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98 [칼럼니스트] 2009년 4월 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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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생활 바루기와 신문
박강문    (대진대학교 통일대학원 초빙교수,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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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이 1896년 4월 7일 창간되었기에 신문 종사자들은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삼아서 지켜오고 있다. 독립신문 창간사는 이제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려 젊은이들이 잘 아는 문헌이 되었다. 독립신문이 추구하던 것 가운데 하나는 문자생활을 바로잡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오늘날 보아도 획기적인 선각이었다.

신문 지면에서 한글로만 쓰기와 띄어쓰기를 한 것은 독립신문이 처음이다. 문자생활의 혁명이라 할 만한 사건이었으므로 독립신문 창간사는 첫머리에서 그리하는 이유를 밝히었다. “우리신문이 한문은 아니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난거슨 샹하귀쳔이 다보게 홈이라 또 국문을 이러케 귀졀을 떼여 쓴즉 아모라도 이신문 보기가 쉽고 신문속에 잇난 말을 자세이 알어 보게 함이라” 신문 종사자들이 ‘신문의 날’을 지키는 것은 독립신문이 가고자 하였던 방향과 이르고자 하였던 목표에 찬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하다면 그 중요한 방향과 목표의 하나가 문자생활 바루기였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신문 문장을 누구든지 읽을 수 있게 되도록 쉽게 써야 한다는 것은 철칙이지만, 기자들이 문장 훈련 안 된 채 기사를 쓰기 시작하고 시간에 쫓겨 미숙한 글쓰기를 고치지 못하니, 껄끄러운 글들이 지면마다 수두룩하다. 거기다 무식과 착각이 걸러지지 않고 겹쳐져 지면에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신문이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되면서 교정 과정이 전보다 약해진 것 같다.

1990년대에 기사 또는 논설을 썼던 이들 가운데 더러는 ‘이수열’이란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정년퇴직 국어 교사인 이씨는 신문 기사나 논설의 잘못된 문장을 하나하나 지적하여 집필자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1999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대한민국 헌법’(현암사)이라는 책이 나왔는데, 이 책에서 이 씨는 헌법의 부자연스러운 문장들을 다듬어 보이었다. 예를 들면  “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를 “모든 국민에게 존엄한 인간 가치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국가는 개인의 불가침 기본인권을 존중하고 철저히 보호한다.”로 고쳐 놓았다.

 이씨가 헌법 문장 다듬기에서 지적한 대로 ‘가지다’라는 말은 너무 남용된다. “나는 한 아들을 가지고 있다.” 같은 서양 언어 직역투가 우리말을 망가뜨리고 있다.    
 
어휘 오용도 잦다.  ‘탓’이란 말은 나쁜 결과의 원인을 말할 때 써야 하는 말이어서, 좋은 결과가 올 때 쓰면 안 된다.  “철없는 모기 탓에 살충제 판매 는다” 같은 제목은 글자 수를 줄이려고 ‘때문에’라고 쓸 데에 ‘탓에’를 쓴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피해야 한다. ‘탓에’가 아니라 ‘덕분에’를 쓸 자리다. 살충제 제조회사는 매출이 늘었기 때문이다. 원인을 나타내는 토씨 ‘로(으로)’를 쓰면 글자 수 줄이는 효과도 있다. “한국에서 전통 가야금을 다시 익힌 특별한 이력 탓에 그의 연주는 어떤 국악인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깊이와 넓이를 가졌다.” 같은 문장도 틀린 것이며 이때도 ‘탓에’를 쓰지 말고 ‘때문에’나 ‘으로’나 ‘덕분에’를 써야 한다.

“예상외로 파장이 번지자 당국은....” 같은 구절은 기자들이 한자에 약해서 나올 것이다. 파장(波長)은 길거나 짧거나 한 것이지 번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번지는 것은 파문(波紋)이다.

 독립신문은 한글만 썼다. 아라비아숫자조차 쓰지 않았다. 이 정신은 지금도 이어받아야 한다. 지금은 아라비아숫자를 신문 지상에서 없앨 수 없다. 한글과 아라비아숫자만으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국제기구의 이름이라든가 하는 것은 로마글자로 써야 할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도 반드시 우리말 역어를 쓰고 괄호 속에 로마글자를 쓰도록 해야 한다. 요즘 신문 지면을 보면 한글, 아라비아숫자, 로마글자, 한자, 심지어 일본글자까지 쓰고 있어, 세계 글자 전시장 같다. 아라비아숫자라는 것이 전세계에서 쓰이는 것 같지만 오히려 아랍문자를 쓰는 나라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국제원자력위원회를 방송에서 ‘아이에이이에이‘(IAEA)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답답하다. 국제원자력위원회와 아이에이이에이는 한 음절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자유무역협정을 구태여 에프티에이(FTA)라고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역시 한 음절을 줄이자고 머릿속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 말을 써야 할까. 자유무역협정이 길어서 줄여야 한다면 자무협으로 하여도 될 것이다.   

외국어 남용을 신문이 앞장서는 경우도 많다. 일자리나누기가 어때서 이것을 굳이 잡셰어링이라고 하고 괄호 속에 친절하게 jop sharing이라고 써 주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무슨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값이 눅다’ ‘값이 헐하다’ 같은 쉬운 말을 쓰려고 노력하던  독립신문 사람들이 지금 신문을 보면 뭐라고 할까.        

어문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고쳐야 한다. 너나없이 뻐스를 타고 다니면서 버스라고 쓰고, 껌을 씹으면서 검이라고 쓰고, 입으로는 화이팅을 외치는데 글로는 파이팅으로 쓰라고 하니 참 우스운 일이다. 1시, 2시라고 쓰고는 한시, 두시로 읽으라 하지 말고, 아예 한시, 두시라고 적어야 옳다. 달 이름은 5월, 6월, 10월이라고 쓸 것이 아니라 한 단어로 된 명사로 쳐서 오월. 유월, 시월로 적어야 한다. 천릿길을 1,000리길이라고 쓰지 않고, 구만리를 90,000리라고 쓰지 않고, 스무고개를 20고개라고 쓰지 않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알 일이다.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종교인 사망 기사다.  종교백화점이라 할 만큼 우리나라에 많은 종교가 공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종교인의 사망을 보도할 때 속한 종교에 맞추어 입적 또는 열반, 소천, 선종, 화천 등으로 일일이 구별하여 써야 할까. 한자 지식 없이는 뜻을 잡기도 어려운데 말이다. 이제 향년(享年)이란 말이 거의 사라진 것은 한글로 써서 뜻을 알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한글 전용 시대가 되어 한자를 거의 쓰지 않는다. 그러면 이에 맞춰 기사 작성도 되도록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저작운동이 뇌활동을 증진시킨다.” “저작운동을 하면 안면근육을 많이 사용하게 되고 이를 통해 혈류가 왕성해져 뇌의 대사활동이 덩달아 좋아진다.” 이렇게 써 놓고 ‘저작운동’이 무슨 운동인지 알려 주는 구절이 없으니 ‘저작’이 ‘씹기’라는 뜻의 한자어라는 것을 모르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신문, 그리고 방송은 국민이 언어생활을 올바로 할 수 있게 본을 보여야 한다. 80년 전 경제학자이며 신문학자인 독일인 칼 뷔허가 한탄하였다. “신문 글은 돼지글이다.” 문장을 소홀히 다루는 신문 종사자들을 꾸짖은 말이다.

관훈저널(관훈클럽 발행) 2009 봄호 권두 시론 pp.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