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94 [칼럼니스트] 2009년 2월 22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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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여대강연 좋았어요
우혜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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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2009년 2월 20일 금요일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연설할 때 나는 2층에 앉아 있었다. 글쎄, 뭐라고 할까,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연설과 학생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마치고 퇴장 할 때까지 모두 해봐야 한 시간 남짓.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빨려들어가 함께 느끼고 웃고 했다.

혹시라도 놓칠까봐 미리 가 입장하고, 기다리는 동안 읽을 책까지 준비해갔던 일이 후회되지 않았다. 유명한 사람을 실제로 보면 종종 실망하는 적도 있으나 힐러리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우선 분명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였다. 태도가 당당하였다. 그러면서도 부드러웠다.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사람이라면 사람이지만, 세계지도자들 사이에 가면 힐러리는 여성으로서 겪을 수 있는 일을 또 겪을 것이다. 그래서 힐러리는 강연제목(Women's Empowerment) 에도 나와 있듯이 한 여성으로서 그 자리에 섰다.

강연을 마친 다음 젊은 여대생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원래 꿈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우주 비행사가 꿈이었다고 한다. 소녀 시절 미국 항공우주국에 편지를 써 어떻게 하면 우주 비행사가 될 수 있느냐고 편지를 썼으나 여자는 안 받는다는 답장을 받았던 일화. 아이를 출산하고서는 병원에 누워있는데 언제 일하러 나오느냐는 남자 동료의 전화를 받았던 일. 그래서 출산휴가를 가진 다음 나가겠다고 하니, 출산휴가가 뭐냐고 물어오던 일. 그래서 출산휴가란 아이를 돌보기 위한 일이라고 말해주던 일.

딸에 대해 물어보니 딸이 아기일 때 울어서 어쩔 줄 몰라 했던 일. 나도 엄마인 적이 없고 너도 아기로서는 처음이니 우리 한 번 잘 의논해보자고 아기에게 했던 말. 엄마는 수십 년 전 딸이 아팠던 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해 자신이 미국 대통령 민주당 후보로 선거 운동을 할 때 딸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위해 선거 운동을 해준 일. 그리고 아무리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갔어도 엄마가 아직 청중으로부터 ‘내 셔츠나 다림질하라’ 는 얘기를 듣는 걸 딸이 알게 된 일. 등등

여성으로서 아직도 어떤 어려움을 겪느냐는 내용의 질문이었던가? 이렇게 답했다. 하루에 한 가지씩 무엇이든 감사하려고 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서울에 와 아침에 어디를 방문했을 때 아름다운 꽃을 본 일. 비록 밖은 춥지만 화분에 늘어서 자신을 맞아주었던 화사한 꽃들. 그 일에 감사한다고 했다.

어떤 학생이 사랑에 대해 묻자, 마치 자신이 개인 고민을 받는 상담 칼럼니스트 같다고 하여 좌중을 웃겼다. 그런 다음 자신의 친구 말을 인용했다. ‘나는 사랑을 했고 사랑을 받았다. 나머지는 배경음악이다’ (I have loved, I have been loved, and the rest is background music)

힐러리는 자신이 여자대학 출신으로 여자대학에 와 사회에 나갈 젊은 여성들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러나 단지 힐러리는 여성 사이에서만 인정을 받는 것은 아니다. 2007년 미국 뉴욕타임즈와 CBS 의 한 조사에서도 미국인의 68 퍼센트가 힐러리를 여성의 좋은 역할모델 (A good role model for women) 로 생각하였다.

자신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투표권이 없었던 시절을 살았으며 얼마 전 오바마 대통령이 남녀동등 임금법안에 사인했다는 얘기도 잊지 않고 들려준다.

클린턴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전에 나왔을 때, 한 사람 뽑으면 두 명을 갖게 된다는 우스개를 어디선가 읽었던 일이 생각난다. 마치 물건 한 개 사면 두 개 주는 Buy one, get one free 처럼. 반대로 퍼스트레이디가 너무 똑똑해 문제가 있을 것이라던가. 미국 언론의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힐러리는 자신이 퍼스트 레이디였던 것이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1993년부터 2001년 까지 미국 클린턴 대통령 부인으로서 세계 정치 지도자들을 만났고 미국 의료개혁에 관심을 두고 위원회를 맡았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패한 다음 오바마에 축하 연설을 하면서도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세 개의 일을 가지고 있어도 의료보험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여성을 패한 순간에도 잊지 않았다.

힐러리는 2001년부터 2009년 뉴욕 상원위원으로 일했다. 힐러리는 상원의원 출마했을 당시 은퇴하는 사람을 뒤이을 사람을 찾지 못해 자신에게 제의가 왔었다고 말했다. 이번 국무장관 제의도 뜻밖이었다고 했다. 항상 준비를 하고 있으면, 꿈을 쫒으면 꼭 그 꿈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성취하게 된다고 말했다.

힐러리에게는 계속 일거리가 있다. 높은 사람 앞에 가서 울어서도 아니고 오빠라고 불러서도 아니다. 같은 교회에 다녀서도 아니다. 왜냐하면 똑똑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같이 여성이라도 능력 있으면 발탁하는 구조이기에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다.  
(2009.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