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79 [칼럼니스트] 2008년 11월 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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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의 객승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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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작업을 마친 수채화처럼 명징한 어느 늦가을 날이었다. 선배와 둘이 찾아간 조그만 절의 아침나절은 잡티 하나 없이 맑은 하늘과 풍성한 햇살, 깊은 적막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당 한 구석 평상에 걸터앉아 개 두 마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던 주지스님이 눈짓으로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선배와 스님은 매우 잘 아는 사이라 인사에 군말이 필요 없었다.  부엌살림 등 여러 가지 일을 도맡은 유일한 보살도 시선 한번으로 반가움을 표했다.

배용균 감독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한 장면이 이렇지 않았던가하며 제멋대로 상상하고, 나름대로 마음속으로 이것저것 그리고 있을 때 부엌 쪽에서 노승 한 분이 우리에게 그림자처럼 조용히 다가왔다. 벙거지를 툭툭 털어 쓴 뒤 허술한 손가방을 열어 뭔가를 챙기는 걸로 보아 아침 먹고 떠날 차비인 듯 했다.

주지스님이 인사말처럼 꺼냈다. “스님, 어디 가서 죽을 거요? 그냥 떠돌더라도 그런 건 정해 놓아야 할 것 아니오? 내일 모레가 80이라면서...” 느닷없이 죽음을 꺼내는 것이 생경한데다, 이를 뜻하는 불교 전문용어는 제쳐놓더라도 최소한 ‘돌아가신다’는 말로 예의는 갖출 법 한데 이처럼 퉁명스러운 것이 어색해 우리는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난처했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는 나는 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노스님에 대한 애정과 어리광이 진한 여운으로 배어 있었다.

“글쎄 가끔 생각해 보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노객승은 마치 무슨 물건을 구해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쉽게 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투였다. 70대 중반이라는데 어찌나 곱게 늙었는지 속세라면 젊어서 여자들 애간장 깨나 녹였겠다 싶을 만큼 외모가 준수했다.      

“그러지 말고 XX도 OO사에 가 봐요. 사정을 잘 말씀드리고 비용 조금만 들이면 죽은 뒤 잘 꼬실라 줘요(태워 줘요). 사람이나 짐승이나 어떻게 죽을까는 생각해 둬야지 원...” 숙제 안한 어린아이 꾸짖듯 해도, 객승은 그래 싸다는 표정으로 동생 같은 주승에게 들릴 듯 말듯 변명처럼 말했다. “툭하면 차비도 없어서 애를 먹는데 그 비용은 어떻게...”

그러자 주승은 나이가 지나면 국가에서 교통비가 조금이나마 나오는데 그건 어디다 쓰고 그런 말 하느냐고 다그쳤다. 객승은 무슨 소리냐며 반문했다.

이야기가 더 나아가다 보니 객승은 교통비를 받을 통장은커녕 주민등록증도 없었다. 주승은 어이가 없어 더욱 크고 퉁명한 어조로 주민등록을 처음 발급받을 때 주소가 어디였느냐고 따졌다. 어느 지방 무슨 절이었다고 대답하니 그 쪽 면사무소에 가서 발급을 받은 뒤 통장을 개설해 교통비를 받도록 하라고 일러 주었다. 객승은 알겠다고 대답은 하나 충분히 납득하지 못한 표정으로 눈만 껌벅였다.

산길을 내려가는 객승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삶과 죽음에 대한 스님들의 고원한 경지를 멋모르고 따라 다니다가 갑자기 속세의 소시민으로 돌아와 붕 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쑥쓰러웠다. ‘호생오사(好生惡死.삶을 좋아하고 죽음은 꺼림)’에 매달리는 우리 같은 범속한 인간들로서는 그 경지를 언급하는 것조차 무안한 노릇이 아닐 수 없으니 말이다.

장자(莊子)도 대자연은 인간을 만들어 삶으로 괴롭히고, 늙음으로 편케 하고, 죽음으로 안식을 주는데 속인들은 이를 제대로 모른다고 ‘호생오사’를 질타했다. 한 예로 어떤 사람이 죽어 갈 때 가족들이 통곡을 하자 고인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시끄럽게 굴지 말라고 호통을 쳤다. 고인은 지금 거대한 우주 속에서 다른 과정으로 거룩하게 변화하는 중인데 그 위대한 순간을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스님들의 경지나 장자의 현묘한 가르침을 우리 같은 범인들이 어찌 짐작이나 할 것인가. 그래도 어찌어찌 아전인수식으로 끌어대면 마음의 안식처를 삼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잠깐 생각했다..

그러나 절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는 순간부터 그것은 참으로 가당찮은 희망임을 곧 깨달았다. 지지고 볶고, 아웅다웅하는 잡다한 시정이 순간이나마 거길 벗어나보려 했던 나를 비웃었다. 그렇지만 그게 싫지 않았다. 그게 나처럼 범속한 인간들의 터전임을 어찌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자위하면서...

                -행정공제회 '웹진' 10월호(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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