는 나그네
   빗길을 갈까
   쉬어서 갈까
   무슨 길 바삐 바삐
   가는 나그네
   쉬어갈 줄 모르랴
   한잔 술을 모르랴

나병이라는 천형을 한 평생 안고 비운에 살다간 한하운 시인의 ‘비 오는 길’이란 시다. 비가 인생과 자연에 미치는 영향과 이미지는 매우 다양한데 이 시는 그 중에서도 휴식의 의미에 중점을 두고 있다.   

시설농사가 보편화한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논밭에 나가 땡볕 속에서라도 그냥 일해야 하고,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웬만한 여정은 마냥 걸어야 했다. 그러나 비가 오면 대부분  쉬고, 멈췄다. 해야 할 일이 잔뜩 밀리고, 갈 길이 멀기만 해 멈출 수 없을 때 비는 반가운 손님이었다. 누구 눈치를 보거나, 허락을 받지 않고도 쉴 수 있는 좋은 구실이었기 때문이다.

일은 고되고 먹을 것 시원치 않던 시절, 비 덕분에 잠깐 일손을 놓으면 동네에서 누구랄 것 없이 서로 추렴해서 떡이나 해 먹자고 나서기도 했다. 말이 떡이지 쌀이 어디 있겠는가. 대신 차좁쌀을 얼마씩 거둬서 쑥떡을 만드는 게 보통이었는데 모여서 만들고 먹는 과정이 마냥 기쁘기만 한 이웃 간의 자그만 잔치였다. 남정네들도 휴식과 막걸리에 만취했다.

비 오는 날이 쉬는 시간이라면 주막은 쉬어가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이 나그네는 이를 다 무시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간다. 서둘러 가야 할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 나그네인들 쉬어갈 줄 모르고, 한잔 술맛을 모를 리 있겠는가. 그렇지만 미련을 접고 서둘러 가야 한다.  이처럼 고단한 인생이 어디 그 나그네뿐이랴.

그런가 하면 구전에 바탕을 둔 가요 ‘열두냥짜리 인생’에서는 비 오는 날의 휴식을 매우 해학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우리가 놀면은 놀고 싶어 노나
   비 쏟아지는 날이 공치는 날이지
   비 오는 날이면 님 보러 가고
   달 밝은 밤이면 별 따러간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가다판의 근로자들에게 쉬는 것은 곧 굶는 것이다. 그래도 비가 오면 일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잔 하며 그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쉬면서 한 잔하는 것, 그게 과분함을 잘 알지만 하는 수 없이 하는 일이니 세상은 우리를 너무 비웃지 말라는 완곡한 항변이 들어 있다.

지금은 교통도 발달하고, 대부분 생업이 비가 와도 별 지장 없는 세상이라 비와 휴식의 상관관계는 많이 희박해졌지만 비가 오면 긴장의 끈을 좀 늦추고 싶다는 심리적 요소는 유전자처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 비가 오면 평소에 비해 손님이 3,4배 늘고 빈대떡과 파전 등 안주가 불티나게 팔린다는 우리 동네 빈대떡 집 주인 말이 이를 잘 입증해준다. 다른 술이나 안주도 많은데 유독 소주와 빈대떡을 많이 찾으며 힘겨운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비가 긴 시간, 차분히 내리는 데 비해 소낙비는 짧은 시간에 강도 높게 쏟아진다. 보통 비보다 예측이 쉽지 않아 느닷없고, 난감한 경우가 적지 않지만  휴식의 요소는 더욱 강하다. 갑자기 퍼붓는 비를 피하지 않고 밖에서 하던 일이나 행동을 계속 할 재간은 누구에게도 없다.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빗속을 우산 받고 계속 걷거나, 어느 건물 곁에서 잠깐 피하면서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그동안 쌓였던 마음속의 먼지와 소음이 씻겨나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자신을 돌아볼 말미를 주는 것이다. 우산 속에서 오랜만에 자신과 내밀한 대화를 나누거나,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그런 점에서 상당히 소중한 틈새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마당과 조그만 화단이라도 있는 곳에서는 비 그친 뒤 올라오는 향긋한 흙냄새와 풀향기가 여름 더위마저 잊게 해주고, 맑게 갠 하늘과 깨끗이 얼굴을 씻고 난 초목들은 생기가 돈다.  일상에 찌든 심신에 짜릿한 반전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김유정의 ‘소낙비’나 황순원의 ‘소나기’는 그런 점을 잘 포착한 소설이다. ‘소낙비’에서 노름판 밑천 돈을 가져오라는 남편 성화에 시달리며 날마다 매타작을 당하는 춘호 아내가 그 돈을 위해 동네 부자 이주사에게  몸을 내주는 순간이 소낙비 오는 동안이고, ‘소나기’에서 소년이 윤초시 증손녀와 원두막으로 간 것도 소나기 때문이었다.

야구 등 각종 경기에서도  갑자기 비가 내려 게임을 일시 중단했다 재개하면, 공격과 수비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져 승패가 전혀 딴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이 흔하다. 관점과 처지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반전을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경제 전망, 미래 예측 등 일부분야에서는 흐리거나 비가 내리는 것을 맑음에 비해 부정적으로만 사용한다. 물론 가시거리 확보 등 거리 개념에 중점을 둔 말의 의미가 확대된 것이지만, 지나치게 일방통행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맑음과 흐림의 적절한 조화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세상의 당연한 이치다. 우리는 항시 이를 유념해야 한다. 그것이 조화로운 삶을 이끌어 가는 길이다.

-‘바른 조달’(2009 여름호) 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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