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91 [칼럼니스트] 2009년 1월 24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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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에 진상 안 떨기
우혜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hazelwoo


너 결혼 언제 하니? 취직은 했니? 애는 낳았니? 이런 말을 명절에 모인 친척 20대 30대에게 하면 요즘 유행어인 진상이 된다. 소위 말하는 진상 리스트에 오른다. 진상은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말로 임금님께 올리는 진상을 둘러싸고 관리들이 협잡과 뇌물로 괴롭히던 일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진상떨다는 서울 사투리로 ‘까탈스럽게 굴다’ 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한마디로 진상이 되면 환영 받지 못한다. 이런 어른들을 피해서인지 식당에 혼자 앉아 밥 먹는 젊은이를 종종 본다. 라디오나 인터넷에서도 혼자 밥 먹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혼자 사는 노인이 혼자 밥 먹는 이야기가 아니다. 젊은이들도 혼자 살고 다들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 혼자 식당에 가거나, 학생은 구내식당에 가 혼자 먹는다. 혼자 밥 먹기는 이 시대의 화두이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혼자 식당에 가서 혼자 온 걸 알리기 싫어 ‘일행이 나중에 올 거에요’ 라며 시켜 먹는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생맥주 집에 가서 혼자 맥주 마실 때도 그렇게 말하고 주문하면 된다고 한다. 그래도 차마 고기까지는 식당에서 혼자 못 구워 먹는다는 고민이 방송되자. 그 해결책이 즉시 청취자로부터 제시되었다. 카운터 옆에 자리잡고 앉아 식당 주인 딸 인척 하고 구워 먹는다. (폭소 터짐)

결혼했는데 차례의 임무가 주어진 경우 친척들이 당연하다며 와서 먹고만 가면 아내의 고생을 보다 못한 남편이 전화한다. ‘우리 일찍 차례 지나고 여행 가니 안 와도 돼’ 라며 어디론가 날라 버린다. 말로 진상을 떨지 않아도 행동으로 진상을 떤 경우이다. 심한 경우는 장손이 이민 가버려 모든 것이 둘째로 떨어져 둘째 며느리는 날벼락(?)을 맞는다. 둘째라는 점이 결혼 결심을 굳히는데 결정적인 경우이다.

남은 싫으면 안 만나면 되지만 가족이나 친척은 끊을 수가 없다. 명절날 제삿날 모인다. 친척이라고 해서 아무 때나 문 열고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초대의 원칙이다. 이 초대의 원칙이 안 지켜지자 아무 음식도 안하고 차례도 안 지내고 산으로 들로 여행을 가는 사람도 있다. 콘도로 놀러 가 제사상을 배달해 거기서 지내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한 사람에게 책임을 부과하고 고마워하지 않는 진상들 때문이 아닐까? 심지어는 제사나 명절제사가 형제 자매로 이전되는 난리도 일어나는 것을 본다.

나의 어머니는 열 몇 개가 되는 제사를 지내다 지쳐 네 개로 줄였다고 나에게 말하곤 했다. 나는 어머니의 수고를 그 때 알지 못했다. 나는 그저 좋았다. 음식 냄새가 집안에 가득하기 때문이었다. 채반에 가득 담긴 생선전과 육포 감 대추 사과 배 그리고 고기냄새가 집안을 가득하던 명절. 친척 아주머니들이 어머니를 도와 함께 일하면서 오순도순 나누던 이야기. 나도 가끔 불려가 거들기도 했다. 전 뒤집기, 송편 만들기 같은 우아한 일에 보조로 써 주었다.

나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밤 12시가 넘으면 제삿밥을 드시러 오시는 줄 알았다. 항상 밤 열두 시를 못 넘기고 자버려 아침에 일어나면 다녀가셨다고 말해 무척 섭섭했었다. 나를 무척 예뻐하셨다는 할머니를 일년에 한 번 만날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러나 지금의 딸들은 혼자서 식당에 가 밥을 사먹고 주인집 딸 인척 하면서 혼자서 고기도 구워먹고 한다. 미드 다운받아 보느라 바쁘고 할 일이 많다. 결혼도 안 했으니 명절 음식 만들기는 자기 책임도 아니다. 아직 그 수고는 모른다. 피하면 된다. 어떤 요리전문가는 혼자만 전 부치는 걸 억울해 하는 결혼한 여성을 위해 명절 음식 값에서 먼저 얼마를 떼 머리핀이나 헤어 밴드를 사고 음식하면 좀 기분이 낫다고 라디오에 나와 전해 주기도 한다. 그래야 덜 억울하리라.

다행히 아직은 자신의 부모를 생각하며 명절에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주위에 많다. 차례 참석하느라 기차표 예약으로 매번 난리를 치른다. 고인을 떠올리면서 추모도 하고 그러다 보면 숙연해지고 눈에 눈물도 고인다. 그들이 자식을 위해 헌신한 일, 고생한 일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리라. 외국에 있을 때 나는 상에 호밀 빵이나 홍차 놓기도 그래서 냉수 한 그릇 떠놓고 어머니 기일에 두 번 절한 일도 있다. 송편 빚을 때 불러준 것 고마웠어요, 하면서. 잘 차린 음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마음이 중요하지.

‘자손들은 조상 모시기를 산 부모 모시듯이 정성 들여 차린 음식 앞에 두 번 절하는 것이 어찌 효자효녀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만은 집안 친척 형제끼리 돌아가신 분을 그려 보면서 웃음과 대화 속에서 형제간의 정을 나누고 화목한 가정을 이룩합니다’ (제기를 택배로 받아보니 박스에 이렇게 쓰여있더군요. 출처는 광고 같아 못 밝히니 양해해 주세요)

2009.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