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99 [칼럼니스트] 2009년 4월 1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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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즐겨라
우혜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hazelwoo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예순 둘은 예순 둘을 살고 일곱 살은 일곱 살을 살지
내가 스무 살이었을 때 일천구백칠십 년 무렵
그 날은 그 날이었고 오늘은 오늘일 뿐이야

여자들은 여자들을 살고 남자들은 남자들을 살지
어린애는 어린애로 살고 어른들은 어른들로 살지
내가 일흔 살이 되면 이천이십 삼십 년 무렵
그날은 그날 일거고 오늘은 오늘일 뿐이야

미리 알 수 있는 것 하나 없고
후회 없이 살 수 있지도 않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지만
다 겪어 봐야 알 수 있는 게 있지‘

나이에 관한 정답을 김창완 밴드의 노래가 요즘 대신 해준다. 삼십 년 전 ‘아니 벌써 해가 솟았나’ 라는 가사로 인기를 끌더니 이번에는 산수시간에서 12=12 가 되는 아주 당연한 얘기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노래가사가 희한해서 인터넷 유투브에 들어가 보았더니 노래 부르는 실황에서, 이 노래에 대한 해설을 김창완이 한다. 산울림이라는 밴드를 함께 해왔던 막내동생을 갑자기 잃고 그는 ‘삶이란 것이 매순간 완성되어야 하는구나, 삶을 완성시키는 것은 오랜 세월의 집적이 아니라 찰나구나, 지금 여러분이 앉아있는 이 순간 인생이 완성되어야 한다’ 고 말한다. 그래, 우리는 그냥 우리의 나이를 각자 살면 될 일이다. 즐겁게, 순간을 즐기면서, 누가 뭐래도 기죽지 않고 나이 따지는 사람 개무시하면서. 겪어봐야 아는 인생의 참맛을 느끼면서…….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일은 참 심각한 일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참 못할 짓이다. 입사시험에 적합한 나이, 결혼 적령기, 승진 연한 등등 중요한 사항을 나이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특히 직장에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터는 사오정이란 말을 염두에 두고 직장생활을 해나가야 한다. 45세 면 정년을 맞게 된다는 비장한 각오로 살아야 하니 살벌하기조차 하다. 짤리지 않으려면 나이를 먹지 말아야 하는데, 안 먹을 도리가 있는가? 그래서 설날 떡국 한 그릇 먹는 일을 두려워한다. 한 일도 없는데 나이만 먹는다고 한탄이다.

텔레비전에서는 열몇 살 된 소녀들이 떼로 나와 갖은 애교를 부리며 그들의 나이가 황금기임을 주입시킨다. 갓 스물을 넘긴 소위 꽃미남들도 화면에 나와 젊고 잘생긴 자신들의 모습으로 시선을 받는다. 십대, 이십대 청춘은 외모로 압권이다. 부모 돈을 쓰면서 철없이 다니던 시절, 자신은 연탄보일러로 바꾸고 내 옷은 철 맞추어 꼭 해주시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그립다.

삼십대도 괜찮다. 사회생활 경험이 생겨, 일을 처리하는 능력도 생기고, 저녁에 회식도 하고 음악회도 가고, 아이들 학교에도 학부모로 가보고, 사람들과도 사귀고, 인생을 즐기게 된다.
부부가 일하니 일 년에 한번 아이들과 여름휴가 같이 가라고 황금 같은 7월 말 휴가기간을 양보해주었던 옛 동료들도 그립다.

사십대가 되면 중년의 위기가 다가온다. 자리가 잡혀 권위로 주위를 눌러볼 수도 있다. 그러다 문득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내가 선택한 길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나? 하면서 궤도를 수정하려 해보려고도 한다. 그러나 쉽지가 않다. 폭음의 길로 들어서는 중년남자들을 많이 본다. 갖은 수모를 겪으며 돈을 벌어오는데도 아이들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밤에 들어오지도 않고 어디를 싸돌아다니는지…….

오십 대 부터는 아예 찬밥이다. 서구에서는 이미 나이로 사람 차별하는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하여 에이지즘(Ageism)이라는 영역을 두고 있다. 나이로 사람을 정형화 하여 일을 주지 않거나 사회에서 차별하지 못하도록 이를 막고 있다. 인종차별, 성차별에 이어 나이차별이 인권의 문제임을 인식한 것이다. 이력서에 생년월일을 쓰지 않도록 만들었다. 나이 들었다고 무조건 무시하지 말고 그 사람의 능력과 기술을 먼저 보라는 권유이다.

최근 티나 터너라는 70세 미국여가수가 가수 50년을 기념하여 공연을 갖자 전 세계 언론이 사진을 찍어 보도하였다. 여전히 머리를 산발하고 나와 옆 트인 옷을 입고 열정적으로 흔들어댔다. 음악적으로도 훌륭했다.

미국대기업에서 중역으로 있다 쫓겨 나와 자기 사업을 하다 망한, 재산, 명예, 가족, 모든 것을 가졌다가 잃은  63세의 한 엘리트 백인 남자. 젊은 흑인 여자로부터 스타벅스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고 커피 집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잘 나가는 예 동료들의 커피 시중을 들면서 진짜 인생을 시작하며 행복을 느끼며 쓴 책 'How Starbucks saved my life'도 있다.

스펜서 존슨이 써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 선물 The Present. 바로 지금 이 순간(The Present) 이야말로 세상이 당신에게 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The Present) 임을 일깨워준다.
  
문득 나는 내가 오늘 하루만 살고 내일 떠난다면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무엇이 그리울까? 하늘, 나무, 풀 한포기, 친구, 가족. 아, 모든 것이 추억이다. 모두가 그리울 것이다. 젊음은 젊음대로, 노년은 노년대로 아름답지 않은가. 살아있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함께 살아 있었던 것, 그 자체를 그리워하지 않을까? 단 한 가지, 남의 나이는 어쩌고 트집 잡으면서, 돈이나 권세 있으면 성상납인지 뭔지 받아 추하게 늙어가는 인간들은 빼고 말이다.

-2009년 봄호 바른조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