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73 [칼럼니스트] 2008년 9월 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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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 이야기
우혜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hazelwoo


한국인이라 하더라도 영국에 오래 살다보면 영국화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자기가 해놓은 밥통의 밥을 손님이 먹어버린데 대한 분노(?) 가 솟거나 아니면 그 말을 들으면 함께 분노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한국 사람끼리 어때 하면서 해놓은 밥을 보면 그냥 먹기도 하고 참기름 등 양념도 쓰고 냉장고에 있는 김치통도 열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서울의 어느 한국인은 아니 뭘 그런 것 가지고 하면서 너무 그렇게 따지면 각박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자신이 며칠 먹으려고 해온 밥을 손님이 먹어 버리면 자기가 먹을 밥을 다시 해야 한다는 데 있다. 쌀이 떨어지면 멀리 사러가야 하고 김치도 사먹으려면 비싸고 한데 아직 런던 물정을 모르는 한국 손님은 남의 집에서 밥 얻어먹는 것이 뭐 그리 큰 일인가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다. 주인 인심이 사납게 느껴진다.

요즘은 서울에서도 음식값 각자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비정규직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는 말을 듣고 씁쓸해졌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 자기 먹은 것만 자기가 내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상사 한 사람이 계속 내다보면 밥값 때문에 빚지는 경우까지 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지킨 자리는 언젠가 본전을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무조건 한 사람이 내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한 사람이 쓰는 전기값, 물 값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는 런던에서는 밥과 김치 다 돈으로 환산된다. 그래서인지 영국인들은 남의 음식에 손대지 않는다. 자신이 먹으면 그 사람 먹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먹으라 해도 먹지도 않는다. 나중에 자신이 갚아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언제 무엇을 함께 먹을 지는 미리 약속이 되어야 한다. 또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 따로 있다.

한국인끼리 방을 함께 쓰면 일주일 지나면 네 것 내 것이 없어져 냉장고가 우리 것이 되지만, 영국인이나 유럽 사람들은 냉장고 칸을 정해놓으면 남의 칸에 손을 대지 않는다. 자신이 먹을 일 주일 치를 주말에 사서 넣고 하나하나 먹는다. 자신이 먹는 분량을 알고 있다. 한 주재원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스코틀랜드 영국인이 샌드위치 빵 조각수를 세서 지금 두 쪽 먹고 나중에 두쪽 먹고 이런 식으로 계산하는데 놀랐다고 한다. 말하는 방식이 그럴 뿐이다.

한국 식당에 가면 서로 내려고 계산대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기도 하지만 런던에서는 머리를 맞대고 계산서 금액을 나누는 splitting bills 하느라 한참을 끙끙댄다. 아예 분리된 계산서를 Seperate Bills please ! 하고 요구하기도 한다. 사실 한 사람이 내기에는 어마어마한 액수이기도 하다.

그런데 계산서를 나누는 방법에도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총액을 사람 수대로 나누는 경우도 있고 자기 먹은 것만 따로 계산해 내기도 한다. 나는 내 것 만 먹은 것을 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일행 중에 포도주 많이 마시는 사람, 디저트 시키는 사람 등 이 있으면 내가 그 사람 먹은 것 까지 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불만이다. 그러나 계산하기 편하기는 그냥 사람 수 대로 나누기가 간단하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적게 먹든 많이 먹든 똑같이 나누어 돈을 내는 것은 자기가 먹은 것 만 내는 것 보다 소비가 많아진다고 한다. 경제이론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한다.

그래도 계산서를 보고 어떻게 나눌까 하고 따지는 사이가 런던에서는 친한 사이이다. 친한 사이가 아니면 아예 식당에 함께 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남의 집 밥과 김치가 공짜라는 인식이 남아있다. 수고한 노동시간을 계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마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 기뻐해야 할지 넉넉한 인심을 잃어버려 슬퍼해야 할지.

- 2008.09.05 (이 글은 2008년 10월 서강대학교 '서강학보' 542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