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12 [칼럼니스트] 2009년 7월 1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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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와 터키 사람

이규섭 (서울칼럼니스트모임회원,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해외문화유적 탐방은 쉼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이다. 인류가 남긴 찬란한 문화유산과 억겁의 세월이 빚은 위대한 자연유산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자신을 성찰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여행 끝에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면 영혼이 풍요롭고, '한 장의 추억'을 남기는 것도 값진 투자다.

최근 둘러 본 터키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의 사람과 문물이 만나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온 흥미진진한 나라다. 유럽 문명의 밑거름이 된 헬레니즘의 중심지이자, 중세 천년을 빛낸 비잔틴 문명의 무대다.   

찬란한 제국의 영화가 흐르는 도시, 이스탄불은 유럽연합이 '2010년 유럽문화수도'로 선정할 만큼 역사의 흔적이 생생하게 숨쉬는 곳이다. 동로마와 비잔틴, 그리고 오스만 등 3대 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은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말처럼 '인류문명의 옥외박물관'다.
6개의 미나레(모스크의 첨탑)와 크고 작은 돔이 조화를 이룬 '술탄 아흐메트 자미'의 건축미는 우아하고 매혹적이다. 푸른색 기조로 장식되어 '블루 모스크'로 불리는 내부에 들어서니 수 백 개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부드러운 햇살이 몽환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마주보고 있는 '성 소피아 사원'은 비잔틴 건축의 걸작이다. 소피아 사원은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1000년(537~1453)이나 이어졌던 비잔틴제국의 기독교 신앙 중심이었다. 오스만제국이 이스탄불을 정복한 뒤 4개의 미나레를 세우고 성화(聖畵)에 회칠을 한 뒤 코란을 써넣어 이슬람사원으로 사용했다. 다시 회칠을 벗기는 작업이 이어지면서 성화와 코란이 공존하여 색다른 감흥을 준다. 지진의 영향으로 2층 회랑의 기둥이 기울고, 대리석 바닥에 금이 가 언젠가는 관람이 통제되거나 붕괴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터키사람들의 삶과 일상이 녹아 있는 곳은 재래시장이다. 과거 실크로드의 종착지로 동서물물교환의 장소였던 '그랜드 바자르'에 빼곡하게 들어선 토속상점은 그 자체가 볼거리다. 카펫, 터키석, 가죽제품, 도자기와 동(銅) 그릇, 각종 식료품, 터키식 젤리와 향신료 가게가 즐비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즐겁게 한다.

터키인들의 상술은 가격을 흥정할 때 먼저 깎아주지 않고, 원하는 가격이 얼마냐고 되묻는다. 그래서 서로 원하는 가격을 맞춰나간다. 무조건 깎아 달라는 관광객들 때문에 아예 값을 올려 부르는 것이 관례인 만큼 느긋하게 흥정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무조건 깎기보다 물건은 갖고 싶은 데 돈이 모자란다며 설득하는 게 자존심을 살려 주고 실리를 얻는 방법이다.  

인사성 밝고 친절한 터키인 현지가이드는 아침마다 "규나이든(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한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도 한국인이냐 묻고 "안뇽!" 서툰 발음으로 반가움을 표한다. 이스탄불 공항직원은 모스크바경유 인천공항 도착 짐을 부치며 '서울'을 강조하니 "두바이?"하며 농을 던지는 여유를 부린다. 소박한 품성에 느긋한 터키사람들의 친절한 미소와 선한 눈빛에 행복이 묻어난다.
-교차로 2009. 7. 17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