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88 [칼럼니스트] 2009년 1월 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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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관과 미장원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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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모임에서 사진관을 하는 친구가 사진관과 미장원이 겪는 공통의 괴로움은 ‘공주병 환자’ 달래기라고 했다. 장시간 애써 머리를 손봐주면 이쁘게 되지 않았다고 온갖 투정을 부리는데 여간 속 썩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진관도 공들여 사진을 찍어 놓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성깔 부리며 짜증내는데 죽을 노릇이라고 한다.

물론 솜씨가 떨어지는 미용사와 사진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제대로 됐는데 항의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이들은 대체로 자신의 얼굴에 대해 본래 생김새보다 과대평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 업소 관계자의 진단이다.

그러나 대놓고 당신 얼굴이 그밖에 안 되는데 왜 사진관, 미장원 탓을 하느냐고 했다간 맞아 죽을 각오를 하거나 그 장사를 접어야 한다. 따라서 사진 찍는 값이 아니라 공주병 환자 달래는 비용으로 생각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푸념을 했다.

그 말이 웃자는 뜻에서 약간 과장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가게에서 가끔 본 경험에 따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여성들이 대체로 까다로운 편이고 심심찮게 보는 공주병환자는 대책이 제3자가 봐도 서질 않았다. 그저 굽실거리고 달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사진관 아닌 곳에서도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어느 일행이 단체여행에 나섰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즉석 사진기로 재미삼아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런데 한 여성이 사진이 잘못 나왔다며 몇 번을 다시 찍고도 불만이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괜찮은데 본인은 주위 사람들이 민망할 정도로 짜증과 불평을 털어놓았다.

그런 일이야 일회성이니 다음에 그 사람을 안 찍으면 되지만 사진관은 그게 업이므로 그럴 수도 없다. 우리는 사진관 친구의 전생이 그렇게 시달리도록 되었을 거라는 농담을 하며 웃었지만 누군가가 공주병, 왕자병은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조금씩은 있는 것이라고 지적해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부분이 너나없이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워비곤 호수 효과(Lake Wobegon Effect)'증세이다. 워비곤 호수는 개리슨 케일러의 작품에 나오는 가상의 마을이다. 이곳 여자들은 힘이 세고, 남자들은 잘 생겼으며 아이들은 평균 이상의 능력을 가졌다고 믿는다. 자신에 대해 실제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근거 없이 자신을 후하게 평가하는 것은 불만과 불행의 씨앗이다. 남이나 세상은 그렇게 보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일찍이 이에 대한 방안을 내놓았다. 그의 다섯 가지 행복 조건이 그것이다.

첫째,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 셋째, 자신의 자만과 달리 사람들이 절반 정도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넷째,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 이기고 두 사람에게 질 정도의 체격. 다섯째, 연설을 듣고서 청중의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말솜씨.

그는 이런 것들을 고맙게 생각하고 감수하면서 살아가노라면 불만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소위 안분지족(安分知足.편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알라)하라는 충고다.

나아가 실제 잘 나고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너무 튀지 말라는 경계도 들어 있다. ‘중용’에서 도 ‘비단 옷 위에 얇은 겉옷을 입어 그 광채를 약간 가리듯 재주를 감추면 날로 더욱 빛나고 대놓고 자랑하면 날로 시든다’(제 33장)고 했다. 요즘 시속과는 좀 떨어진 듯하지만 긴 눈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공주병, 왕자병을 극복하려면 자신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경기불황, 금융경색 등으로 요즘 너나없이 고단한 나날이다. 이 고통의 원인을 외부여건에만 돌리지 말고 괴롭더라도 자신 속에서 찾는 지혜도 필요한 때이다. 즉 자신을 과신하고 과대평가한 부분이 있다면 과감히 자책하고 반성하여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 그러면 힘들고 고단한 연말연시에 한 가닥 가느다란 희망의 빛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행정공제회 '웹진' 12월호(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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