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11 [칼럼니스트] 2009년 7월 2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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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 말 열심히 듣기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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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지혜의 한 가지로 언제나 상위에 꼽히는 덕목이 ‘말하기보다는 상대방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실행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우선 군자다운 성격이 몸에 배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이 많은 데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실행방법에 대한 가르침이나 설명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듣기에 관한 여러 가지 ‘훌륭한 말씀들’을 나름대로 종합해 보니 몇 가지 가닥이 잡혔다.

첫째, ‘하찮은 사람의 하찮은 말이라도 열심히 들으라. 그러면 당신의 삶은 많은 면에서 풍부해질 것이다’인데 막상 해보려니 보통 고역이 아니다. 관계가 ‘하찮은’ 사람의 ‘영양가’ 없는 얘기를 한없이 듣자니 보통 사람으로서는 인내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이런 경우를 겪었을 것이다.

둘째, ‘상대방의 말에 급하게 대답하지 말라’ 인데 앞의 항목보다는 수월한 듯하지만  실제는 역시 만만찮다. 약간 생각한 다음 대답하려니 자칫 그 뜸이 길게 느껴지고,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셋째,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를 치라’로 이는 첫째, 둘째보다 더욱 적극적인 듣기라 하겠다. 말하는 사람은 듣는 이의 마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어 서로 신뢰감을 쌓는데 좋은 징검다리가 된다.

그러나 이것도 그리 쉽지 않다. 헤어진 다음 그의 말은 분명히 들었는데 적절한 말 응대를 놓쳤음을 깨닫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절대 그러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도루묵일 경우가 많아, ‘나는 할 수 없는 인간이구나’하며 자탄하고 만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다면 성공 못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데 이를 변명할만한 말이 있어 다소 위로는 된다.  “인간은 대개 상대의 말을 그 절반만 듣고, 또 그 절반의 절반만 이해한다. 그리고 그것의 절반만 믿으며 그 가운데서도 절반만 기억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이를 간추리면 사람은 상대방이 한 말 가운데 평균 16분의 1만 기억하는 셈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인간이기에 부딪치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렸다. 그러니 나 같은 보통사람이 훌륭한 청취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또 아무리 훌륭한 말이라도 1분 이내에 청취자의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설이 있는데 이것도 그럴 듯하다.

그래도 노력하는 한 좀 달라지겠지 하며 과묵한 어느 선배와 단 둘이 가진 술자리에서 마음먹고 실행에 옮긴 적이 있다. 선배는 본래 말이 없는 데다 그날따라 말수가 적었다. 나도 질세라 선배의 말 듣기에 집중하며 내 말을 아껴 보았다. 1시간쯤 지난 뒤였다.

“니, 와 말이 없노? 무슨 일 있나?”
“일은 무슨 일. 내가 말 안한 게 뭐 있어요?”
“가자. 니가 말을 안 하니 심심하다”

그러면서 선배가 먼저 일어섰다. 평소 자기가 말 안 한 것은 생각지 않고 나만 탓하니 머쓱해졌다. 모처럼 작심하고 실행했는데 실패로 끝난 것이다. 그래도 기분은 괜찮았다. 나름대로 실천을 해 보았으니까... 그러나 자칫하다간 그 선배가 다음에는 술 마시자는 말을 하지 않을까봐 은근히 걱정이 됐다. 그런 식이니 군자가 못 되는 건지는 모르지만...

   -평화대사 7월호(2009)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