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03 [칼럼니스트] 2009년 4월 24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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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더불어 사는 상생의 길이다

이규섭 (서울칼럼니스트모임회원,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무르익은 봄빛이 울긋불긋 꽃대궐을 활짝 열어 놓았다.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건만 사람들의 어깨는 쳐졌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살아가기가 팍팍해진 탓이다. 구조조정 칼바람에 잔뜩 목을 움츠린 채 꽃을 즐길 여유조차 없다.
10년 전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 유행어는 '사오정'(45세 정년퇴직), '삼팔선'(38세면 구조조정 대상)이었다. 최근에는 30대 초반이면 명예퇴직을 생각해야 한다는 '삼초땡'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더불어 사는 상생의 지혜와 '배려'가 절실하다. 배려는 선택이 아니라 공존을 위한 필수 덕목이다. '나 살고, 너 죽자'식 경쟁은 공멸을 자초할 뿐이다. 치열한 경쟁 보다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배려에서 나온다.

#공존의 배려
구조조정이 확산되는 가운데 일자리를 나누자는 '잡 셰어링(jod sharing)' 열풍이 부는 것은 공존을 위한 배려이자 '희망 바이러스'다. 하지만 일방통행식 일자리나누기는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중소 제조업체는 일감이 없어 잔업과 특근 수당이 사라진 판에 기본 임금마저 깎이면 생계를 위협받는다. 대졸 초임만 깎는 것도 '동일노동 균등대우' 원칙에 어긋나 법적 문제로 비화될 소지도 없지 않다. 고용창출이 없는 일자리나누기는 비정규직만 양산할 우려도 있다.
일자리나누기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녹색성장 등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정책을 통해 경기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고통을 분담하려는 노사(勞使)간의 양보와 배려가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탄력을 받는다.
일자리나누기의 감동적인 사례는 지난 연말 한 신문에 기고한 어느 독자의 편지다. 손님이 크게 줄자 식당운영이 힘들어진 사장이 한 명을 감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가족처럼 지냈기에 누구를 골라 내보기가 어려웠다. 고민 끝에 7명의 종업원을 모아놓고 "알다시피 식당운영이 너무 어렵다. 미안하지만 서로 상의해서 그나마 사정이 나은 사람이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했다.
홀 서빙을 하며 대학등록금을 모으던 막내가 "내가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러자 주방 일을 거들던 아주머니가 "차라리 내 월급을 줄여 함께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나섰다. 다른 직원들도 "내 월급도 줄여달라"며 나서 사장이 눈물을 흘렸다는 숙연한 기사다. 임금을 낮춰 일자리를 빼앗지 않고 더불어 살자는 '참 아름다운 공존의 배려'다.

#상생의 배려
일할 맛 나는 직장을 위해 회사는 일을 통해 '성취의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직원들을 배려해야 한다. 위기일수록 회사 경영상황을 직원들에게 알리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직원들도 주인의식을 갖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위기는 기회가 된다. 노사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가족같이 배려하는 자세가 뒷받침 돼야 신바람 나는 일터를 만들 수 있다. 상생의 배려는 악어와 악어새와 같다.   
조직은 상하관계가 원만해야 활력이 넘친다. 갈등이 생기면 뒤에서 험담하지말고 대화로 푸는 게 순리다. 소통의 윤활유는 원만한 인간관계와 신뢰다. 상사는 부하가 업무에 지쳐 있을 때 가볍게 어깨를 쳐주며 격려해주고, 부하는 상사의 고충을 이해하고 야무지게 일을 처리하면 신뢰가 쌓이기 마련이다.
동료애도 마찬가지다. "바쁘지, 내가 도와 줄일 없을까?"하며 도와주고, "도와줘서 고마워"하고 화답하며 서로를 배려 할 때 끈끈한 동료애는 절로 우러난다. 회사와 상사, 동료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실천하는 게 모두가 사는 상생의 배려다. '나' 보다 '우리'를 생각할 때 오케스트라와 같은 상생의 조화를 이룬다.

#나눔의 배려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자신 보다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나눔의 배려다.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수혜자 가족들이 또 다른 환자에게 장기를 기증하는 '릴레이 장기기증은 '사랑이 사랑을 낳는 생명 나눔'이며 새 삶을 열어주는 값진 배려다.
거액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만이 큰 배려는 아니다. 누군가 나 보다 더 어려운 사람의 손을 잡아 주는 것도 나눔의 배려다.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가 말벗이 되어 주거나, 졸지에 고아가 된 아이나 소년소녀가장을 찾아가 보살펴 주는 것도 봉사이자 배려다. 가슴을 열고 주변을 살피면 작은 배려로 고마움을 주는 일들이 널려 있다.
일상에서 행해지는 사소한 배려가 모여 스스로를 완성시키고 사회를 성숙하게 만든다. 배려는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이자 아름다움의 원천이다. 배려는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이익이 되어 고스란히 돌아오는 저축과 같다. 세상살이란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가 아닌가. 받는 것 보다 베푸는 것이 더 행복하다. 자신의 일과 삶을 즐길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배려가 시작된다.

-셰플러+원 봄호(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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