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71 칼럼니스트 2008년 9월 4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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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의 어제와 오늘(12 끝)


김동호 -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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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2일(2007년), 열두 번째 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개막식에 폭우가 쏟아졌고, 대선주자들이 다녀갔다. 우비는 준비했지만 개막행사가 20분간 지연되었다. 행사에 차질을 빚었고 초청 인사들에 대한 의전상의 결례도 있었다. 주말엔 태풍을 동반한 폭우가 지나갔다. 해변에 마련한 파빌리온에 물이 샜다. 야외상영관의 세트가 넘어지기도 했다. 뼈아픈 교훈을 안겨준 해였다.

이런 와중에도 이번 영화제는 전에 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19만8000명의 최다관객을 동원했고 부산을 찾은 게스트도 가장 많았다. 피터 그리너웨이, 폴커 슐렌돌프, 끌로드 로루슈 등 세계 거장감독들이 처음으로 부산을 찾았다.

초청된 64개국 271편의 영화 중 세계 최초로 부산에서 상영된 '월드 프리미어'가 65편, 자국에서 상영된 후 부산에서 처음 선보인 인터내셔널 프리미어가 26편에 달했다. 초청 영화 중 3분의1에 해당하는 이 수치는 경쟁영화제인 칸, 베를린, 베니스와 비경쟁영화제인 토론토를 제외하고 가장 많다. 그만큼 국제사회에서 부산영화제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입증한다.

12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로,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화제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아시아의 신인감독과 새로운 영화를 발굴한다는 목표와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뉴 커런츠' 섹션은 아시아신인감독을 발굴하는 등용문이다. 지아장커, 리캉솅, 호유항 같은 감독들이 부산을 통해 세계적인 감독으로 거듭났다.

부산프로모션플랜(PPP)은 제작자와 투자자를 연결시켜주는 프로젝트 마켓이다. 1998년에 창설된 이후 지난 10년 동안 200편의 프로젝트가 발표되었고 그 중 92편이 영화화되었다. 베니스에서 대상을 받은 자파르 파나히의 '순환', 베를린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왕샤오슈와이의 '북경자전거'가 PPP프로젝트다. 지난해 영화제 개막작이었던 허우샤오시엔의 '쓰리 타임즈',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도 이에 속한다.

10주년을 기념했던 2005년에는 아시아영화아카데미와 아시아다큐멘터리네트워크(AND)를 발족시켰다. 동서대학교, 영화진흥위원회 소속 한국영화아카데미와 부산국제영화제가 공동주관하는 아시아영화아카데미는 아시아 각국에서 20여명의 소수, 정예 영화지망생을 선발해서 영화제 기간을 포함해 3주간 교육시키는 프로그램이다. 허우샤오시엔, 임권택, 모흐센 마흐말바프 등 세계적인 영화감독과 촬영감독들이 이들을 직접 교육하면서 영화를 함께 제작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아시아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을 사전에 지원하고 제작된 영화들을 아시아 권역에서 교류시키는 아시아다큐멘터리네트워크는 부산소재 6개대학과 기업들이 동참하는 산학협동 프로그램이다. 지난해에는 아시아필름마켓(AFM)을 출범시켰으며, 올해는 아시아시네마펀드를 발족시켰다.

부산시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첫해 3억 원을 지원했던 시는 올해 30억 원을 보조했다. 1998년에 처음으로 7억 원을 내놓았던 정부도 그 액수를 늘려 올해 14억 원을 지원했다. 또한 매년 20억~30억 원에 달하는 기업 및 민간의 협찬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부산국제영화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첫해부터 부산국제영화제가 관철해 온 '관과 정치로부터의 독립' 또한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었다. 창설된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없어진 광주국제영화제, 성장추세에 있다가 크게 흔들렸던 부천국제영화제는 시당국과 주변지원세력의 개입에서 빚어진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 온 시의 정책이 오늘의 부산국제영화제를 있게 한 배경이라고 하겠다.

또한, 매년 300~800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와 스태프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부산영화제를 성공케 한 가장 큰 동력이다. 이들이 있기에 부산국제영화제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영화제'로 회자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부산국제영화제가 빠른 기간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부산시민들과 영화 팬들의 적극적인 성원과 동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시민의 영화제인 동시에 영화인 모두의 것이며 전국에 있는 영화 팬들이 그 주인인 것이다.

지난 12년을 되돌아볼 때 부산국제영화제가 걸어온 길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부산시민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애정과 성원이 있었기에 이를 극복해 낼 수 있었다. 정상에 오를수록 폭풍은 거세게 마련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헤쳐가야 할 앞으로의 10년은 더욱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1985년에 창설된 도쿄영화제는 아시아정상의 영화제에서 점차 퇴조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부산국제영화제가 탄생하면서 침체의 늪에 빠졌다. 급기야 2004년부터 일본정부가 나섰다. 문화청이 예산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특히 산업경제성이 주도하여 마켓을 창설했다. 도쿄마켓은 영화뿐 아니라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 부문에 역점을 두고 아시아시장을 석권하려는 적극성을 띠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영화제 개최기간도 11월에서 부산국제영화제의 바로 뒤인 10월 말로 당겼고, 지난해 세계영화제작자연맹(FIAPF)에는 영화제 개최기간을 부산국제영화제 바로 앞인 9월 말로 당기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홍콩영화제의 도전은 더욱 심각하다. 홍콩 무역청이 주도하여 6월에 개최되었던 마켓을 지난해부터 3월에 개최되는 홍콩영화제와 통합하는 한편 전폭적인 예산지원에 나서고 있다. 올해 10주년을 맞이했던 상하이영화제와 방콕영화제 또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에 거세게 일고 있는 격랑 속에서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정상의 위치를 유지하면서 '아시아영화의 허브'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자기혁신과 노력이 필요한 때다. 다시 한번 부산시민의 성원에 깊이 감사드린다.
 
   -국제신문(2007.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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