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83 [칼럼니스트] 2008년 11월 30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딴 글 보기 | 거시기 머시기 | 배달신청/해지 | columnist.org(홈)
옆집 남자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nhp


대한민국 남편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공통의 적은 ‘옆집 남자’라는 말이 있다. 부인들의 입을 통해 묘사되는 그 사람은 한 결 같이 재력 튼튼하고, 직장과 사회에서 거칠 것 없이 잘나가는 능력 만점의 매력남이다.

그 뿐인가. 고매한 교양미와 세련된 매너로 부인을 사랑함은 물론 매우 가정적이고 헌신적이어서 휴일은 말할 것도 없고 평일에도 집안청소, 세탁기 돌리는 것에서부터 설거지까지도 알아서 척척 해 낸다. 주변에 대한 배려가 남달라 장인 장모를 비롯한 처가식구들에게까지 때맞춰 인사도 잘 갖춘다. 흠이라고는 조금도 찾을 수 없는 완벽 그 자체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대부분 남편들은 위축될대로 위축되고 졸대로 졸아서 세상 살 맛이 싹 사라지고 만다. 직장 등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에 찌들어 시들은 풀잎처럼 후줄그레한 자신을 생각만 해도 한심해 죽겠는데 ‘옆집 남자’가 이렇게 등장하면 죽고 싶을 뿐이다.

청소년들이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때문에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현상과 비슷하다. 그래도 애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하소연도 하고 서로 대응책도 강구한다. 자기들끼리 경험을 통해 그렇게 공부 잘 하고 모든 것이 뛰어난 엄마 친구 아들은 실제 인물이 아니라 상상 속에서 조합되고 합성된 것이니 당당하게 실물을 대라고 따진다든지, 다른 훌륭한 엄마를 예로 들며 우리 엄마는 뭐냐고 반발하라는 발칙한 해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편들은 혈기가 많이 시들어 그럴 의욕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식으로 ‘옆집 여자’를 거론하며 대응했다가는 그 결과가 어떨지 너무 잘 알아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 만약  그걸 참지 못하고 꿈틀했다 하면 엄청난 후폭풍 속에서 앞을 가늠할 수 없는 끔찍한 사태를 맞이할 것이 뻔하다. 그리고 ‘엄친아’처럼 ‘옆집 남자’는 부인이 아는 여러 남자들의 합성이라는 것도 대개 짐작하지만 그걸 아는 체 했다가는 짜잔하고 못난 남자라는 욕만 바가지로 먹게 된다. 그래서 가능하면 ‘옆집 남자’ 등장의 기회를 사전봉쇄하거나 그 장면을 피하려는 노력을 더욱 열심히 한다.

그러나 최근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를 계기로 ‘옆집 남자’ 등장이 더욱 빈번해지고 있으니 죽어나는 것은 남편들이다. 나도는 얘기에 따르면 주식, 펀드 등에 손을 댔다가 거덜 난 사람들 대부분이 직장인이나 퇴직자들이라고 한다. 나름대로 살림 형편 좀 늘려보자고 손을 댄 것이 대박은커녕 쪽박이 됐으니 허망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남편을 위로하고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여자들이 다수이나 더러는 일방적으로 ‘옆집 남자’를 들이대며 비난하는 통에 죽고만 싶다는 남편들 또한 적지 않다. 가끔 비통한 심정을 토로하며 절망하는 이들을 보면 듣는 사람 역시 암울하고 답답하다.

그런 부인들 눈에 비치는 ‘자기 남자’는 그렇게 구제불능일까. 일일이 직접 묻지 않아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자신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원인은 비교에 따른 상대적 불행감 때문이다. 이를 어찌할 수 없으니 부인들 역시 알면서도 해보는 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그 ‘해 보는 소리’가 남편에게는 치명적이다.

명심보감 ‘계성’편에 “장점과 단점은 집집마다 있고, 일이 잘 되고 못됨은 곳곳이 같다”(‘長短家家有 炎凉處處同’ 장단가가유 염량처처동)라는 말이 있다. 어느 집, 어느 남편이건 단점이 있으면 반대로 장점도 있으며, 잘 나가는 대목이 있으면 걸리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는 말이다. 즉 음지만 있고 양지는 전혀 없는 집이나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각을 달리해 남편의 강점과 매력을 찾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수단과 도구는 딱 한 가지다. 그건 사랑과 이해심이다. 그것만 있으면 방법은 저절로 생긴다. 그러면 ‘옆집 남자’ 못지않은 괜찮은 남자가 바로 자기 옆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만족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곁에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행정공제회 '웹진' 11월호(2008)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