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82 [칼럼니스트] 2008년 11월 24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딴 글 보기 | 거시기 머시기 | 배달신청/해지 | columnist.org(홈)
따뜻한 마음, 따뜻한 햇살
우혜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hazelwoo


증권이나 펀드는 서울에서 돈 있는 사람만이 하리라는 생각은 틀렸다. 중소 도시에서도 가지고 있던 노후자금 몇 천만 원을 증권에 투자했다가 주가가 내려앉자 몸져누운 사람도 있고 직장 다니면서 한 달에 십만 원 이십만 원씩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적립식으로 몇 백을 펀드에 묻어 두었다 그 나머지 뚝 떨어진 반값도 잃을까 두려워 파는 직장인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 금융위기는 외국에서 시작된 것이라 이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설혹 남의 탓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탓한다고 해서 지금 우리의 삶이 나아지는 것은 없다. 남의 탓을 하는 한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실수를 통해 성장하기 때문이다. 한 번 실수를 하면 왜 내가 그런 실수를 했는지 돌아보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아야 맞다. 그런데 그 일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면 자신이 왜 실수를 했는지 파악할 기회를 잃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성장도 없고 희망도 없다.

이 금융위기는 유럽 금융시장의 중심인 런던에서 이미 CREDIT CRUNCH 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은행끼리 서로 믿지 못해 돈을 빌려주지 않아 물 흐르듯 돌아가야 하는 금융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한 것을 말한다. 날짜까지 나와 있다. 2007년 8월 9일의 일이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우리처럼 당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예측을 하면서 당한다. 당하면서 예측을 하고 미국 탓을 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는다.

차이는 우리는 모르고 있다 당한다는데 있다. 날벼락을 맞는 것이다. 괜찮다 괜찮다 하는 소리를 믿거나 외국 언론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면 그 언론이 틀렸다고 항의하고 그 기사 때문에 한국의 신용이 떨어진다고 또 그 탓을 한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연초 여유 돈으로 증권을 하려니까 집안사람인 증권회사 다니는 사람이 증권시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해서 자신의 재산을 지킨 사람이 있다. 인터넷에는 미네르바라는 사람이 이미 금융위기 예측을 해 사이버 경제대통령 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래도 우리는 괜찮다는 말만 귀에 담았다.

그래, 우리는 허황된 욕심을 부린 것이다. 안 괜찮다는 소리는 흘려듣고 괜찮다는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들은 것이다. 가지고 있는 돈 조금 자라는 것 성에 차지 않아 대박을 꿈꾸며 이리저리 남의 말을 믿고 부화뇌동한 것이다. 다 내 탓이다. 키코인지 뭔지로 중소기업이 환율급등으로 앉아 손해를 보고 있다 하지만 모르는 것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 경영자 덕분에 아무 일없는 회사도 있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하는 중간에 있는 사람의 말만 믿고 내 돈을 같다 맡기고 사인한 것이 다 내 탓이 아니고 누구 탓이란 말인가?

세계의 증권시장이 폭락을 거듭하던 시월의 어느 토요일 아침. 증권시장이 문을 닫아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날, 나는 동네 가게에서 계란 한 판을 샀다. 네모난 서른 개 한 판에 4천5백 원을 치렀다. 하나에 백 오십 원이다. 목장갑을 끼고 네모난 계란 한 판을 들고 걸어오면서 햇살이 나의 얼굴 나의 등 나의 몸 전부를 따뜻하게 비쳐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따뜻한 햇볕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 것이다. 냄비에 물을 부어 달걀을 삶기 시작했다. 끓는 소리가 나자 불을 끄고 그 중 하나를 꺼내 찬 물에 헹구어 껍질을 까니 아직 속은 김이 모락모락 난다. 소금에 찍어 먹으니 꿀맛이다.

결혼 후 집을 사려고 열심히 저축한 돈 천만 원을 펀드에 투자했던 어느 집 딸이 너무 손해가 나자 사백칠십만 원에 환매를 하고 말았다. 그것마저 잃을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 돈 만이라도 건져야했던 절박한 딸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아버지는 자신의 돈으로 천만 원을 다시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회비 때문에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친구를 맛있는 생선회가 가득한 뷔페로 불러내 너는 손님이니까 안내도 돼 하는 친구들. 그래 우리는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따뜻한 마음으로 힘든 세상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따뜻한 햇볕 때문에 사는 것이다. 내년 봄 다시 씨앗을 뿌리면 햇빛과 물이 곡식과 야채와 과일을 키워줄 것이다. 일조량이 부족해 우리나라처럼 맛있는 과일을 못 먹는 나라가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그들은 수입해 먹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우리의 뜨거운 햇빛으로 키워낼 수 있는 수많은 곡식과 과일과 야채가 있는 한, 소 돼지 닭을 놓아먹일 땅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따뜻한 마음, 따듯한 햇살이 언제 다가올지 모르니 꿋꿋하게 살자.

2008년 11월 20일 새마을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