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81 [칼럼니스트] 2008년 10월 1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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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이 그리운 계절

이규섭 (서울칼럼니스트모임회원,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는 입동(立冬). 겨울채비를 서둘러야 하는 계절이다. 태평양 건너에서 밀어닥친 '금융 쓰나미' 여파로 "살림살이가 더 팍팍해졌다"는 한숨이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온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스왑, 선물환, 키코 등 생소한 경제용어들은 서민들과는 거리가 먼 '강 건너 불'로만 여겼다. 출렁이는 주가와 널뛰는 환율, 치솟는 물가, 대출금 회수에 나선 은행을 보면서 '발등의 불'임을 뒤늦게 깨달았으니 한심하다.

반 토막 난 펀드를 울며 겨자 먹기로 환매하며 금융위기의 실체를 피부로 느낀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재테크와는 담을 쌓고 살아온 주제에 '거름 지고 장에 간 것'자체가 잘못이라고 자책할 뿐이다. 제조업을 운영하는 인척이 최근 부도를 맞아 고통을 겪는 것을 보면서 기업의 바짝 마른 돈줄을 실감한다.  
바닥경기를 반영하듯 시장은 벌써 '한 겨울'이다. 중산층은 지갑을 열지 않고, 서민들은 허리띠를 조이며 먹고 입는 것을 줄일 수밖에 없다. 문풍지, 내복, 전기매트나 손난로 등 사라진 난방용품들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올 겨울준비의 새로운 풍속도다.

고유가, 고물가 파고 속에 기름보일러를 연탄보일러로 바꾸거나 연탄난로를 구입하는 이웃들이 부쩍 늘었다. '추억의 연탄'이 '실용의 연탄'으로 우리 곁에 다시 찾아왔다. 가난한 시절 쌀과 연탄과 김치만 있으면 넉넉하게 푸근하게 겨울을 날 수 있었다. 칼바람이 옷섶을 파고드는 새벽 연탄불을 갈고, 연탄가스에 취해 동치미 국물을 마시던 그 시절이 아릿하게 떠오른다.

경기불황의 가장 큰 피해자는 벼랑 끝에 몰린 빈곤층이다. 우리나라 4,800만 인구 중 최저생계비 이하 생활을 하는 빈곤층은 536만 명(2006년 기준)이나 된다. 그들이 겨울을 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정부는 올해부터 기초생활수급대상자와 차상위계층을 대상으로 7만7000원 상당의 연탄쿠폰을 지급하고 있지만 겨울을 나기엔 턱없이 모자란다. 겨울을 나려면 400∼500장의 연탄이 필요 한 데 쿠폰으로는 200장도 들여놓을 수 없을 정도로 연탄 값이 올랐다.

그래도 '사랑의 연탄나누기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우리사회를 훈훈하게 만든다. 벼랑 끝에 몰린 가난한 이웃들을 부축하고 보듬어 겨울을 함께 나는 것은 연탄 불 같은 온정과 관심뿐이다.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지//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네 /나는'

안도현의 시 '연탄'처럼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이다. 스스로를 불태워 따스함을 주는 연탄 같은 이웃사랑이 어느 겨울 보다 절실하다.
교차로 2008. 11. 7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