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84 [칼럼니스트] 2008년 12월 4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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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한 문장의 묘미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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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설, 수필집 등 문학서적을 비롯한 인문, 사회과학 책들을 책꽂이에서 대거 들어냈다. 그 가운데 문학전집류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대단한 식견이나 안목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글에 대한 내 식성이 기준이라면 기준이라 하겠다.

본래 베스트셀러나 화제가 만발한 책에 대해 얼른 손이 가지 않고, 수사가 너무 현란하거나 유행에 민감한 글, 감정 과잉의 문장을 그리 가까이 하지 않던 성격이었는데 젊은 날은 내 취향만 고집할 수 없어 내키지 않아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직장 일의 성격상으로 보아도 그런 편식은 해서는 안 될 노릇이었다.

그러나 퇴직 이후는 그런 부담도 없고 다른 사람 눈치 볼 일도 그다지 많지 않아 내 입맛에 충실해도 되겠구나 하는 고집 같은 것이 생겼다. 나이 들어가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많은데 이는 그 중 마음 편한 현상 중의 하나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늙어 가면서 주의해야할 유연성 결핍이라고 누군가 비난한다 해도 적극 변명할 생각은 없다.

나는 대체로 간명한 글을 좋아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수식어가 없고 주어, 술어로만 이루어진 문장이라면 이상적이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일반인을 위한 자연과학 계통의 교양서적을 즐겨 읽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누군가가 수학공식이야말로 인류가 지닌 의사 전달 표현 가운데에서 가장 완벽한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이 말에 적극 공감한다. 수학도가 되지 못한 것이 한스럽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한문고전 가운데서도 ‘논어’,‘노자’류의 책에 친밀감을 느낀다. ‘논어’ ‘노자’ 등은 문장이 짧고 설명이 간결하다. 반면 ‘맹자’ ‘장자’ 등은 문장이 길고 설명이 간단치 않다. 공자, 노자가 사용 한자수가 아직 많지 않고, 필기도구가 충분치 않아 말과 글을 아껴야 했던 춘추시대 사람들이고, 맹자와 장자는 합종연횡 등으로 유세객들이 말과 글을 아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구사해야 했던 전국시대 사람들이라는 차이 때문인지 몰라도 양측의 글맛은 현저하게 다르다.

그렇다고 맹자의 명쾌한 논리와 장자의 호방함을 싫어한다는 말은 아니다. 문장만  갖고 보면 그렇다는 뜻이다.

문학작품으로는 헤밍웨이 소설, 김용성의 ‘도둑일기’ 이문희의 ‘흑맥’ 같은 종류의 글맛을 좋아한다. 저자의 감정개입이 극도로 자제되고, 수사 역시 최대한 절제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구사하는 단어의 다의성과 모호성이 문학의 원동력임을 모르는 바 아니기 때문에 다른 소설들을 비난하거나 배척하려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내 취향이 그렇다는 것을 말하는 것뿐이다. 내가 문학을 연구한다거나 그와 관련한 업을 일삼는다면 취향이 달라도 포용하겠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으니 내 식대로 즐긴다는 뜻이다.

감탄이 절로 솟게 하는 멋과 기교, 화려한 수식어 구사, 유행에 맞춰진 세련미 등이 넘치는 문장을 아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독특하고 화려한 맛이 있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면 재료와 양념이 요란하고 빛깔이 사치스런 음식을 먹고 난 뒤처럼 뭔가 허전하고 아쉽다..

그런 문장들은 세월이 지나면 화장독만 진하게 남은 늙은 여자 얼굴을 대할 때처럼 마음이 편치 못하다. 밤에 쓴 남의 연애편지를 보았을 때처럼 괜히 내가 미안하고 안쓰럽다. 그래서 문학서적들을 많이 처분해 버린 것이다. 픽션보다는 넌픽션에 더 자주 손이 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운문 중에서는 월산대군이나 성종의 시조, 가도의 ‘심은자불우’, 하지장의 ‘회향우서’, 왕유의 ‘잡시’, 유종원의 ‘강설’ 이규보의 ‘영정중월’처럼 짧고 질박하면서도 긴 여운을 남기는 한시등에 마음이 자주 간다. 이런 시들은 문자 그대로 담박하면서 ‘書盡而言不盡 言盡而意不盡’(글이 끝나도 말은 남아있고, 말은 끝나도 뜻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마치 말없이 옆에 있기만 해도 좋은 사람 같다.

음식으로 치면 영어의 comfort food(그리운 옛 맛 또는 정겨운 음식)같다고나 할까. 우리로 치면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같은 것이다. 한국인이면 언제 어디서나 그런 음식을 좋아하듯이 나는 담백하고 깔끔한 그런 문장들을 즐긴다.

그러나 현란한 문장이 요즘 추세인 듯, 스트레이트가 생명인 언론의 문장마저도 수사와 기교가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해설 기사 등에서 주로 그렇다는 말이다. 신문을 읽고 난 뒤 가끔 말 많고 시끄러운 사람 옆에 있다 온 것처럼 어수선한 느낌을 떨쳐버리지 못할 때가 있는데 그게 상당한 이유인 것 같다.

           -대한언론 12월호(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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