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90호 [칼럼니스트] 2009년 1월 1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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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위기인 농업


홍순훈 (칼럼니스트)
http://columnist.org/hsh


지난(2008년) 12월5일 지식경제부가 자동차, 조선, 유화, 반도체, 철강, 섬유,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일반기계, 소프트웨어를 ‘위기에 놓인 10대 업종’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녹색, 황색, 적색으로 구분, 아낌 없는 지원을 시행할 것이라 발표했다.
황당하다. 자동차는 현대차가 국내에서 독점기업인데 그들 발표에 의하면 ‘지난해 10년만의 무파업으로 30조50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금년 상반기에 인도와 중국에 제2공장을 추가 준공했고, 러시아에서도 6월에 공장 기공식, 연말에는 브라질에서도 공장 착공 예정이란 보도가 몇 달 전에 나왔었다. 이렇게 세계가 좁다 맹활약하는 자동차 산업을 위기라 하니 누가 곧이듣겠는가?
조선도 그렇다. 어느 신문사 발간 주간지(11월18일자)를 보면, ‘조선산업, 부동의 세계 1위’, ‘王회장의 조선 입국(立國) 꿈을 이룬 현대중공업, 2007년 매출 15조, 영업이익 1조7507억원’이란 글이 나왔는데, ‘세계 1위’의 산업이 위기라면 도대체 얼마나 잘 경영해야 위기를 벗어나는가?
그리고 10대 업종 중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소프트웨어는 IT관련 산업이다. 10년 넘게 ‘IT강국’이라며 한국의 이 돈 저 돈 죄 긁어가던 산업을 뜬금없이 위기라니, 무슨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도 아니고.... 더구나 ‘1조원 실탄 지원’ 운운하는 하이닉스반도체는 지난 IMF 때도 현대와 LG반도체 부문을 합친 ‘부실덩어리’라 지탄받고 막대한 자금 지원을 받던 기업 아닌가?

김대중정권 시절 IMF위기 극복이니, 부실기업 구조조정이니 하여 1998년5월부터 몇 년동안 174조6천억원이란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이런 요인 등으로 2007년 말 현재 국가채무가 300조원을 넘어섰고, 이자만 13조원이 나갔다. 2007년 세입이 216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지나친 빚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당시로부터 10년 지난 지금 또다시 그들이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 하여 정부가 국민의 혈세를 투입, 지원한다는 것은 국가 경영면에서는 물론 도덕적으로도 분명 옳지 않다.

여기서 정부에 물을 것이 있다. 위 10대 업종은 지난 김-노정권 때 짧게 잡아도 10여년 간 호황을 누리던 재벌 주도의 업종이다. 이들이 위기라면, 그 동안 그토록 살려달라 아우성쳤던 농업은 현재 어떻게 됐는가다. 이미 소멸, 사망했는가 아니면 업종 축에 끼지도 못해 아예 대책에서 제외시켰는가?

최근 이런 의문과 관련된 요령부득의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이정권이 끈질기게 미국 부시에게 체결을 애걸했던 한미FTA가, 농업을 희생양으로 미국에 바치고 한국의 재벌 독점 산업 자동차를 살리자는 것이었음은 세상이 다 아는 구문(舊聞)이다.
금년 가을 들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젖소 비육우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사료값 인상으로 소 사육비가 껑충 뛰자 송아지값이 몇 만원 개값 정도로 폭락했다. 전통적으로 소 팔아 자식 대학 보내 신분 상승을 도모하려는 농민들 소망이 깨졌다. 가구당 연 평균 소득 1000만원 농가가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자녀 대학 교육시키겠다는 것은 이제 망발인가? 가구당 평균 부채 3000만원 농가는 자식 장래 걱정은 고사하고 치솟는 이자에 당장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만만한 일이 아닌 진짜 위기에 빠졌다.

‘아닌 밤중 홍두깨’격으로 터진 직불금 사건은 농민들 복장칠 일이다. 어느 공기업 사장이 TV에 등장해서, ‘나는 한 달에 2번 고향에 내려간다. 그래서 직불금 받는 것이 합법이며 정당하다’고 말했다. 2번 내려가서 뭘 하는지는 자기도 쑥스러웠던지 명쾌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여러 상황으로 봐서 ‘농사짓는다’라는 말을 생략했음이 분명하다. 어이타 농업이 특권층이나 유한족(有閑族)들 골프채 휘두르는 놀이쯤으로 전락했는지 한탄스럽다.
이 직불금은 2002년12월 제정, 2005년7월부터 시행된 ‘쌀 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에 의해 ‘농업인들’을 지원키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도시 거주 보통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용어다. 여기서 ‘농업인들’이라 함은 1천 m² 이상의 농지(논)를 경영하거나 경작하는 사람, 거기서 생산된 농작물(벼 등)의 연간 판매액이 120만원 이상인 사람, 1년 중 90일 이상을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 따위의 조건이 붙는다. ‘소득 보전’은 농지 면적에 따라 지원해 주는 ‘고정직접지불금’과, 정부가 정한 목표 가격과 쌀 시세가 차이 날 때 그 차이를 농업인들에게 보전해 주는 ‘변동직접지불금’ 2가지가 있다.
이 직불금을, 어느 쪽으로 재보나 ‘농업인’이라 할 수 없는 정치인, 공무원, 공기업 임직원, 법조인, 언론인, 고소득 전문직 등 이른바 사회지도층이란 자들 수천명?이 불법 수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불법 수령해야지만 8년 동안 자경(自耕)했다는 근거가 남아 양도소득세 면제 등으로 땅 투기에 성공하고 상속에도 별 문제가 없게 된다. 이들은 꼭 죽은 동물에 달라붙어 게걸스럽게 사체를 뜯어먹는 하이에나를 연상시키는데, 이런 약육강식, 파렴치한 풍토 속에서 어떻게 농업이 올곧게 성장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이 나라가 어떻게 온전할 수 있겠는가? 이 직불금 불법 수령자에 대해서는 직불금 환수 조치로 끝내서는 안 된다. 그들 소유 농지를 국가가 환수하여 실제 농민이 소유 경작토록 해야 하며,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실현하는 농지 대개혁의 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이 기회에, 국토의 2/3나 되는 산지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현재 산지는 골프장이나 만들고, 영악한 자들이 권력과 결탁하여 택지나 조성하여 치부하는 수단으로 삼을 뿐, 식량 생산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수도권의 산지를 보면 거의 모두가 외지인 소유인데, 1년에 잘 해야 한두번 소유주가 성묘차 입산하는 것밖에 없고 타인이 출입하면 법적 처벌을 받는다. 아무리 사유재산을 존중하는 자본주의 국가라지만 참으로 비경제적이며 낭비다. 이제 농지는 물론 산지도 장기적 식량 확보 차원에서 그 소유권이나 사용권을 재정립할 때다.

우리는 아프리카나 남미와 달리 기아는 있을 수 없고 먹을거리도 항상 풍족할 것이란 착각에 빠져 있다. 그렇지만 60대 이상의 사람들은 얼마 안 지난 과거 6.25사변 때 굶주림을 경험했고, 또 바다 건너 멀리 내다 안 봐도 1시간 거리의 북쪽에 지금도 먹을거리가 없어 죽는 사람이 있다. 특히 1995∼98년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 북한 지역에서 아사자 300만명 혹은 400만명이 발생했다는 끔직한 사실은 남의 얘기가 아니고 우리에게도 언제나 들이닥칠 수 있는 바로 나의 얘기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0년도 남북한의 농업 통계를 보면, 남한은 농민 403만명에 농지 131만8천ha이고, 북한은 농민 816만명에 농지 157만2천ha이었다. 이 수치만을 놓고 보면, 남한 인구 4800만명의 식량은 충족되고, 북한 인구 2300만명의 식량은 부족하여 수백만명이 굶어죽었다는 것은 계산상 성립될 수 없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불가능이 현실로 나타나는데, 90년대 러시아에서 농업 관계기관과 함께 합영회사를 조직, 운영했던 필자는 거기서 이런 현상을 직접 체험했다. 비옥한 농지가 끝 없이 펼쳐져 있고 아무리 기계화 작업을 한다 해도 생산과 분배 과정에 사소한 허점만 있어도, 외부로 출하(出荷)되는 작물이 0이 된다. 어리숙한 것 같지만 농업은 ‘적당히’가 안 통하는 정밀 산업이며 과학이다.

지금 세계는 민주/사회 양대 세력의 소멸로 대혼란기에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경제 국경도 무너져서 내 것 네 것 구별이 없다. 사실 위 10대 업종의 어느 생산품이든 이 땅에서 생산되지 않는다 하여 우리가 원시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생명이 위협을 받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국제 경쟁력 없는 업종은 자연 도태되는 것이 원칙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이익이다.
그러나 농업만은 그렇지 않다. 인구 급증, 이상 기후, 전쟁 발발 따위로 곡물의 세계 유통이 언제 중단될지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식량 자급 능력을 갖춰 식량 부족으로 생명을 잃거나 외세에 의해 생존이 농락되는 위험을 방지해야 된다. 쌀만 자급되지, 기타 곡물(보리 60%, 콩 7.3%, 밀 0.2%, 옥수수 0.7%)은 거의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의 식량 수급 특성상 더욱 그렇다.

지금이 경제 위기라면 지난 10년 간의 김-노 정권 책임도 크다. IMF위기를 피하려다 또 다른 위기를 불렀다는 결론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위정자들은 2천 몇백년 전 쓰여진 고리타분하지만 베스트셀러였던 논어집주(論語集註) 제12권에 나온 다음 글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스승에게 물었다.
자공 : 정치를 어떻게 해야 됩니까?
공자 : 백성들 밥 잘 먹이고[足食], 국방 튼튼히 하고[足兵], 백성들이 믿게[信] 하라.
자공 : 부득이 버릴진대 그 3가지 중 어느 것을 버려야 됩니까?
공자 : 국방이다.
자공 : 그럼 나머지 2가지에서 부득이 버릴진대 어느 것을 버려야 됩니까?
공자 : 밥이다. 믿음[信]이 없으면 자신은 물론 나라도 존립할 수 없으니[不立], 믿음만은 놓쳐서 안 된다!"

2009.01.16
(엽연초 2009년 1월호 게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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