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06 [칼럼니스트] 2009년 5월 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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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나온 여자
우혜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hazelwoo


올해는 오랜만에 내가 이대 나온 여자임을 돌아보게 만든 해가 아닌가 싶다. 텔레비전에서 ‘나 광대 나온 남자야’ ‘나 이대 나온 여자야’ 라는 말이 우스개로 떠돌아다녀 주위에 물어 보았더니 어느 영화에서 도박하다 경찰에 끌려가면서 누가 그랬다고 해서 유명해진 대사라고 한다. 마침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이 영화를 했다. 보려했으나 너무 재미가 없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기회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어쨌거나 올해는 이상하게도, 허위학력 기재로 물의를 일으키는 사건이 종종 터지면서 계속 나에게 이대 나온 여자의 의미를 묻고 있다.

한 예로 2월 20일 금요일 대강당에 앉아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연설을 듣기위해 기다리면서 보게 된 이화여대 홍보 영상도 그랬다. 미국 대통령 자리에 도전했던 한 미국여성의 강연을 서울에서 한국인인 내가 듣기위해 이 자리에 앉아있기 까지 참 수많은 여성들이 수고했구나 그런 생각이 하게 만들었다. 대강당 의자도 새로 바뀌었네. 나중에 들으니 동창들이 모금하여 새 의자로 바꾸어 주었다고 한다.

이화 초창기 사진에는 댕기머리 땋고  한복 입은 학생들의 모습이 나온다. 그 중에는 둥그런 얼굴을 한 후덕하게 생긴 유관순도 섞여있다. 단 한 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이화학당에서, 약간 학생이 불어나 현재로 말하면 여고 반에서 공부하던 유관순.  아 그래, 이화학당 출신이니 그 정신이 지금의 이화여대로 흐르고 있겠구나 생각했다. 힐러리의 연설을 행복하게 들은 뒤 나는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3월 8일 일요일 나는 놀러갈려다 뜻하지 않게 유관순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인왕산과 북악산에 오르기 전 일행들과 만나 잠깐 서대문 형무소를 들르기로 한 것이다. 그 앞을 버스로, 지하철로, 차로 지나 다녀도, 독립문을 차 다니는데 방해가 된다며 옆으로 밀어냈을 때도, 그 옆에 서대문 형무소가 있는지도 의식하지 않은 나였다.

서대문형무소에 들어서니 한기가 느껴졌다. 4천명이 투옥되었다 4백 명의 애국지사가 그곳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그 중 한 명이 유관순이다. 내가 이대 대강당에서 보았던 후덕해 보이던 한복 입은 이화학당 학생 유관순은 서대문 형무소에서는 슬픈 눈을 한 죄수복의 소녀 사진으로 내게 다가왔다. 서울에서 삼일운동에 참여했고 학교가 문을 닫자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가 다시 만세를 부르다 잡혀, 결국 18세의 나이로 순국한 유관순. 자신의 시위로 인해 자신의 부모가 죽는 것을 겪게 된 소녀. 나라를 잃고, 부모를 잃고, 무엇으로 삶을 지탱할 수가 있을 것인가? 참 슬퍼 보였다. 나는 처음으로 유관순의 슬픔이 내 가슴으로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릴 적 불렀던 ‘삼월 하늘 가만이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라는 노래가 찡하게 마음속으로 울려 퍼졌다.

천안에 독립기념관이 처음 지어졌을 때 아이들을 데리고 간 기억이 난다.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모형을 보았다.  특히 잔인한 고문장면 전시 앞에 웬 사람들이 그리 들끓었던지. 역사적 고문장소가 세계 어느 도시에서나 관광객들을 끓어 들이는데 일조하는 것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서대문 형무소 역시 애국지사들을 고문한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고문당하다 여성감옥에서 사망한 한 명이 유관순이다. 시체는 이화학당 교장선생님의 줄기찬 요구로 찾았다. 아니었으면 그대로 버려져 여우에게나 먹혔을 지도 모른다고 한다.

서대문 형무소를 거닐며 나는 문득 런던 탑 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떠올랐다. 보석이 휘황찬란한 왕관도 볼거리지만, 왕족을 포함하여 여러 사람 가두고 죽인 얘기를 많이 듣게 된다. 왕권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역사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다. 런던탑에서 처형당한 사람 중에 헨리8세의 두 번째 왕비 앤 볼린을 빼놓을 수 없다. 앤 볼린이 아들을 낳아주겠다고 해놓고 딸을 낳았으며 사산을 한 것이 저주라고 여긴 헨리8세는 여러 가지 말도 안 되는 죄목을 붙여 로마가톨릭과 결별하면서까지, 사랑해서 결혼했던 자신의 왕비 목을 날렸다.

앤 볼린은 끝까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처형되기 전 마지막 말에서도 왕을 좋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왜 그랬을까? 혹시라도 자신의 딸이 왕의 눈밖에 날까봐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그 어머니를 세 살 때 잃은 딸은 왕위계승권을 상실하지 않고 자라 결국 왕위에 올랐고 엘리자베스 1세로 44년 동안 통치하면서 대영제국의 신화를 만들게 된다. 영국은 엘리자베스1세 이후 빅토리아 여왕에 이어 지금도 여왕인 엘리자베스2세가 통치하고 있다.

얼마 전 모교에 들렀다 이화역사관으로 다시 지어진 옛 한옥 이화학당을 둘러보다 이대 정신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랐던 어머니들’이라는 표현이 나의 둔감해진 일상을 다시 깨운다. 우리 보다 먼저 시대를 살았던 여성은 우리가 자신들의 삶보다 나은 삶을 살기 바랐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콩나물 값을 아껴 살림을 하면서 딸들을 공부시켰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우리는 포기해서는 안 된다. 자신들이 갖지 못했던 배움의 기회를 딸에게 주기위해 헌신했던 어머니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나라도 있어 유관순처럼 고문당할 우려도 없다. 단지 우리들의 할머니, 우리들의 어머니가 우리에게 기울였던 정성을 기억하자. 이 말이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얼마 전 이화언론인클럽에 나와 힘들게 언론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들려준 장명수 선배의 말이다. 투표권이 없었던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를 생각하자고, 힐러리 클린턴도 그 말을 했었다.

맞다. 나는 이대 나온 여자가 맞다. 나는 우리의 딸들이 나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 뭐 그렇게 출중하지 않더라도 평범한 직장 다니면서 성희롱 당하지 않고, 동등한 월급 받고, 성상납 같은 지저분한 얘기 듣지 않고, 결혼해서 아이 낳고, 육아를 위해 쉬었다 다시 복직도 할 수 있고, 그런 유연한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런 사회를 만들 기위해 노력하고 싶다.

_ 이화동창 2009년 봄 제1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