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89 [칼럼니스트] 2009년 1월 10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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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 시에 담긴 '희망'

이규섭 (서울칼럼니스트모임회원,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새해와 함께 신춘문예 당선 시들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시들이기에 활어같이 싱싱하다. 암울한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노래한 시어들이 새벽 공기처럼 상큼하다.

'이곳은 내가 파 놓은 구덩이입니다/ 너 또 방 안에 무슨 짓이니/ 저녁밥을 먹다 말고 엄마가 꾸짖으러 옵니다/ 구덩이에 발이 걸려 넘어집니다/ 숟가락이 구덩이 옆에 꽂힙니다./ 잘 뒤집으면 모자가 되겠습니다//…//저 구덩이가 빨리 자라야 새들이 집을 지을 텐데/ 엄마는 숟가락이 없어져서 큰일이라고 한숨을 쉽니다'(이우성 시 '무럭무럭 구덩이' 한국일보)
시에 등장하는 엄마와, 형, 아버지와 나, 가족들마다 각자 걱정을 키우며 살아가지만 구덩이와 모자의 이미지를 통해 '저 구덩이가 빨리 자라야 새들이 집을 지을 텐데'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 신선하다.

'시작이 끝이었나, 물길이 희미하다/ 매일 밤 고향으로 회귀하는 꿈꾸지만/ 길이란 보이지 않는 미망 속의 긴 강줄기// 바다와 강 만나는 소용돌이 길목에서/은빛 비늘 털실 풀듯 올올이 뜯겨져도/ 뱃속에 감춘 꿈 하나 잰걸음 꼬리 친다//…// 끝없이 이어지는 도저한 역류의 몸짓/ 마지막 불꽃이 타는 저녁 강은 황홀하다/ 비로소 바람에 맡겨 눈감고 몸을 연다.'(김영희 시조 '연어를 꿈꾸다' 동아일보)
모천(母川)으로 회귀하려는 연어의 유영은 우리들 삶의 원형이다. 살아가기가 팍팍할수록 어머니의 품속 같은 고향이 그립다. 타향살이가 서러울수록 행복했던 시절이 그립다. '은빛 비늘 털실 풀듯 올올이 뜯겨져도, 바람에 눈감고 몸을 여는' 연어처럼 우리는 시련과 절망을 극복해야 '희망의 모천'에 닿을 수 있다.
'실업수당을 받으러 가는'처지건만 '부풀어 오른 공기 주머니 속에서 한잠 실컷 자고 일어나/ 배부르지 않을 만큼만 둥실,/ 떠오르고 싶어'하는 김은주 시 '술빵 냄새의 시간'(동아일보)도 희망의 변주다.

'땡볕더위에 잎맥만 남은 이파리 하나/ 지하도 계단 바닥에 누워 있던 청년은/ 양말까지 신고 노르스름한 병색이었다/ 더 이상 수작 피우지 않아서 좋아? 싫어?/ 스스로 묻다가 무거운 짐 원없이 내려놓았다.//…// 청년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세상의 푸른 이마였던 그의/ 꿈이 요새에 갇혀서/ 해저로 달리는 환상열차/ 잎사귀인지 물고기인지를 한 땀 바느질한/ 지하도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이들이/ 다리 하나 하늘에 걸칠 때' (양수덕 시 '맆 피쉬' 경향신문)
맆 피쉬는 아마존 유역에 서식하는 열대어로 물 속 바위에 붙어살아 '나뭇잎 고기'라고도 한다. 걸인으로 대변되는 소외된 자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며 '다리 하나 하늘에 걸칠 때'를 바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당선자는 50대 중반의 '늦깎이 등단'으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명제를 재확인시켜줬다.
신춘 시에 담긴 희망의 메시지처럼 새해엔 우리 모두 희망을 꿈꾸며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교차로 2009.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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