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87 [칼럼니스트] 2008년 12월 29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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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숫자에 불과
우혜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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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피겨 스케이팅 중계방송을 보다가 김연아 18세 키 몇 센티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듣고 웃음이 났다. 정말 그렇게 할 얘기가 없을까 하다가 나이에 대한 집착은 내가 아는 한 한국은 정말 세계 1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사람 처럼 몇 년도에 태어났는지, 몇 학번인지가 중요한 다른 국가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친 서양 사람이 쓴 책을 보니 서양인에게 몇 살인지 물어보지 말아 달라고 까지 해놓았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전혀 개선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여성이 중간관리자에 오르면 윗사람이 나이를 들먹이며 올라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말을 들려준다. 자기도 나이가 꽤 나이가 될 텐데 왜 남의 나이만 많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자기 나이는 괜찮고 남의 나이는 문제 삼는다. 직장에서 그 사람에 대해 나이 말고 생각나는 것이 없으면 정말 큰일이다. 너 몇 살이야 하는 물음이 개그에도 흔하다. 벌거벗고 만난 사우나에서도 나이로 형님 동생 한다.

왜 그럴까? 하고 주윗분들에게 물어 보았다. 빨리 관계정립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란다. 안 그러면 한국사회에서는 피곤해 진단다. 우리 사회가 나이로 따지는 사이이기 때문에. 빨리 나이를 알고 학번을 안 다음 형님 동생으로서 말하는 방법을 정립해야하기 때문이란다. 살아남기 위해서.

또 한 가지 돌아온 대답은 대화 소재의 부족이었다. 그 말이 맞는다고 생각된다.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 무슨 영화를 무슨 연극, 무슨 공연, 무슨 전시회를 가 보았느냐 아니면 가보고 싶다는 말까지는 아니더라도, 휴가 때 어디를 갔다 왔다 혹은 가고 싶다는 말은 아니더라도 나이 말고 할 얘기가 그리 없을까? 하다못해 오늘 날씨, 오늘 반찬거리, 점심 메뉴, 주말에 만날 친구, 이번 주 약속, 재미있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등 도 있다.  

강아지에 대해서도 몇 살이라는 사항이외에도 더 말할 것이 있다. 사료만 먹는다는 둥, 좋으면 엉덩이를 들이민다는 둥,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한다는 둥, 정말 강아지 키우는 사람들은 끝도 없이 그 강아지에 대해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그만큼 할 말이 없다. 아는 것이 없다. 아니 알려고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다. 영국 사람들은 You should do your homework 라는 말을 학교 안다니는 어른들 사이에서도 많이 사용한다. 하긴 한국에서는 학원 가야하니 숙제할 시간도 없긴해 숙제가 없는 경우도 있는지 모르겠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생각하고 자료를 찾아보면서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 알려고 해야 한다는 충고이다. 발품을 팔아야 진정한 관계정립이 이루어진다.

신문사에 들어갔을 때 수습기간을 거치면서 경찰서도 돌고 구치소 안에 갇혀있는 사람도 보고 구질구질해 보였던 냄새나는 이불도 느끼고 그런 적이 있었다. 그 당시는 사람이름과 나이를 알아내는 것이 첫 번째로 중요하기는 했다. 그 때는 취재를 가도 ‘아가씨’ 로 불리거나 미쓰 로 불려 괴로웠던 20대 이었다. 그런데 여전한 모양이다. 한 여기자가 한 오뎅집에서 주인아주머니가 주문을 받으려 ‘아가씨’ 하고 부르자 ‘저 아가씨 아니고 기잔데요’ 하며 거칠게 항의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취재 현장에서 기자로 대해주지 않고 그냥 젊은 여자로 대해주는 것에 너무 지쳐있던 나머지 아가씨로 불리니 아무 상관도 없는 오뎅집에서 발끈한 것이다.

나이를 밝히는 것을 서양인들이 싫어하니까 나이를 말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이제 컴퓨터로 웬만한 생년월일은 비밀은 알 수 있고 주민등록번호로도 알 수 있다. 더 이상 정보로서의 가치는 상실했다고 본다. 문제는 나이로 차별하는 것이 성차별, 인종차별처럼 인권의 문제라는 것이다.

얼마 전 60세 이상은 현재 시급 3770원을 덜 줘도 된다는 법률안이 상정될 지도 모른다는 소식도 잠시 들렸다. 나이로 그 사람이 비효율적일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 사람이 나이가 60이 되었다고 해서 일을 못하리라는 선입견으로 값을 깎는 것은 현대판 고려장이라 할 수 있다. 60이 청춘이라는 말도 주위에서 한다.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하면 살날이 많이 남았다는 반론도 평균수명 80세를 생각하면 설득력이 있다.

올해 2008년이 가고 새해는 2009년이 된다. 한 살 나이를 먹는 것을 다들 안타까워들 한다. 나이가 중요한 세상에서는 특히 그렇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노예선 에서처럼 생물학적 노쇠현상이 얼마나 이루어졌나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기 보다는 두뇌와 창의성, 성실성, 책임감, 상대에 대한 배려, 등등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도.  

특히 새해는 금융위기로 경제도 더 어려울 텐데 어리면 어리다 하고 60세 이상이면 나이 많다고 하는 식으로 나이 가지고 사람을 무시하고 상처 주는 태도는 사회 통합에 도움이 안 된다.  나이는 숫자이고(Age is just a number!), 돈도 숫자이고, 2009년도 숫자이고, 그러나 사람은 사람일 뿐이고.

2008.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