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97 [칼럼니스트] 2009년 4월 2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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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이 피는 꽃

이규섭 (서울칼럼니스트모임회원,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중국 서남쪽에 위치한 윈난성(云南省)의 성도 쿤밍(昆明)은 사계절 꽃이 피는 '꽃의 도시'다. 아열대지역으로 늘 봄 날씨 같아 춘성(春城)이라 불린다. 한라산 정상(1,950m)과 비슷한 해발 1,895m의 고원도시로 '마린보이' 박태환 등 스포츠선수들의 전지훈련장소로도 각광받는다.

한겨울 기온이 영상 8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여름에도 섭씨 30도를 넘지 않아 꽃이 피면 좀처럼 시들지 않는다. 꽃의 도시답게 가는 곳마다 울긋불긋 꽃대궐이다. 당나라 때 건축한 불교사원 원통사 앞 왕벚꽃 가로수가 꽃 그늘을 드리웠다. 도교사원 금전(金殿)의 350년 된 동백도 꽃을 피워 고목봉춘(枯木逢春)의 노익장을 과시한다. 쿤밍의 동백꽃은 대부분 겹 동백으로 흐드러진 꽃잎이 피를 토한 듯 붉다.

해발 2,500m의 서산삼림공원에 오르니 샛노란 영춘화(迎春花)가 화사하게 웃으며 반긴다. 노란 꽃잎이 개나리를 닮았다. 새우난초가 풀 섶에서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고혹적인 향기를 품어낸다. 중국에서 종죽(棕竹)이라 불리는 관음죽(觀音竹) 연한 줄기가 하늘을 향해 하늘거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초여름에 피는 접시꽃도 잠자리 날개 같은 꽃잎을 활짝 폈다. 하얀 꽃술의 이팝나무, 홍매화와 황매화, 연분홍 산벚꽃과 살구꽃이 어우러진 꽃 세상에 묻혀 세상시름을 잠시 내려놓는다.

쿤밍의 관광명소와 거리가 꽃으로 단장됐다면 도심에 자리한 가멍화훼시장(佳猛花市)은 꽃의 집하장이다. 서울 양재동이나 남대문 꽃시장처럼 도소매를 하는 꽃시장이다. 장미, 백합, 카네이션, 거레바, 안개꽃 등이 주로 거래되지만 장미가 80%를 차지한다.
빨간 장미꽃다발에 노란 꽃잎으로 장식한 하트모양이 예쁘지만 자세히 보니 본드로 붙여 놓았다. 생화에 본드라니 어처구니없다. 그림을 그려 넣은 계란모양의 화분이 앙증맞고 알록달록한 1회용 컵라면 용기와 닮은 화분도 뚜껑을 열면 꽃이 나온다니 아이디어는 기발하다.

윈난성은 1999년 5월에 개최된 쿤밍 세계원예박람회를 계기로 화훼산업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윈난에서 팔려나가는 꽃은 홍콩 꽃 시장 물량의 80%, 상하이와 베이징 물량의 50% 등 중국 꽃 시장 점유율의 절반을 차지한다. '아시아의 네덜란드'를 꿈꾸는 윈난성 화훼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도 있다. 외국에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은 채 꽃을 재배하고 판매하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다. 품질의 고급화와, 품종의 다양화도 풀어야 할 과제다.

꽃은 제철에 피어야 반갑고 제 멋이 풍긴다. 긴장과 이완이 없는 생활이 무미건조하듯 사시사철 철모르고 피어나는 꽃들이기에 싱그러움은 덜하다. 이른 봄 눈 속에서 피어나는 복수초와 설중매에 강한 생명력과 고매함을 느끼는 짜릿하고 매혹적인 아름다움은 없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철없이 핀 꽃들이 흔하다보니 설자리 앉을 자리 모르고 설치는 사람처럼 분수 없어 보인다. 우리의 삶 또한 분수를 지키며 마음의 텃밭에 희망의 꽃을 피우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지혜가 더욱 절실해 진다.
-교차로 2009.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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