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75 [칼럼니스트] 2008년 9월 29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딴 글 보기 | 거시기 머시기 | 배달신청/해지 | columnist.org(홈)
이혼을 축하합니다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nhp


지난 해  초여름 무렵 잘 아는 지인 한분이 나이 70에 이혼을 했다. 어느 날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우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나가는 말처럼 “마침내 어제 모든 걸 정리했다”고 전했다. 그 동안 여러 가지 상황과 과정을 그 분을 통해 익히 들었던 터라 나는 곧 “이혼을 축하합니다”라며 진심을 말했고 그분 역시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이혼 전후의 상황을 종합해 보면 부인과 성격 차이가 매우 심했다. 남편은 정적인 데 비해 부인은 굉장히 활동적이었다. 서로 직장을 가지고 있을 때는 그 심각성을 별로 모르다가 부부가 다 정년퇴직을 하고 하루 종일 집안에서 같이 지내보니 그게 장난이 아니었다. 한 집에 살아도 남과 다름없었다.

그래도 파경은 모면해 보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혼해 나간 자식들까지도 부모의 이혼을 적극 권장할 정도였다. 부모를 비롯 자식들까지 모두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 이혼을 둘러싼 추태나 비난 같은 것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헤어질 때 서로 상대방 건강과 안녕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챙겨 주었다. 부인이 매달 생활비 일정액을 남편에게 지불하기로 했다. 반년쯤 지나 자식들이 이건 충분치 않다고 여겨 어머니에게 3분의 1 인상을 요구,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 분은 ‘지금 받은 액수도 충분한데...’라며 약간 멋쩍어했다.

흔히 볼 수 있는 이혼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저주와 욕설을 퍼부으며 생 원수가 되어 돌아서는 그런 이혼과는 한참 달랐다. 이혼이라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상대를 배려해주며 불가피한 상황을 이지적으로 타개해 나간 그 부부에게 고개가 숙여졌다. 그러니 ‘축 이혼’이 크게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 분의 이혼이 알려지자 주변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났다. 먼저 이혼은 무조건 불행한 것이라는 보수적 견해였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동고동락해야 한다’는 전통적 결혼관에 충실한 이들이었다. 이른바 ‘불행한 결혼’은 살다 보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참으면서 살아야 마땅한 것이고, ‘편안한 이혼’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된다는 논리였다. 그러면서 틈만 나면 그 분이 ‘불쌍하다’ ‘안 됐다’하며 동정을 금치 못했다.

반면 소장층은 견해를 달리했다. 억지로 살면 불행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괴로워하기 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해방시켜, 남은 일생이나마 진정한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인생 낭비를 줄이는 방법이 아니겠느냐는 반응이었다. 이혼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보던 사회의 시선이 이제는 많이 변했기 때문에 남의 눈보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충실한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이었다.

주변에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아도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낫겠다는 이들이 꽤 있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전통적 결혼관에 묶여 있다. 그러면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데 거기에는 부부 중 누군가의 희생과 고통이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건 불공평한 일이다.   

역시 70대인 어느 부부는 정말 견디기 힘든 나날을 살아가고 있지만 부인이 이혼은 절대 않겠다면서 괴로움을 감수한다. 이유는 이혼녀라는 불명예가 죽어도 싫다는 것이다. 같은 연배인 다른 부부도 날마다 다투며 지옥 같은 생활을 하는데 비슷한 이유로 차라리 죽는 날을 기다리며 살고 있다.

친구 중에 이혼을 원하는 이가 있다. 그러나 이건 앞의 분들과 다르다. 나이에 맞지 않게 이 여자 저 여자 집적거리고 다니면서 이혼을 원하니 부인과 자식들이 반대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이혼이 아니라 빈털터리로 쫓아내 버려야 한다는 것이 주변의 의견이다. 이밖에도 헤어지느니만 못한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이들이 많다. ‘결혼은 무기징역이고 이혼은 가석방’이라는 미국의 우스개가 절실하게 와 닿는 사례들이다.

그런 이들과 달리 깔끔하게 정리한 지인은 이혼 후 여행, 취미생활, 평소 하고 싶던 공부 등으로 삶을 풍부하게 하고 있다. 그 부인 역시 적성에 맞는 활동을 하며 노후를 즐기고 있다 한다. 옆에서 보기에도 그리 나쁘지 않다. 결혼이라는 ‘무기징역’에서 이혼이라는 ‘가석방’을 맞은 그 부부의 선택을 어찌 축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행정공제회 '웹진' 9월호(2008)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